멈춘 남북, 축구공이 다시 잇는다…'2026년 아리스포츠컵 원산 대회' 시동

남북 유소년 축국대회 재개 위한 국회 토론회 개최 여야·전문가 한목소리 "이제 원산으로 돌아갈 시간" 3통 규제·특별법·국제 협력 등 다자 평화 프로젝트 확장 기대

2025-11-24     설인호 기자
24일 오전 국회의원회관에서 '다시 심는 평화, 우리는 원산으로 간다' 정책 토론회가 열렸다. 참석자들이 무대 위에서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설인호 기자.

남북관계 경색으로 대화의 문이 장기간 굳게 닫힌 가운데, 스포츠 교류가 다시 그 문을 여는 단초가 될 수 있을지 관심이 쏠린다. 24일 오전 국회의원회관에서 열린 '다시 심는 평화, 우리는 원산으로 간다' 정책 토론회는 2014년 이후 22차례 이어져 온 아리스포츠컵 남북 유소년 축구 교류의 신뢰를 기반으로 원산대회 재개 가능성을 짚어보는 자리였다.

이날 행사는 더불어민주당 허영·박지원·송기헌·윤건영·이기헌 의원이 공동 주최하고 사단법인 남북체육교류협회와 글로발평창포럼(GPPF)이 주관했으며 세종텔레콤과 법무법인 대환이 후원했다. 행사장에는 우원식 국회의장과 최문순 전 강원도지사, 노종면·윤종근 의원 등이 직접 참석해 힘을 보탰고 정동영 통일부 장관, 김동연 경기도지사, 김병기 민주당 원내대표, 염태영 의원 등도 축전을 전했다.

우원식 의장은 축사에서 "스포츠는 평화의 마중물이며 선언이 아니라 실천"이라며 "남북 유소년 축구대회를 되살리는 이 자리가 매우 뜻깊다"고 말했다. 김병기 민주당 원내대표 역시 "스포츠는 마음의 벽을 여는 방식이며 아리스포츠컵은 남북 신뢰를 쌓는 계기가 됐다"며 국회 차원의 전폭적인 지원 의지를 밝혔다.

박지원 의원은 "윤석열 정부에서 남북관계가 완전히 끊겼지만 이제는 다시 회복의 조짐을 보고 있다"며 "북한의 문이 열릴 때까지 포기하지 말아야 한다"고 했다. 허영 의원은 개회사에서 "남북교류협력법상 체육 분야 특례를 신설하고 민간 교류에 신속 승인 절차를 만들기 위한 법 개정에 앞장서겠다"고 약속했다. 최문순 전 지사는 "아리스포츠컵은 남북관계가 최악일 때에도 유일하게 지속된 교류 창구였다"며 원산대회 추진의 의미를 거듭 강조했다.

24일 오전 국회의원회관에서 '다시 심는 평화, 우리는 원산으로 간다' 정책 토론회가 열렸다. 왼쪽부터 더불어민주당 박지원 의원, 허영 의원, 최문순 전 강원도지사, 김형진 유소년 축구 원산대회 후원회장(세종텔레콤 회장), 김헌정 글로벌평창포럼 대표(변호사). 설인호 기자.

 ◇ "22회 축적된 신뢰, 원산으로 되돌아갈 시간"


이어진 토론회에서는 김경성 남북체육교류협회 이사장이 직접 주제발표를 통해 아리스포츠컵의 의미와 그동안의 경과를 설명했다. 김 이사장은 "2018년 평창 동계올림픽이 남긴 평화의 유산을 민간이 실천해온 것이 바로 아리스포츠컵"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지난 22회 동안 남북 유소년들이 한 그라운드에서 뛰며 쌓아온 경험이 한민족 동질성을 되살리는 교류의 자산"이라고 평가했다.

이어 2018년 춘천 대회 이후 북한 4.25체육단과 '2019년 원산 개최'에 합의했던 내용을 상기시키며 "코로나19라는 예외적 상황으로 중단됐을 뿐 합의는 살아있다"고 강조했다. 협회는 올해 미국과 중국에서 북측과 비공개 실무 협의를 이어오며 2026년 원산대회 재개를 위한 토대를 다시 다지고 있다고 밝혔다.

김 이사장은 내년 원산대회를 성사시키기 위한 네 가지 추진방향도 제시했다. △민간 채널의 유지와 확대 △정부·국회의 법·제도적 지원 △국제사회의 지지 확보 △유소년 중심의 미래 지향적 접근이다.

24일 오전 국회의원회관에서 '다시 심는 평화, 우리는 원산으로 간다' 정책 토론회가 열렸다. 김경성 남북체육교류협회 이사장이 주제발표를 하고 있다. 설인호 기자.

특히 김 이사장은 '남북 스포츠교류 특별법' 제정 필요성을 역설했다. 김 이사장은 "남북교류협력법의 경직성이 남북 스포츠교류의 발목을 잡아온 대표적 제약"이라며 "현 제도에서는 일정 변경·선수 교체·긴급 물품 반입 등이 위법이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아울러 김 이사장은 원산대회가 미국 유소년팀 참가까지 포괄하는 '다자 평화 프로젝트'로 확장될 가능성을 언급했다. "아리스포츠컵 북미대회는 북미 관계의 스몰딜이 될 수 있다"며 "작은 공이 큰 공을 움직인다는 소구전동대구의 정신이 지금에도 그대로 유효하다"고 말했다.


 ◇ 3통 개선·제재 대응·국제 협력 논의…"단발 이벤트가 아닌 시스템 정착필요"


이어진 발표에서는 원산대회 추진에 필요한 구체적 제도 개선과 외교 전략이 제시됐다. 김슬기 변호사는 남북교류협력법의 '3통 규제(통행·통신·통관)'가 실시간 일정 조정이 필수인 스포츠 교류의 특성을 따라가지 못한다고 지적했다. 아울러 김 이사장이 주장한 사후 승인제 도입, 복수방문증명서 확대 등 특별법 제정 필요성을 거듭 촉구했다.

박상홍 대한변협 북한인권특위 위원장은 아리스포츠컵을 "제재 틀 안에서도 보호받아야 할 인도적·교육적 프로젝트"로 규정하고 미국 선수단 초청이나 '원산 코인' 등 지역 기반 디지털 플랫폼 구상도 언급했다. 조재섭 통일부 사회문화협력기획과장은 민간 자율 중심의 체육교류를 지원하고 북한이 참여할 수 있는 국제대회 등을 활용하겠다는 정부의 기본 방향을 소개했다.

24일 오전 국회의원회관에서 '다시 심는 평화, 우리는 원산으로 간다' 정책 토론회가 열렸다. 참가자들이 객석에서 화이팅을 외치고 있다. 설인호 기자.

심층 토론에서는 남북관계 변화에 따라 교류 방식도 완전히 새로 설계해야 한다는 의견이 이어졌다. 김진호 기자는 "정부·국회는 전면에 나서기보다 스텔스 지원이 더 효과적"이라고 했고, 한기호 교수는 "원산대회는 단발 이벤트가 아니라 시스템으로 정착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김희남 교수는 남북관계의 '게임의 룰' 자체가 바뀐 상황을 언급하며 더욱 신중한 접근을 주문했고, 위원석 대한축구협회 소통위원장은 "전통적으로 남북 모두 관심이 높고 경쟁력이 있는 축구야말로 교류 효과가 가장 크다"고 평가했다.

남북 간 모든 공식 채널이 닫히고 민간 접촉마저 거의 끊긴 지금의 현실을 감안하면, 이날 토론회는 단순한 학술 행사나 논의의 장 이상의 의미를 지녔다는 평가다. 과거에도 비정치적 교류가 대화 재개의 신호탄 역할을 해왔던 만큼, 이번 논의 역시 남북 간 신뢰 회복을 향한 실질적 전환점으로 이어질 것이라는 기대 섞인 전망이 나온다.

[스트레이트뉴스 설인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