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율 ‘변동성 시대’, 기업·가계 모두 긴장

원/달러 환율, 1400원대 중반서 롤러코스터
 수출·수입 기업과 가계 모두 환율 리스크에 노출

2025-11-17     조성진 기자
픽사베이 제공.

최근 원/달러 환율이 1400원대 중반에서 오르내리며 기업과 가계 모두 환율 위험에 노출됐다. 수출입 실적은 양호하지만, 해외투자와 글로벌 변수로 변동성이 커진 탓이다.


◇ 롤러코스터 환율, 불안한 韓 경제 


17일 서울외환거래소에 따르면, 이날 원/달러 환율은 지난주 금요일 주간 종가 대비 6.0원 내린 1451.0원에 거래를 시작했다.

이달들어 원화 가치는 표현 그대로 ‘롤러코스터’ 행보를 이어가고 있다. 원/달러 환율이 며칠 새 1450원대에서 1470원대로 치솟더니, 당국 개입 신호가 나오면 20원 가까이 급락하는 장면이 반복됐다. 11월 12일, 장중 한때 1470원을 넘기며 7개월 만에 최고점을 찍었다. 5일에는 장중 1450원을 넘겼고, 14일에는 정부의 시장 안정 조치에 힘입어 1460원 선에서 거래를 마쳤다. 최근 2주 동안만 봐도 하루에 10원~30원 넘게 오르내리는 날이 흔했다.

환율의 급등락은 단순한 숫자 이상의 의미를 가진다. 서울 외환시장에서 11월 초중순 사이 원/달러 환율은 1440원~1470원 구간에서 널뛰기를 반복했다. 2024년 9월에는 1370원대였던 환율이 두 달 만에 1460원을 넘어섰다. 같은 기간 미국 달러 인덱스가 3% 정도 오른 데 그친 것과 비교하면, 원화의 약세와 변동성이 유독 두드러진 셈이다.

수출·수입 실적이 나쁘지 않은데도 환율이 이렇게 출렁이는 이유는 ‘자본 계정’에 있다. 예전에는 무역수지나 경상수지가 환율을 좌우했다면, 이제는 연기금의 해외투자, 외국인 투자자의 한국 자산 매수·매도, 국내 투자자의 해외 주식·채권 투자 등이 실시간으로 환율을 흔든다.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는 최근 블룸버그와의 인터뷰에서 “최근 환율은 국내 거주자의 해외 투자에 따라 크게 움직이고 있다”고 설명했다. 하루에도 수십 억 달러 규모의 자금이 외환시장을 오가면서, 작은 뉴스에도 환율이 크게 반응하는 구조다.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 연합뉴스 제공.

올해 10월 한국의 무역수지는 61억 달러 흑자를 기록했다. 9월까지 누적된 경상수지 흑자도 830억 달러에 달했다. 하지만 원화는 약세다. 지난달 반도체·자동차·조선 등 수출 규모다 전년 동월 대비 3.6% 증가했지만, 달러 환율은 오히려 높아졌다. 수출이 잘 돼도, 자본이 해외로 나가거나 외국인 투자자가 주식을 팔면 환율은 쉽게 오른다.

수출 기업은 달러 환율이 오르면, 같은 수출 대금으로 더 많은 원화를 받는다. 하지만 부품이나 원재료를 해외에서 달러로 사오는 구조가 많기 때문에, 환율이 너무 빨리 오르면 원가와 판매가 관리가 어렵다. 환차익을 노리고 선물환을 미리 팔아둔 기업도, 환율이 하루 사이 크게 오르면 손해를 볼 수 있다.

중소기업은 더욱 어렵다. 환헤지에 자본을 쓸 여력이 부족한 상황에서 대출을 원화로 받아 제품을 만든 뒤 수출 대금을 달러로 받는 구조에서 환율이 갑자기 급락하면 대출 상환에 부담이 커진다. 최근 산업통상자원부가 수출 리스크 가이드라인 개정을 예고했지만, 현장의 체감은 이미 그 이상을 넘어섰다는 평가가 많다.

수입 원재료 가격이 오르면 내수 기업의 부담도 커진다. 한국은 수입 대금의 80% 이상을 달러로 결제한다. 최근처럼 환율이 1350원에서 1450원으로 오르면, 연간 1000만 달러 규모의 원재료를 수입하는 기업은 1년 새 원화 부담이 100억원 늘어난다. 여기에 환율이 오르면 대출 금리도 잘 내리지 않는다.

한국은행은 최근 “환율 불안이 커진 만큼 금리 인하를 신중하게 접근하겠다”고 밝혔다. 즉, 기업들은 환율 리스크와 고금리 부담을 동시에 안고 가야 하는 상황이다.


◇ 생활비, 유학비, 대출…가계도 환율에 긴장 


달러 예금과 해외 주식 투자가 늘면서, 환율이 가계에도 ‘남의 일’이 아니게 됐다. 하지만 실제 생활에서는 부담 요인이 더 크다. 원/달러 환율이 1400원에서 1460원으로 오르면, 매달 3,000달러를 해외로 송금하는 유학생 가정의 부담이 18만원 늘어난다. 해외여행, 유학, 해외직구 등 달러로 결제되는 모든 지출이 같이 오르게 된다.

가계부채도 영향을 받는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2분기말 기준 가계신용 잔액은 1952조8000억원, 그중 대출이 1832조6000억원을 기록했다. 해외자산을 담보로 달러 대출을 받은 경우, 환율이 오르면 상환 부담이 기하급수로 커진다.

소비자물가 역시 환율의 영향을 받는다. 한국은행은 “환율 상승에도 국제유가가 안정돼 현재는 2% 내외 오름세를 유지하지만, 향후 물가 경로는 환율과 유가 움직임에 달렸다”고 평가했다. 수입 물가가 계속 오르면, 생활비에도 영향이 갈 수밖에 없다.

환율은 미국 연방준비제도의 금리 정책에 따라 출렁인다. 연준은 9~10월 연속 금리를 0.25%포인트 내리며, 연방기금금리를 3.75~4.00%로 조정했다. 하지만 추가 인하는 언제든 멈출 수 있다고 예고했다. 여기에 미국의 관세 정책, 지정학적 긴장, 중국 경기 등도 변수다. 최근 미국 국채 금리나 달러 강세, 글로벌 위험 선호 약화가 모두 환율을 흔드는 요인으로 작용했다.

흔들리는 원화 가치에 환율관리도 비상이다. 연합뉴스 제공.

정부는 최근 “환율이 너무 빠르게 오르면 시장 안정 조치를 하겠다”고 여러 차례 밝혔다. 실제로 장중에 달러 매도 등으로 개입해 단기적으로 급등을 진정시키기도 했다. 하지만 시장에서는 “당국 개입만으로는 구조적인 변동성을 막기 어렵다”는 목소리가 높다. 앞으로도 원/달러 환율은 1400원대 중반~1500원 구간에서 넓게 오르내릴 가능성이 크다.

문다운 한국투자증권 연구원은 “이미 달러 강세폭이나 주요국 통화 약세 폭 대비 원화 약세 압력이 누적된 만큼 상단에 근접할수록 레벨 부담과 함께 당국 개입에 대한 경계감은 점점 높아질 것”이라며 “1480원대에서는 국민연금의 전략적 환헤지나 당국의 미세조정도 나올 가능성이 있어 급격한 환율 추가 상승은 제한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박형중 우리은행 이코노미스트는 “연내 원/달러 환율이 1430∼1480원 박스권을 예상하지만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행정부의 관세와 규제 위험이 다시 부각되면 1500원선도 터치할 수 있다”고 말했다.

[스트레이트뉴스 조성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