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계기준원 원장추천 절차 파행…"독립성 훼손 우려"
삼성생명 일탈회계 논란 속, 금융위 개입 의혹까지 김남근"원장 선임 절차 예정대로 진행해야"
한국회계기준원의 차기 원장 선임 절차가 파행을 빚으며 회계제도의 독립성과 개혁 추진력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다. 금융위원회가 회계기준원에 신임 원장 추천 시기를 미뤄달라고 요청한 직후 원장추천위원회가 절차를 중단하면서, 외부 개입 논란도 불거지고 있다.
IMF 경제위기 당시 국제통화기금(IMF)은 불투명한 재벌 회계와 순환출자 구조가 위기 원인 중 하나라며 “정부와 기업으로부터 독립된 회계기준 제정기구” 설립을 권고했다.
이에 따라 회계기준원은 1999년 정부와 기업으로부터 독립성을 확보한 민간 회계기준 제정기관으로 설립됐다. 국제회계기준원(IASB)이 제정한 IFRS를 한국 실정에 맞게 수정해 K-IFRS를 마련하고, 최근에는 한국지속가능성기준위원회(KSSB)를 출범시켜 ESG 공시 등 지속가능성 기준 제정도 추진하고 있다.
그러나 최근 원장 임기 만료를 앞두고 구성된 원장추천위원회가 차기 원장 선임을 둘러싸고 돌연 절차를 중단하면서 잡음이 일었다. 지난 10월 2일 열린 제1차 회의에서 위원회는 주요 안건이던 ‘후보 추천기간 및 추천방법 결정’, ‘심사기준 및 절차 확정’, ‘차기 회의 일정 확정’ 등을 모두 보류하고 논의를 중단했다. 이는 2024년 11월 기관 간 합의에 따라 올해 10월 공고, 11월 추천 절차를 진행하기로 했던 기존 계획을 뒤집는 결정이었다.
김남근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확보한 '한국회계기준원 원장추천위원회 제1차 회의록'에 따르면, 이날 회의에서 위원회는 한국거래소 이사장을 위원장으로 선임한 뒤 현직 원장이 원장추천위원회에 참여할 수 없도록 정관을 개정하자는 결정을 내렸다.
실제 회의에서는 현직 원장을 퇴장시킨 뒤 회의가 계속 진행됐다. 김 의원실은 “원장 추천 절차를 이유 없이 중단하고 정관 개정 문제로 회의 방향을 틀었다”며 “절차적 정당성이 무너졌다”고 지적했다.
더 큰 문제는 금융위원회의 개입 의혹이다. 김 의원실이 확인한 바에 따르면, 금융위원회는 지난 9월 25일 회계기준원에 신임 원장 선임 시기를 명확한 이유 없이 연기할 것을 요청했다. 이 요청이 추천 절차 중단으로 이어졌다는 지적이 나온다. 회계기준원은 금융감독원, 회계사회, 상장사협의회 등 14개 기관이 분담금을 내는 독립적 재원을 갖추고 있지만, 법적으로 금융위원회로부터 일부 권한을 위임받고 있어 완전한 독립을 유지하기 어렵다는 구조적 한계가 있다.
원장추천위가 외국대학 박사학위, 공인회계사 자격 등 가점 요건을 삭제하는 등 전문성 기준을 낮추는 결정을 내린 점은 개혁 흐름에 역행한다는 비판이 제기된다.
특히 업계에서는 이번 절차 중단이 금융위나 금감원 인사 이후 이들 기관 출신 인사가 차기 원장으로 발탁되는 ‘낙하산 인사’로 이어질 가능성을 우려하고 있다.
삼성생명이 삼성화재를 자회사로 편입하면서 국제회계기준 적용 여부가 보험계약자와 투자자 등 이해관계자들의 초미 관심사로 떠오른 상황에서, 회계기준원의 독립성이 흔들리면 회계 투명성 전반이 위협받을 수 있다는 지적이다.
김남근 의원은 "전문성과 독립성을 확보하는 첫걸음은 기존 제도를 존중하고 절차적 정당성을 지켜 원장 선임 절차를 예정대로 진행하는 것"이라며 "만약 이를 바로잡지 않는다면 금융위원회 국정감사 과정에서 의혹의 진상을 반드시 규명하겠다"고 밝혔다.
[스트레이트뉴스 설인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