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직연금 고수에게 묻는다] ➁ 이음연구소 김성일 “가입자에게만 책임 떠넘기는 현 제도 한계”
“기금형·일임형 확대와 ETF 활용으로 노후자산 키워야”
“국내 시장에서 퇴직연금제도가 20년을 맞이했지만 아직까지 수익률이 저조한 이슈가 있다.”
20일 김성일 이음연구소 소장은 스트레이트뉴스와의 인터뷰에서 “본질적인 원인은 상품 가입자에게만 의사결정을 떠맡긴 설계에 있다”며, “퇴직연금사업자와 전문운용기관이 책임을 나눠지는 기금형·일임형 확대, 상장지수펀드(ETF) 중심의 실적배당형 활성화가 필요하다”고 제언했다.
△ 이음연구소에 대해 소개해 달라.
이음연구소는 이음솔류션즈가 출원한 연구소로 2020년에 세워 졌으며 각 분야에 전문력을 갖춘 전문가들로 구성된 다양한 연구 분야(예: 퇴직연금, 금융솔류션 개발, 부동산 재테크 등)의 컨소시엄 형태로 운용되고 있다.
△ 퇴직연금 제도의 목적과 현주소는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2005년 12월 도입된 퇴직연금제는 불과 열흘 후면 20년이 되는 해로서 퇴직연금제도 도입의 초기 목적은 퇴직금의 취약점이 수급권을 보호하고, 퇴직적립금의 투자를 통한 노후복지 안전망 구축과 국민연금 수령 이전까지 가교 연금(Bridge Pension)역할도 동시에 가지는 다목적 형태로 도입되었는데 그동안 전 세계 퇴직연금제도에서 유례를 찾아볼 수 없이 수익률 마이너스 구간이 없었으며, 비록 수익률이 낮다고는 하나, 이는 확정급여형(DB)과 확정기여형(DC)의 수익률 평균으로 수익률 여부를 따지는 ‘평균의 함정’에 빠져 오해가 생긴 측면도 없지 않을 것이다.
나아가 퇴직연금제도를 수익률의 고저로 제도의 존재 여부를 평가하는 것은 과한 측면이 있다. 근로자들의 인식조사를 해 보면 제도를 잘 활용해서 연간 수익률 8%대 이상의 수익률을 올리는 가입자도 20%가량 나오는 것으로 조사된다. 가입자들이 자신의 상황에 맞게 퇴직연금 활용방법에 따라 세분화되어 제도를 활용하고 있다는 측면에서 결코 퇴직연금제도가 손가락질을 받아서는 안 된다. 다시 말해서 가입자들은 자신들의 처지에 맞게 제도를 활용하고 있는 데 이를 천편일률적인 수익률 잣대로 재단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 해외 연금제도 대비 국내 퇴직연금 제도의 개선점은? 우리가 벤치마크 할 만한 해외 퇴직연금 운용 사례가 있다면?
해외 퇴직연금제도는 기본적으로 기금형제도로서 가입자들의 자산운용, 즉 투자를 전문기관에 맡기는 구조로 되어 있다. 사실 이것이 맞는 제도 활용 내지 자산운용 방법이다. 그러나 우리나라 퇴직연금제도는 우리나라 가입자들의 심리적 회계(mental account)에선 투자수익보다 원금을 지키는 것을 거의 생명줄과 같이 생각한다. 그래서 자신이 자산운용 의사결정을 하는 것을 원칙으로 출발했다. 왜냐하면, 퇴직금은 후불임금으로 오로지 가입자 개인의 사적 재산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기간이 지나면서 수익률을 추구할 수 있는 방법들이 모색되었는데 가장 쉽게 제도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방법은 퇴직연금사업자 일임형 자산운용을 허용하는 것이었지만 지난 기간 특정 퇴직연금사업자가 일임형 자산운용을 5~7년간 운용해서 상당한 수익을 창출한 경우도 있었다. 하지만, 이는 제도의 근간에 부합하지 않는다는 차원에서 금지되었다.
현실적으로 가능한 최상의 방법은 일임형을 허용하여 퇴직연금사업자 간 진정한 수익률 경쟁을 유도하고 가입자들은 여러 대안 중에 선택할 수 있게 하는 것이다. 이를 나름대로 충실히 반영하고 있는 퇴직연금제도 기금형 도입안이 안도걸 의원의 ‘퇴직연금기금 전문운용기관’ 도입이다. 상당히 현실적인 수익률 제고의 대안이라고 판단된다.
해외 벤치마킹에 대해서는 각국의 연금제도는 그 나라의 자본시장 환경에 따라 천차만별이고 우리나라와 같이 신탁이나 금융시장의 자율성이 부족한 나라에서 다른 나라를 벤치마킹하여 적용하자는 것은 결코 현실적인 접근이라 보지 않는다.
△ 퇴직연금 실물이전 이슈에 대해 설명해 달라.
일부 상품의 실물이전이 되지 않는다. 디폴트 옵션, MMF, REITs, 상장 공모펀드, 실적배당형 보험 등 특정 상품은 실물이전이 불가능하다. 또한, 이전하려는 금융회사가 해당 상품을 취급하지 않으면 이전이 제한되어 있다.
또한 금융사 간 경쟁 속에서, 은행에서 증권사로의 자금 이동이 심화하고 있는데 실물이전 제도 도입 이후, 은행에서 증권사로 자금이 대규모로 이동하고 있다. 특히, 증권사의 개인형퇴직연금(IRP)은 ETF와 같은 투자상품을 실시간으로 거래할 수 있어 젊은 층과 적극적인 투자자들에게 인기를 끌고 있다.
무엇보다 제도적 한계와 개선 필요성으로서 퇴직 직후 DC형 계좌에서 다른 금융사의 IRP로 실물이전이 불가능한 점이 문제로 지적된다. 이는 퇴직금 지급 시한(14일)과 실물이전 처리 기간의 충돌로 인해 발생하며, 관련 제도 개선 논의가 진행 중인 것으로 안다.
△ ETF 활성화가 퇴직연금 운용에 미친 영향은?
ETF 활성화는 퇴직연금 운용 방식에 큰 영향을 미치며, 기존의 보수적인 자산 운용에서 벗어나 보다 적극적이고 다각화된 투자 전략을 가능하게 했다. 퇴직연금 내 실적배당형 상품 확대로서 ETF는 원리금보장형 상품에 비해 높은 수익률을 제공하며, 퇴직연금 내 실적배당형 상품의 성장을 견인하고 있다. 2025년 기준, 실적배당형 상품의 평균 수익률은 7.8%로, 원리금보장형(2.89%)보다 약 3배 높은 성과를 기록중이다. 특히 ETF는 저렴한 수수료, 실시간 거래 가능성, 분산 투자 효과 등으로 개인 투자자들에게 매력적인 선택지가 되었으며, 퇴직연금 자산의 질적·양적 성장을 촉진하고 있다.
절세 효과와 복리 효과 극대화로서 퇴직연금 계좌에서 ETF를 활용하면 과세이연 혜택을 통해 배당 및 이자 소득에 대한 세금을 연기할 수 있어, 복리 효과를 극대화할 수 있다.
투자 다각화와 새로운 상품 도입으로서 ETF를 통해 글로벌 자산 및 테마형 투자가 활성화됐다. 미국 S&P500, 나스닥100, AI·반도체 테마 ETF 등 다양한 상품이 인기를 끌고 있으며, 국내외 자산에 대한 접근성이 커졌다. 결국, ETF 활성화는 퇴직연금 운용의 패러다임을 변화시키며, 높은 수익률과 절세 혜택, 투자 다각화를 통해 노후 자산 증식에 기여하고 있다.
△ 수익률이 낮은 근본 원인은 제도 설계 탓인가, 운용 행태 탓이라고 생각하나?
수익률인 저조의 근본 원인은 결국 자산운용 능력이 부족한 가입자들에게 자기 의사결정권 고수만을 고집하는 제도의 비탄력성에 있다. 지금은 퇴직연금사업자도 상품제공기관인 자산운용사도 모두 수익률에 대한 책임이 없다.
다시 말해서 현 제도에서 누가 퇴직연금 적립금 운용 수익률에 대한 책임을 지는가란 질문은 결국 가입자 자신 밖에 안된다. 그러므로 자산운용에 어려움을 가입자들을 위해 전문가에게 맡길 수 있는 숨통을 터 주어야 한다. 거창한 수탁법인을 설립하는 기금형제도 도입이니, 공공이익추구 공단 설립을 어떻게 하느니, 국민연금이 수익률 제고를 위해 퇴직연금사업자가 되어야 한다는 등등의 주장은 진정한 수익률 개선의 길이라고 볼 수 없다.
△ IRP의 세제 혜택은 실질적으로 작동하고 있는 것인지?
한국 개인형 IRP 제도의 가장 큰 문제 가운데 하나는 세액공제 방식에 머물러 있다는 점이다. 현재 IRP는 연간 최대 900만원까지 납입액의 13.2~16.5%를 세액공제해 주고 있다. 겉보기에는 혜택이 커 보이지만, 세액공제 구조상 고소득자에게 상대적으로 유리하고 저소득층이나 중산층이 체감하는 실질 혜택은 크지 않다. 그만큼 추가 납입을 할 유인이 약해지고, 전체 퇴직연금 가입률과 자발적 노후 준비를 끌어올리는 데 한계가 발생한다.
반면 호주의 슈퍼애뉴에이션(Superannuation) 제도는 소득공제 방식을 택하고 있다. 근로자가 퇴직연금에 납입한 금액을 세전 소득에서 공제해 과세표준을 줄여 주는 구조라 소득 수준과 관계없이 동일한 비율의 세제 혜택을 누릴 수 있다. 이 방식은 제도에 대한 참여 장벽을 낮추고, 근로자의 자발적인 추가 납입을 활성화하는 역할을 했다. 그 결과 슈퍼애뉴에이션 자산은 호주 가계 자산 중 주택 다음으로 큰 비중을 차지하는 핵심 자산 축으로 자리 잡았다.
한국은 국민연금 소득대체율이 낮고 노인 빈곤율이 OECD 상위권을 기록할 정도로 노후소득 기반이 취약한 나라다. 그럼에도 IRP 세제 혜택이 세액공제에 머물러 있어 장기 저축을 강하게 자극하지 못하고, 은퇴 후 상당수가 소득 하락과 빈곤 위험에 노출될 수밖에 없는 구조다. 반대로 호주는 슈퍼애뉴에이션에 강력한 세제 인센티브를 부여해 근로자가 장기간 자산을 쌓도록 유도해 왔다. 60세 이후 연금을 수령할 때 비과세 혜택을 제공해 계좌를 오래 유지할 동기를 높였고, 그 결과 퇴직연금 자산은 2024년 기준 약 4조 호주달러(약 3588조원) 규모로 성장해 은퇴 후 안정적인 현금흐름을 뒷받침하고 있다.
이런 점을 감안하면, 한국의 IRP 세제 혜택을 세액공제에서 소득공제로 전환하는 것은 단순한 기술적 조정이 아니라 제도 설계의 방향을 바꾸는 문제다. 모든 소득계층이 동일한 비율로 혜택을 누리도록 구조를 바꾸면 중산층과 저소득층의 참여율이 높아지고, 자발적인 추가 납입도 늘어날 가능성이 크다. 이는 곧 퇴직연금 자산의 확대와 노후소득 보장 강화로 이어져, 현재의 높은 노인 빈곤 문제를 완화하는 데 중요한 수단이 될 수 있다. IRP 소득공제 전환이 시급하다는 주장은 바로 이러한 구조적 효과를 염두에 둔 제안이라 볼 수 있다.
△ 디폴트옵션(사전지정운용제도) 활성화는 수익률 제고에 효과가 있을지?
현재와 같이 원리금보장상품이 포함되어 있는 것으로는 한계를 가질 수밖에 없다. 자산운용 능력이 부족하여 원리금보장상품을 울며 겨자 먹기로 운용하던 사람들에게 강제로 디폴트 옵션을 하게 하여 다시 원리금보장상품을 찾게 하는 가입자 괴롭힘 악순환 고리를 끊어야 한다. 원리금보장상품을 제외하지 못하다면 일본의 경우처럼 한가지 운용방법의 적립금 투자 한도를 일정 비율로 제한하여 자연스럽게 포트폴리오를 다각화하게 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 향후 10년을 바라봤을 때, 퇴직연금 제도는 어떤 방향으로 개편돼야 하나?
몇가지 단계별 접근이 필요할 것이다. 가장 우선적으로는 기존퇴직연금사업자와 기금 전문운용기관이 서로 공동책임을 지는 기금형 도입이 우선이다. 그 다음으로는 퇴직 IRP에 대한 일시금 수령을 제한해야 한다. 최소한 중도인출 조건하에서 인출가능하게 해야 한다. 또한, 하루빨리 적립금 담보대출을 받을 수 있게 해야 한다. 그래야 원금이 보존되는 효과로서 어쩔 수 없이 전부 중도인출하여 적립금을 소진하게 되는 것을 막을 수 있다.
그리고 가장 바람직하지 않은 두 가지는 공적연금이 퇴직연금시장에 개입하는 것이나, 공공이익추구형 퇴직연금공단설립은 애초에 거론되지 말아야 한다.
[스트레이트뉴스 조성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