[기자수첩] 李 대통령 청년 채용 발언 이틀 만에 대기업 '부랴부랴'
삼성·SK·현대차 등 청년 채용 계획 잇따라 발표…정부 "감사하다"
전날(18일) 국내 대기업들의 청년 채용 발표가 이어졌다. 이재명 대통령이 '청년 주간'을 맞아 청년 고용 확대를 주문한 지 이틀 만이다.
이 대통령은 지난 16일 취임 후 처음으로 세종특별자치시에서 국무회의를 주재한 가운데 "청년 고용 문제 해결을 위해서는 정부뿐만 아니라 기업의 노력도 필요하다"고 말하며 대기업들에 청년 고용 확대를 요청했다.
이어 "정부는 기업들이 기업활동을 원활히 할 수 있도록 지원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다"며 "팀코리아 정신으로 (정부와)통상 파고를 넘고 있는 기업이 '청년 고용난'이라는 또 하나의 고비를 넘는 데도 힘을 합쳐달라"고 말했다.
이에 삼성전자를 시작으로 SK그룹, 현대자동차그룹, 포스코그룹, HD현대그룹, 한화그룹 등이 지난 18일 일제히 청년 채용 계획을 내놨다.
삼성전자는 연간 1만2000명씩 향후 5년간 6만명을 채용하겠다는 청사진을 제시했다. 반도체를 중심으로 한 주요 부품사업을 비롯해 미래 먹거리인 바이오, 핵심기술로 급부상 중인 AI(인공지능) 분야 등에 집중해서 채용을 늘린다는 계획이다.
삼성전자의 경우 올해 4대 기업 중 유일하게 하반기 공채를 실시 중인데, 여기에 더해 새롭게 청년 채용 계획을 내놓은 것이다.
SK그룹은 올해 총 8000여명을 채용하기로 했다. 그룹이 전사적 역량을 쏟고 있는 AI 분야를 비롯해 반도체, 디지털전환 등 산업의 경쟁력 강화를 위해 이공계 인재를 선발한다는 계획이다.
반도체사업 핵심 자회사인 SK하이닉스의 경우 오는 22일부터 다음달 1일까지 하반기 신입사원을 모집 중으로, 채용 규모는 세 자릿수다.
현대차그룹은 올해 청년 7200명을 신규 채용하는 한편 내년 채용 규모를 1만명으로 확대하는 방안을 검토하는 중이다.
포스코그룹은 향후 5년간 1만5000명(연간 3000명)을, HD현대는 올해 1500명을 포함해 2029년까지 5년간 1만여 명을 채용한다는 계획이다.
한화그룹은 올해 하반기 3500여 명을 채용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지난해 상반기(2100여 명)보다 1400여 명 늘어난 수준으로, 올해 총 5600여 명을 채용하는 셈이다.
기업들이 내놓은 채용 계획에 대해 정부는 화답했다. 이날 강유정 대통령실 대변인은 "삼성, SK, 한화, 포스코, 현대차 등 국내 주요 그룹이 오늘 장단기 신규 채용 확대 계획을 발표했는데 채용 규모가 당초 계획보다 4000여명 정도 늘었다"며 "청년 일자리 창출을 위한 대통령의 호소에 화답해 준 기업들에 감사드린다"고 말했다.
업계에서도 기업들의 청년 고용 노력에 대해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경영 불확실성이 커지고 주요 산업들의 업황 악화가 이어지고 있는 가운데서도 기업들이 국가에 대한 책임을 다하기 위해 청년 채용에 앞장섰다는 평가다. 기업들의 자발적인 노력으로 청년 채용 문제 해결이 빨라질 수 있다는 기대감도 높아지고 있다.
그러나 이번 청년 고용 발표에 대해서는 의문부호가 붙는다. 그간 기업들이 경영환경 위기를 언급하며 관련 법·제도 개선 등 정부에 지원을 호소한 것과는 대조되는 모습이기 때문이다.
통상 기업들은 실적 악화시 비용 효율화를 위해 대체적으로 '인원 감축' 카드를 꺼내든다. 이와 함께 고용을 축소하고 사업 조정, 투자 감소 등을 실시한다. 최근까지도 대기업들은 대대적인 사업 재편을 진행하며 일부 자회사에서 희망퇴직을 단행했다. 기업들의 '몸집 줄이기'가 시작됐다는 평가가 얼마 전까지 나왔다.
하지만 대통령의 말 한 마디에 대기업들은 동시다발적으로 청년 고용 확대 계획을 내놨다. 그동안 기업들이 해왔던 '앓는 소리'가 무색해지는 순간이다. 한편으로는 대통령의 명령에 기업들은 '할 수밖에 없는' 입장인 것이 씁쓸해지는 부분이다.
일각에서는 기업들의 순응이 정부에 잘못된 신호를 줄 수 있다고 우려한다. 특히 현 정부는 기업의 입장보다는 노동 친화적인 정책을 내놓고 있는 중으로, 노란봉투법(노조법 2·3조 개정안)', 상법개정안 등을 강경하게 처리하고 있다.
물론 기업들의 청년 채용 확대는 칭찬해야 할 일이다. 다만 글로벌 무역장벽이 높아지고 있고 미국 관세 리스크, 중국 저가 공세 등 여러 위협으로 기업 경영이 예측하기 힘들어진 상황에서 급한 채용 확대가 부작용을 일으킬 수 있다.
청년 일자리는 산업이 활황이고 이에 따라 생산시설 확대, 연구·개발력 증대 등이 이뤄지면 자연스럽게 인력이 필요한 데 따라 증가하게 돼 있다는 점을 정부와 기업 모두 염두에 둬야 할 것이다.
[스트레이트뉴스 함영원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