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석탄동맹 가입한 한국…석탄의존·전력수요·지역경제가 부르는 ‘현실의 벽’
지난 23일(한국시간) 브라질 벨렝에서 폐막한 제30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30)에서 우리나라가 ‘탈석탄동맹(PPCA)’에 가입했다. 한국은 싱가포르에 이어 아시아 두 번째 가입국으로 국제적 위상을 높였다는 평가를 받지만, 석탄 의존도가 여전히 높은 전력 구조와 전력 수요 증가, 지역경제의 민감한 구조를 고려할 때 ‘정책 현실과의 간극’이 크다는 지적도 함께 나오고 있다.
24일 업계와 정부에 따르면 이번 PPCA 가입으로 한국은 국내 석탄화력발전소 61기 중 40기를 2040년까지 폐쇄하기로 했다. 온실가스 저감 장치가 없는 신규 석탄발전은 건설하지 않겠다는 방침도 함께 제시했다. 나머지 21기에 대해서는 경제성·환경성·전력수급 안정성 등을 검토해 내년까지 구체적 계획을 확정하겠다는 입장이다.
◇원전·LNG·재생에너지…세 축을 동시에 조정해야 하는 한국
PPCA는 파리협정 1.5도 목표 달성을 위해 OECD·EU 회원국이 2030년까지 석탄발전을 전면 퇴출해야 한다는 기준을 제시해왔다. 한국은 이번 가입을 통해 국제적 책임과 기여 의지를 보여줬지만, 2040년까지 40기 폐쇄라는 일정은 국제 기준과 약 10년의 시차가 있어 ‘속도 조절형 목표’라는 해석도 뒤따르고 있다.
국제에너지기구(IEA) 등 공개 자료에 따르면 한국의 석탄발전 설비 규모는 약 39GW 수준으로 세계 상위권에 속한다. 전력 생산 비중 역시 최근 수년간 30% 안팎을 유지해 왔다. 재생에너지와 액화천연가스(LNG) 발전이 확대됐지만 석탄발전이 여전히 기저전원의 중요한 축을 이루는 구조는 “단기간 급격한 감축은 쉽지 않다”는 업계 평가를 뒷받침한다.
정부는 제11차 전력수급기본계획에서 2038년까지 원전·재생에너지 비중을 늘리고, 석탄발전 비중을 대폭 줄이는 방향을 제시했다. 다만 원전·석탄·LNG가 ‘3축’으로 기저전원 역할을 맡아온 한국 전력체계에서 석탄 축소 속도가 빨라지면 나머지 두 축인 원전과 LNG 조정이 불가피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산업계에서는 반도체와 데이터센터, 전기차 같은 전력 집약 산업의 성장으로 전력 수요 증가세가 지속되고 있다는 점도 우려 요인으로 거론된다.
석탄발전 감축의 현실적 대안으로 꼽히는 LNG는 국제 가격과 환율에 매우 민감하다. 수입 의존도가 높은 한국에서는 글로벌 가스 가격 변동이 곧바로 전력요금 인상 압력으로 이어질 수 있다. 최근 몇 년간 국제 천연가스 가격 급등이 국내 발전비용 논란을 촉발한 점을 고려하면, 석탄발전 감축 과정에서 LNG 비중 확대가 가져올 요금 변동성은 피하기 어려운 과제로 꼽힌다.
정부는 재생에너지 발전 비중을 2038년 약 29% 수준으로 끌어올리겠다는 계획을 제시하고 있다. 그러나 태양광·풍력 등 출력 변동성이 큰 재생에너지를 대규모로 확대하려면 계통 안정화, 송배전망 확충, 저장장치(ESS) 등 인프라 투자가 반드시 병행돼야 한다. 국제에너지기구(IEA) 역시 한국을 포함한 주요국에 “재생 확대는 계통 유연성 확보가 전제돼야 한다”고 조언해 왔다.
◇태안·보령·삼척 등 ‘발전소 벨트’가 직면한 지역경제 충격
태안·보령·삼척 등은 국내 주요 석탄발전소가 밀집한 지역이다. 특히 태안과 보령을 품은 충남 지역은 국제 연구에서도 석탄발전 설비가 집중된 곳으로 자주 언급된다. 이들 지역은 발전소가 고용과 세수, 지역 소비를 떠받쳐온 구조여서 석탄발전 폐쇄는 지방재정 축소와 고용 감소, 지역 상권 위축 등 연쇄 충격을 불러올 가능성이 크다.
노동계와 지역단체들도 “폐쇄 결정은 수용하지만 대체 산업과 고용전환 대책이 없는 전환은 지역에 큰 부담”이라는 우려를 꾸준히 제기하고 있다.
COP30 결정문에는 전환 과정에서 노동자와 지역 공동체가 소외되지 않도록 하는 ‘정의로운 전환(JT)’ 원칙이 공식 반영됐다. 그러나 국내에서는 석탄발전소 폐지지역을 지원하기 위한 특별법이 여러 차례 발의됐음에도 통과되지 못한 상태다. 충남도·시민단체·노동계는 특별법 제정을 지속적으로 요구하고 있지만 정부 차원의 구체적인 지원 체계는 아직 마련되지 않았다.
한국의 PPCA 가입은 기후외교와 국제 협력 측면에서 의미 있는 진전이다. 그러나 전력수요 증가, 산업 경쟁력, 지역경제 충격, 계통 유연성, LNG 가격 변동 등 현실적 변수들을 고려하면 탈석탄 전환에는 상당한 비용과 시간이 필요하다. 정부가 내년까지 마련하겠다고 밝힌 나머지 석탄발전 설비 처리 방안과 지역 지원 대책이 실제 현장의 필요와 위험을 충분히 반영할 수 있을지가 향후 정책 평가의 핵심이 될 전망이다.
[스트레이트뉴스 박응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