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재 독립 개척정신, 100년 기업으로 잇는다”…‘비철금속 거목’ 최창걸 고려아연 명예회장 영결식

2025-10-10     박응서 기자
비철금속 업계의 거목으로 평가받는 고(故) 최창걸 고려아연 명예회장 영결식이 10일 서울 종로구 고려아연 본사에서 엄수됐다. 고려아연 제공

비철금속 산업의 선구자이자 ‘소재 독립’의 상징으로 불리는 고(故) 최창걸 고려아연 명예회장의 영결식이 10일 서울 종로구 고려아연 본사에서 예절과 절차에 따라 엄숙하고 질서 있게 진행됐다. 유가족과 임직원들은 고인이 남긴 ‘사업보국’의 철학과 개척정신을 계승해 100년 기업의 꿈을 실현하겠다고 다짐했다.

이날 오전 10시부터 약 1시간 동안 진행된 영결식에는 최윤범 고려아연 회장과 유중근 여사(전 대한적십자사 총재)를 비롯한 유가족, 이제중 부회장 등 임직원 200여명이 참석했다. 행사는 약력 보고, 추모 영상 상영, 조사 낭독, 헌화 순으로 조용히 진행됐다. 고려아연 본사 곳곳에는 ‘사업보국(事業報國)’이라는 문구가 걸려 고인의 평생 신념을 상기시켰다.

조사에서 이제중 부회장은 “황무지 같던 한국의 비철금속 산업에 기초를 세운 분이 바로 최 명예회장님”이라며 “자원도, 기술도, 인재도 부족한 시절, 불가능을 현실로 만든 혜안과 진취적인 의지가 오늘의 고려아연을 만들었다”고 회고했다. 그는 “고인께서 개척한 경제 영토를 전 세계로 확장해 나가겠다”며 후배들의 다짐을 전했다.

백순흠 경영관리그룹 사장은 “최 명예회장은 ‘사람을 존중하는 경영’을 몸소 실천한 지도자였다”며 “기업 발전뿐 아니라 국가 산업기반을 세우는 데 헌신했다”고 밝혔다. 그는 특히 “미래세대를 위한 책임 경영과 사회와의 상생을 강조한 경영 철학은 지금도 살아 숨 쉬고 있다”고 덧붙였다.

1941년 황해도에서 태어난 최 명예회장은 경기고와 서울대 경제학과를 졸업한 뒤 미국 컬럼비아대 경영대학원에서 MBA를 취득했다. 유학 후 안정적인 미국 직장 생활을 하던 중, 부친인 故 최기호 창업회장의 편지를 받고 귀국해 제련업의 불모지였던 한국에서 새로운 산업의 길을 열었다.

그가 가장 먼저 마주한 벽은 ‘돈과 기술이 없는 현실’이었다. 최 명예회장은 세계은행 산하 국제금융공사(IFC)를 설득해 7000만달러로 예상된 온산제련소 건설비를 4500만달러로 줄이고, 부채비율도 7:3으로 조정해 자금 조달에 성공했다. 종합건설사 턴키 계약 대신 자재·시공을 직접 관리하며 절감한 경험은 훗날 “신의 한 수”로 회자됐다.

1980년대 그는 연(鉛) 제련에 DRS·QSL 신공법을 도입해 공정 효율을 높이고, 세계 최초로 아연·연·동 제련 통합공정을 구현했다. 이 기술적 도전은 당시 환경오염 산업으로 여겨지던 제련업의 패러다임을 바꾸며 고려아연을 친환경 고부가 산업의 대표주자로 만들었다.

1992년 회장에 오른 그는 연 제련공장, 열병합발전소, 아연전해공장 증설을 추진하고, 호주 스미스필드(SMC) 제련소 설립을 주도하며 글로벌 사업기반을 확장했다. 또한 전사 ISO 9001 인증을 획득해 품질경영 체계를 확립했다. 이 시기 고려아연은 세계 제련기업 중 상위권으로 도약했다.

고인은 2014년 창립 40주년 기념사에서 “나는 혁신이나 개혁을 좋아하지 않는다. 그것은 이미 늦은 것이다. 매일매일 조금씩 발전하면 큰일을 할 필요가 없다”고 말했다. 그의 철학은 오늘날 ‘지속 가능한 진화’라는 고려아연의 경영원칙으로 자리 잡았다.

최 명예회장은 개인의 역량보다 조직의 힘을 중시했다. “큰 영웅이 아니라 모두의 성과”라는 그의 신념은 38년 무분규와 102분기 연속 흑자라는 기록으로 이어졌다. 이는 국내 기업사에서도 보기 드문 기록으로, ‘노사가 함께 만드는 성장’의 교과서로 불린다.

고인은 사회공헌에도 앞장섰다. 명진보육원 후원을 시작으로 아동복지와 장학사업을 지속했고, 임직원 기본급 1% 기부 캠페인을 도입해 나눔의 문화로 확산시켰다. 이러한 공로로 2013년 ‘대한민국 나눔국민대상’ 국민훈장 동백장을 수훈했다.

고려아연은 최 명예회장이 강조한 “100년 가는 회사가 위대한 회사”라는 말을 실천하기 위해 신재생에너지, 그린수소, 이차전지 소재, 자원순환 등 4대 축으로 이뤄진 ‘트로이카 드라이브’ 전략을 추진 중이다. 상반기 매출 7조6582억원을 기록하며 창사 이래 최대 반기 실적을 달성, 고인의 유산을 현실로 옮기고 있다.

고인의 빈소에는 반기문 전 UN 사무총장, 함영주 하나금융지주 회장, 서강현 현대제철 사장 등 정·재계 인사가 조문했다. 최태원 SK그룹 회장,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 구광모 LG그룹 회장,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 등도 근조화환을 보내 애도를 표했다. 업계는 그를 “대한민국 제련산업의 표준을 세운 인물이자 사업보국의 상징”으로 추모했다.

[스트레이트뉴스 박응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