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소비자보호원’ 신설 보류…소비자보호 후퇴?

당·정·대, 국회 본회의 직전 보류 7일 발표한 개편안과 배치돼 혼선

2025-09-30     조성진 기자
연합뉴스 제공.

정부·여당이 국회 본회의 직전 ‘금융소비자보호원’ 신설을 보류했고, 금융감독원은 금융소비자보호처를 ‘소비자보호 총괄본부’로 격상하는 내부 쇄신안을 내놨다. 하지만 이를 두고, 일각에선 “금융소비자보호처 분리 신설을 통한 독립성 강화”를, 반대에선 “기관 간 책임 떠넘기기” 우려가 맞서는 실정이다.


◇ 독립 전담기구 추진 대신 내부 개편으로 선회


30일 금융권에 따르면, 전날 금융감독원은 서울 여의도 본원에서 ‘금융소비자 보호 강화 결의대회’를 열고 조직 쇄신안을 꺼냈다. 핵심은 금융소비자보호처를 ‘소비자보호 총괄본부’로 격상해 수석부원장 직속 최상위 조직으로 두고, 권역별 본부(은행·보험·금융투자·중소 등)에 민원·분쟁·상품심사·감독·검사를 한 번에 처리하는 ‘원스톱’ 체계를 만들겠다는 구상이다.

원장 직속 ‘금융소비자보호위원회’ 신설, ‘민생범죄대응총괄단’ 가동, ‘금융소비자보호기획단’ 확대 및 국민보고대회(2026년 상반기) 계획도 덧붙였다.  

전날 이찬진 금감원장은 “조직 운영·인사·업무 절차를 소비자 보호 중심으로 전면 개편하겠다”며 “공정한 규칙을 어긴 금융회사에는 과징금·영업정지 등 강한 제재를 하겠다”고 선서했다.

이찬진 금감원장. 연합뉴스 제공.

이세훈 금감원 수석부원장은 “사후 구제 관행을 바꾸고, 연말까지 조직개편을 확정한 뒤 2026년 상반기 국민보고대회에서 성과를 점검하겠다”고 말했다.  

대통령실·정부·여당은 25일 국회 본회의를 앞두고 ‘금융위원회 정책·감독 기능 분리’와 ‘금융소비자보호원’(독립 전담기구) 신설을 이번 정부조직법 개정안에서 일단 제외했다. 당초 “국론 분열을 피하겠다”는 설명이었지만, 불과 18일 전인 9월 7일 고위 당정 협의에서 내놓은 개편 방향과 달라 정책 신뢰 논란을 자초했다.  

당초 7일 정부는 금융감독 체계를 재정비해 ‘감독’과 ‘정책’을 나누고, 감독 축 아래 금융감독원과 소비자보호 전담기구를 두는 구상까지 거론됐다. 같은 날 정부 브리핑과 방송 생중계로도 “정부조직 개편안 확정” 메시지가 전달됐다. 보류 결정은 이 발표 흐름과 정면으로 어긋난다. 

금감원이 4월 8일 공개한 ‘2024년 금융민원·상담 동향’에 따르면, 2024년 금융민원은 11만6338건으로 전년 대비 24.0% 늘었고, 평균 처리기간은 41.5일이었다. 

해외 사례와도 비교된다. 미국 소비자금융보호국(CFPB)은 기업의 1차 답변을 ‘민원 이관 후 15일 이내’ 제출하도록 요구하고, 최종 답변은 최대 ‘60일’ 내 내도록 운영 지침에 적시했다. 영국 금융옴부즈맨서비스(FOS)는 ‘완결 서류를 받은 때’로부터 ‘90일 내’ 결론을 목표로 한다. 국내 제도도 처리 기한을 더 촘촘히 공개하고, 단계별 진행 상황을 소비자가 체감하도록 바꿔야 한다는 지적이 힘을 얻는다.  


◇ 금감원 격상으로 빈자리 메울까…“구조만 바꿔선 부족하다”는 지적


‘금융소비자보호법’은 2021년 3월 25일 시행돼 판매 원칙 확대와 분쟁 절차를 손봤지만, 사모펀드 환매 중단, 라임·옵티머스 사태, 최근 홍콩 H지수 연계 ELS 대규모 손실 등 굵직한 사고는 이어졌다. 홍콩 H지수 연계 ELS의 손실과 제재 논의는 현재진행형이며, 판매액 기준 과징금 산정 방침·잠재 규모가 공개되는 등 소비자 보호체계의 한계와 논쟁을 동시에 드러냈다. 

분리 신설을 지지하는 쪽은 “건전성 감독과 소비자 보호를 한 조직이 맡으면 소비자 보호가 뒤로 밀린다”고 말한다. 대선 과정과 새 정부 출범 이후에도 ‘소비자보호 전담기구의 독립·권한 강화’가 정책 의제로 반복 확인됐다는 점도 근거로 든다. 반대하는 쪽은 “기관이 둘로 갈라지면 책임 떠넘기기(핑퐁 민원)와 이중 규제, 공동검사 지연이 생긴다”고 우려한다.

정책의 일관성 문제도 남는다. 9월 7일 ‘정부조직 개편’ 메시지가 나간 뒤 25일 보류, 29일 금감원 내부 쇄신 발표까지 이어진 흐름이 시장과 소비자에 혼선을 줬다는 비판이 제기된다.

금감원의 ‘소비자보호 총괄본부’ 격상, 권역별 원스톱 처리, 분쟁조정국 이관·환류 강화, 원장 직속 위원회 설치, 민생범죄 전담조직 운영, 국민보고대회 예고 등은 ‘보류된 신설안의 빈자리를 기관 내부 쇄신으로 채우려는 시도’로 읽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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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만 구조만 바꿔서는 민원 폭증·복잡성·사전예방 부재라는 근본 과제를 풀기 어렵다는 지적이 이어진다. 제재 강도 강화만으로는 분쟁 예방·조기해결의 ‘속도’와 ‘예측 가능성’ 문제를 모두 해결하기 힘들다는 뜻이다. 

전문가들은 “응답 시한·처리 기준을 전면 공개하고, 단계별 진행상황을 자동 통지하는 ‘타임라인형 보호’를 도입해야 한다”고 말한다. CFPB처럼 기업의 답변 기한을 제도화하고, FOS처럼 결정문 공개와 판례 축적을 병행하면 예측 가능성과 처리 속도가 동시에 올라간다는 조언이다. 한국형 제도 설계에 맞게 권한 배분과 책임 경계를 조정하는 것이 관건이라는 지적도 덧붙는다.  

여야 협상으로 정부조직법·금융 관련 개별 법률(금융위 설치법, 은행법 등) 개정을 다시 시도하는 길과, 금감원 내부 개편·기획단 활동을 실질 성과로 연결하는 길이 동시에 열려 있다.

금융학계 한 관계자는 “어느 길을 택하든 핵심은 같다”며 “분쟁 예방·신속 구제라는 목표를 소비자가 체감하도록 만드는 세부 운영 규칙”이라며, “간판이 금소원 신설이든 금감원 내 격상이든, 결과는 동일한 방향을 가리켜야 한다“고 말했다.

[스트레이트뉴스 조성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