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를 무시하는 초헌법 대통령

군부독재시절 말고 국민 앞에 이토록 오만한 대통령은 없었다

2015-12-18     김상환
ⓒ뉴시스

노동5법, 경제활성화법‧테러방지법 등 ‘대통령 관심법안’을 연내 처리할 욕심으로 새누리당 지도부가 그 본분을 잊은 채 대통령 긴급명령까지 언급하며 국회법대로 대응하고 있는 정의화 국회의장을 연일 몰아붙이고 있다.

청와대 역시 정무수석을 국회의장에게 보내 직권상정을 직접 요구하는 등 당청의 입법부 수장 압박이 그 도를 넘어서고 있다. 청와대가 입법부의 수장인 국회의장에게 무례한 압박을 가한다는 것은 엄연히 삼권분립이 존재하는 민주국가에서는 결코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게다가 불법 직권상정도 모자라 이제 긴급재정명령까지 검토하겠다니 국회를 허수아비나 청와대의 하부기관으로 아는 모양이다. 여당 지도부 또한 국회수장이 입법을 거부하는 게 비상사태라 생각한다면 이는 의회주의에 대한 몰상식의 극치로 제 스스로 입법권을 내팽개치고 청와대의 심복임을 고백하는 것이다.

대통령 긴급명령은 대통령이 국가비상사태 등 중대한 국가 위기가 있어 국회 소집을 기다릴 여유가 없다고 판단할 경우 법에 따른 권한에 구애받지 않고 긴급한 조치를 위해 명령할 수 있는 권한이다.

긴급명령은 6.25 전쟁 때 많이 발동됐으며 1972년 박정희 전 대통령이 유신헌법을 선포한 이후 전두환 정권이 출범하기까지의 제4공화국 때는 ‘긴급조치’라고 불렸다. 이후 1993년 김영삼 전 대통령이 긴급재정경제명령 제16호를 발동해 금융실명제를 전격 실시한 바 있다.

헌법 제76조는 대통령이 긴급명령권을 발동할 수 있는 경우를 “내우·외환·천재·지변 또는 중대한 재정·경제상의 위기에 있어서 국가의 안전보장 또는 공공의 안녕질서를 유지하기 위하여 긴급한 조치가 필요하고 국회의 집회를 기다릴 여유가 없을 때에 한 한다”라고 규정하고 있다.

그렇다면 지금이 과연 국가비상사태인가. 새누리당이 지난 총선에서 소수당 될 것이 두려워 국회선진화법을 밀어붙여 만들어 놓고, 다수당이 되자 꼼수로 그 법을 요상한 국가위기논리를 동원하여 파괴 무용화 하려는 것은 후안무치한 일이다.

박근혜 대통령이 연일 '국회 무능', '일 안 하는 국회'라며 공세를 펴고 마치 국회 때문에 이 나라가 발전하지 않는 것처럼 하고 있는데, 막상 박 대통령 자신은 의원 시절 얼마나 일을 잘 했을까.

박 대통령은 13년 7개월 동안 고작 15건의 대표발의를 했을 뿐이다. 상임위원회 출석률 또한 50% 미만인 48.9%에 불과 했다. 혹 본인의 형편없는 의정활동을 기준으로 한다면 국회가 일하지 않는다는 지적이 틀린 말이 아닐 수는 있다.

또 박 대통령은 "우리나라가 테러를 방지하기 위해서 이런 기본적인 법체계조차 갖추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전 세계가 안다. 이슬람국가(IS)도 알아버렸다."며 마치 우리나라에 테러방지기능이 없는 것처럼 말한다.

정말 테러방지법이 없는 우리나라는 테러 무방비국가인 것일까. 전혀 그렇지 않다. 우리나라는 이미 수십 년 전부터 테러에 대비한 제도와 기구를 가지고 있다. 33년 전인 1982년 국가대테러활동지침이 제정되었고, 그에 따라 우리나라의 대테러정책 최고결정기구로서 국가테러대책회의가 만들어졌다.

국무총리·외교부 장관·국방부 장관·국정원장·국가안보실장 등 국가안보를 담당하는 최고수뇌들이 모두 여기에 모여서 대테러정책을 논의하고, 사건별 테러대책본부를 지휘하고, 군과 경찰이 항시 운용하고 있는 대테러특공대에 출동명령을 내린다.

또한, 국가테러대책회의는 그 밑에 실무를 논의하는 테러대책상임위원회와 테러정보를 통합 관리하는 컨트롤타워인 테러정보통합센터를 거느리고 있으며, 365일 24시간 물샐틈없는 테러대비체제를 갖추고 있다.

이러한 국가테러대책회의는 대통령 소속 하에 둔다고 명시되어있다. 그런데 33년간 나라의 테러대책기구로 활약해온 국가테러대책회의는 프랑스 테러와 IS의 위기감이 고조된다며 연일 국회를 압박하고 있는 올해는 단 한 차례도 열리지 않았다.

규정에 따르면 정기회와 임시회를 두도록 되어 있고 정기회는 반기 1회를 원칙으로 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테러방지법이 없어서 대응을 못 한 것이 아니라, 버젓이 제도와 기능이 존재하는 데도 활용을 하지 않고 있는 것이다.

무턱대고 테러방지법이 없으니 테러를 막을 수 없다고 이야기하면 지금 이 순간에도 대테러센터와 대테러특공대에서 묵묵히 임무를 다하고 있는 직원들의 사기가 어떻게 되겠는가.

항공기 납치와 폭파, 국제적 인물에 대한 암살, 불특정다수를 향한 인질극, 주요 국가기간시설에 대한 폭탄테러, 주요 테러단체 조직원에 대한 출입국통제 등이 모두 현행법으로 예방할 수 있고, 처벌할 수 있다.

이처럼 이미 우리나라는 테러를 막기 위한 제도와 조직이 잘 갖춰져 있다. 그래서 야권과 시민단체가 대선부정, 해킹, 간첩조작 등으로 물의를 빚고 있는 오직 국정원만을 위한 테러방지법을 반대하고 있는 것이다.

다른 법안도 마찬가지다. 경제적 약자인 노동자들을 궁지로 몰아 갈, 그래서 재벌만 배불릴 수 있는 그런 법안들을 야권과 경제민주화를 원하는 시민들이 반대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인 것이다.

국회의 독립성을 훼손하고 민주주의의 근간을 흔드는 불법 직권상정 압박 행태는 있을 수 없는 일로 즉각 중단되어야 한다. 오죽하면 정의화 국회의장이 '성을 간다'는 얘기까지 하겠는가.

지금은 오히려 국가비상사태가 아니라 대통령비상사태라고 해야 더 적절하다. 군부독재시절 말고 국민 앞에 이토록 오만한 대통령은 없었다.

 

김상환(전 양천신문/인천타임스 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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