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태석 KISTEP 원장 “예타 폐지, 연구·산업·금융·데이터 잇는 ‘새 틀’로”

기자간담회 이어 공동포럼 개최…“한국 산업, 구조적 경쟁력 약화 신호 뚜렷”

2025-11-25     박응서 기자
25일 연 기자간담회에서 오태석 KISTEP 원장(왼쪽 첫번째)이 “예타 폐지 이후 한국의 R&D는 더는 연구(R)에 머물 수 없다”며 “실증·상용화·금융·인력·데이터까지 이어지는 R&I(Research & Innovation) 관점으로 정책틀을 바꾸지 않으면 기술패권 경쟁 속에서 뒤처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KISTEP 제공

한국과학기술기획평가원(KISTEP)이 25일 산업연구원(KIET)과 공동포럼을 열기에 앞서 기자간담회를 갖고, 예비타당성조사(예타) 폐지를 계기로 한국의 혁신정책 체계를 전면적으로 다시 설계해야 한다고 밝혔다. 이날 오태석 KISTEP 원장은 “예타 폐지 이후 한국의 R&D는 더는 연구(R)에 머물 수 없다”며 “실증·상용화·금융·인력·데이터까지 이어지는 R&I(Research & Innovation) 관점으로 정책틀을 바꾸지 않으면 기술패권 경쟁 속에서 뒤처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오 원장은 특히 내년 또는 2027년 예산부터 적용될 정부의 ‘사전 기획·점검’ 체계가 단순한 행정 절차 변경이 아니라 한국 혁신정책의 구조를 바꾸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오 원장은 “예전에는 총사업비 기준으로 예타를 통과해야만 움직일 수 있었지만, 새로운 체계는 산업 생태계와 시급성을 중심으로 사업을 판단해야 한다”며 “각 부처가 10개든 20개든 사업을 올릴 수 있는 만큼, 사업 난립을 막기 위한 평가 기준과 책임 구조를 조기에 명확히 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이어 그는 “기초·응용·개발이 분절된 기존 구조로는 TRL을 끌어올리지 못한다”며 “미국처럼 기초기술부터 상용화·인증까지 이어지는 풀스택 시스템을 만들고, 기술 분야별 스케일업 전략을 별도로 설계해야 한다”고 말했다.

산업정책과 기술정책을 잇는 협력 구조의 필요성도 강조했다. 오 원장은 양자·핵융합·초전도·센서 등 초장기 전략기술을 예로 들며 “이 분야는 수조원이 투입돼야 하는데, 한국 금융은 아직 기술 기반 투자를 감당할 체계가 없다”며 “정부 R&D가 초기 성장동력을 만들고, 민간·정책금융·보험·지분투자 등이 뒷단에서 산업화를 떠받치는 구조를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연구자·기업·금융·부처가 각자 움직이는 구조로는 ‘기술이 산업이 되는 과정’이 성립되지 않는다”며 “과학계–금융계를 잇는 기반을 만드는 것이 KISTEP의 새로운 의무”라고 강조했다. 그는 정책 데이터의 부재도 지적하며 “인력·예산·고용·지역·특허 데이터가 분절돼 정책의 적시성과 정확성이 떨어진다”며 “IRIS와 고용·교육 데이터를 연계해 인재 흐름과 지역 수요까지 파악하는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러한 문제의식은 오후에 열린 KISTEP-KIET 공동포럼으로 이어졌다. 포럼에서 오 원장은 발표자료를 통해 “기술·산업·공급망·표준·안보가 한 묶음으로 움직이는 시대”라며 “한국도 산업 생태계 전체를 보는 통합 정책으로 전환해야 한다”고 제시했다.

이어 그는 “R&D 성공률은 높지만 사업화 성공률은 50%에 불과한 ‘코리아 R&D 패러독스’를 해소하려면, 실증·확산·스케일업 단계에 자원을 집중해야 한다”며 “특정 기술은 기초, 부품, 장비, 완제품, 인증까지 통합된 풀스택 환경이 갖춰져야 세계 시장에서 경쟁할 수 있다”고 말했다. 또 그는 “혁신은 민간이 주도해야 한다”며 “대기업·중견·스타트업·출연연이 각각 역할을 분담하는 구조로 바꾸고, 정부는 뒷단에서 조정·지원 기능을 수행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오후에 열린 포럼에서 권남훈 산업연구원(KIET) 원장이 한국 산업의 구조적 약화를 수치로 제시하며 발표하고 있다. KISTEP 제공

권남훈 산업연구원(KIET) 원장은 발표에서 한국 산업의 구조적 약화를 수치로 제시하며 경고음을 울렸다. 권 원장은 “한국의 제조업 경쟁력(CIP) 지수는 2010년을 정점으로 지속 하락했고, 2015년 중국에 추월당했다”며 “수출 점유율과 수출고도화 지수가 함께 떨어지는 것은 산업 경쟁력 약화의 전형적 신호”라고 말했다.

또 그는 “2023년 한국의 대중국 무역수지가 수교 이후 처음 적자로 전환됐다”며 “과거 한국 중간재–중국 조립 구조는 이미 붕괴했고, 양국 산업은 협력에서 경쟁으로 넘어갔다”고 분석했다. 그는 잠재성장률 하락, AI 활용 부진, 특허의 경제적 가치 미흡 등을 지적하며 “기술정책과 산업정책을 하나의 프레임으로 묶지 않으면 경쟁국 대비 격차가 벌어질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날 포럼에 앞서 두 기관은 과학기술·산업정책 공동 아젠다 발굴을 위한 업무협약(MOU)도 체결했다. 오 원장은 “기술혁신과 산업정책을 결합한 통합 프레임을 만드는 것은 한국 경제의 구조적 과제”라며 “KISTEP과 KIET가 함께 ‘한국형 R&I 체계’를 만드는 데 기여하겠다”고 말했다.

[스트레이트뉴스 박응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