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손청구 간소화’ 답보... EMR업체와 병원 연동 ‘병목’
순천향대 권혁준 “실손청구 간소화, 전산 표준화·의료계 신뢰 핵심” 실손보험 청구 간소화 1년…공공병원 절반 ‘미참여’
권혁준 순천향대학교 경제금융학과 교수가 실손의료보험 청구 전산화 제도의 부진 원인으로 요양기관의 낮은 참여율을 지적했다.
◇ 의료계, 여전히 실손청구 간소화 반대
23일 권혁준 교수는 스트레이트뉴스와의 전화 통화에서 “2024년 기준 전산화에 참여한 요양기관 비율이 50%를 넘지 못해, 상당수 소비자들이 여전히 불편을 겪고 있다”고 말했다.
청구 과정에서의 보험사별 서류 요구 양식의 차이와 민간 핀테크 업체와 보험사 간 제휴 미흡도 문제로 꼽았다. 그는 “실손24 앱에는 대부분 보험사가 참여하지만, 민간업체에는 10개 보험사만 제휴돼 있어 형평성 논란이 발생하고 있다”며 “결국 환자와 소비자에게 그 비용과 불편이 전가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권 교수는 “환자 개인정보 유출, 행정업무 과중, 보험사의 진료정보 남용 및 지급 거절 악용 가능성 등을 이유로 의료계가 여전히 실손청구 간소화를 강하게 반대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권 교수는 “정부와 보험업계, 의료계가 각자의 이해관계를 떠나 상호 신뢰를 바탕으로 전산 시스템의 표준화부터 서둘러야 한다”며 “보험사의 서류 요구 양식과 청구 플랫폼 정책, 절차를 통일하는 것이 급선무”라고 강조했다.
이어 “의료계의 우려를 해소할 안전장치도 병행 마련돼야 한다”며 “중립적 중계기관인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을 활용하거나, 데이터 보안 강화, 행정부담에 대한 보상책 등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그는 “청구 편의성과 개인정보 보호라는 두 축이 균형을 이뤄야 제도가 성공할 수 있다는 점을 반드시 기억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 공공의료기관 133곳, 여전히 미연계
국회 정무위원회 소속 김재섭 국민의힘 의원실에 따르면, 전국 공공의료기관 231곳 가운데 57.6%(133곳)이 전산화 시스템에 연계하지 않았거나, 아예 참여조차 하지 않은 상태다. 특히 요양병원 82곳 중 10곳만 참여했고, 정신병원 17곳은 단 한 곳도 시스템을 도입하지 않았다.
김재섭 의원은 “시행 1년이 다 되도록 국민은 여전히 병원을 찾아 서류를 발급받아야 하고, 특히 고령층과 취약계층이 주로 이용하는 공공의료기관의 참여율이 극히 저조한 것은 국민 불편을 더욱 가중시키는 문제”라고 지적했다.
이어 “이대로라면 제도의 혜택을 가장 필요로 하는 분들이 오히려 소외될 수 있다”며 “정부와 공공의료기관은 국민 불편을 더 이상 외면하지 말고, 지금부터라도 청구전산화가 신속히 마무리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실손보험 청구 전산화 제도는 병상 30개 이상 병원과 전국 보건소를 시작으로 2024년 10월 처음 도입됐다. 환자가 병원에서 진료 후 별도 서류를 떼지 않아도 보험금을 청구할 수 있도록 시스템을 갖춘다는 취지였다. 정부는 청구 간소화를 통해 국민이 서류 없이 청구하고, 병원은 행정부담을 줄이며, 보험사는 지급심사를 더 빠르게 처리하는 ‘윈-윈(win-win)’ 효과를 기대했다.
그러나 실상은 정반대에 가깝다. 제도 도입 이후 “병원마다 되는 곳과 안 되는 곳이 다르다”, “지도앱에서 연계 병원을 찾기 어렵다”는 불만이 속출했다.
특히 고령자나 정보 접근성이 낮은 이들에게는 앱 설치부터 사용까지 어려운 진입 장벽이 존재한다. 실제로 실손24 앱·웹 사용률은 낮은 편이며, 시스템을 연계한 병원과 그렇지 않은 병원의 격차는 여전히 크다.
실손24는 의료기관에서 청구서류를 발급받아 보험사에 제출한 뒤 심사를 진행해야했던 실손보험 청구 절차를 간소화해, 앱에서 간편하게 청구할 수 있도록 연결한 시스템을 말한다. 보험개발원은 최근 ‘실손24’ 활성화를 위한 소비자 참여 이벤트를 진행하기도 했다.
◇ “비용, 인력, 정보보호…현장과 괴리”
공공기관의 미참여 사유는 다양하다. 내부 인력 부족, 전자의무기록(EMR) 업체와의 연동 지연, 시스템 필요성 미흡 등이 주된 이유다. 행정절차가 복잡한 공공기관일수록 시스템 변경에는 시간과 비용이 더 많이 들어간다.
특히 EMR 업체와 병원 간 ‘연동 병목’ 문제가 심각하다. 연동이 되지 않으면 병원이 아무리 참여 의사가 있어도 실손24 시스템을 사용할 수 없다. 2024년 기준 전체 EMR 업체 중 참여한 곳은 19곳에 불과했으며, 유지보수비 논란도 여전하다.
의료계에서는 참여를 위한 개발비·운영비·민원대응비에 대한 보전이 부족하다고 지적한다. 정부가 약속한 보증료 감면이나 보험료 할인은 실질적 체감 효과가 낮다는 평가다.
의료계는 실손청구 전산화가 보험사에 유리한 정보 제공 창구로 활용될 가능성을 우려하고 있다. ‘대량 수집된 진료기록이 향후 계약 갱신이나 지급 심사에 불리하게 작용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 같은 개인정보 우려는 의료계가 제도에 선뜻 나서지 않는 또 다른 이유로 작용한다.
물론, 2023년 국회를 통과한 개정법령과 시행령에서는 암호화 전송, 목적 외 사용 금지, 전송 예외 사유 등을 명시해 안전장치를 마련했다. 그러나 현장에서는 “설명 부족”과 “실제 적용 방식이 불명확하다”는 비판도 여전히 나온다.
한편 일부 소비자는 카카오, 토스, 보험사 앱 등을 통해 청구서를 전송하는 ‘간편 청구’를 활용하고 있다. 이런 민간 서비스가 이미 널리 쓰이는 상황에서 정부가 보험개발원 중심의 공공 플랫폼(실손24)만을 밀고 있다는 비판도 있다.
핀테크 업계 한 관계자는 “정부가 특정 플랫폼에만 자원을 집중하고, 기존 민간 서비스는 소외시키는 것은 형평성에 어긋난다”고 말했다. 정부는 이에 대해 “사용자 선택권은 열려 있고, 민간도 자유롭게 서비스할 수 있다”는 입장이다.
[스트레이트뉴스 조성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