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의 사자성어 ‘혼용무도’는 박 정권에 대한 경고문이다

정부·여당의 노동 5법은 겉으로는 노동법, 실제로는 기업보호법

2015-12-24     김상환
2015년 올해의 사자성어 ‘昏庸無道’는 이승환 고려대 교수(철학)가 추천한 것으로, 당나라 때 문필가 손과정의 『書譜』에서 이 교수가 직접 집자했다.ⓒ교수신문

대학 교수들이 뽑은 올해의 사자성어로 혼용무도가 선정됐다. 혼용무도는 어리석고 무능한 군주를 가리키는 혼군(昏君)과 용군(庸君)을 함께 이르는 ‘혼용(昏庸)’과 세상이 어지러워 도리가 제대로 행해지지 않음을 묘사한 논어의 ‘천하무도’(天下無道) 속 ‘무도(無道)’를 합친 표현이다.

혼용무도를 선택한 교수는 전체 교수 886명 중 59.2%에 달하는 524명이다. 우리나라 교수 10명 중 6명은 현 세태를 ‘암흑에 뒤덮인 것처럼 온통 어지럽다’고 인식한 셈이다. 이승환 고려대 철학과 교수는 올해의 사자성어로 혼용무도를 추천한 이유로 ▲메르스 사태 무능함▲삼권분립과 의회주의 원칙 훼손 ▲역사교과서 국정화를 들었다.

교수신문은 2001년부터 매년 설문조사를 통해 한 해를 상징하는 사자성어를 선정, 발표하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 취임 첫 해인 2013년에는 순리를 거슬러 행동함을 뜻하는 도행역시(倒行逆施), 작년에는 사슴을 가리켜 말이라며 사실이 아닌 것을 사실로 만들어 강압으로 인정하게 한다는 뜻의 지록위마(指鹿爲馬)가 선정됐었다.

대학 교수들은 박 대통령 재임 3년간을 순리를 거슬러 정치하다가, 사실이 아닌 것을 사실로 만들어 강압하고는, 어리석고 무능함으로 민생을 어지럽히고 괴롭히다 나라가 망하기 일보직전이 되었다고 생각하고 있는 것이다.

그럼에도 박 대통령은 아직도 자신이 무엇을 잘못하고 있는 줄 모르고 있다. 여전한 불통정치 이어가며 장관은 마냥 돌려막고 총선 세 불리기에만 몰입하고 있다. 특히 총선에 출마하려는 여당 후보들을 능력이 아니라 자신에게 얼마나 ‘진실한 사람’인가를 기준으로 내세워 사실상 공천에 개입하고 있음도 감추지 않는 대범함(?)을 보인다.

또한 박 대통령은 논란 중인 노동개혁에 대해 “우리 청년들의 생존이 달려 있는 문제인 만큼 어떤 이유로도 정쟁의 대상이 될 수 없고 정략적 흥정이나 거래의 수단이 돼서는 안 된다"며 밀어붙이기를 마다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박 대통령이 그토록 속이 타들어가고 잠도 못 이루며 통과시키고자 하는 노동5법은 과연 청년들을 위한 것인가.

정부·여당이 발의한 근로기준법·기간제법·파견법·고용보험법·산재법 개정안의 문제점을 조목조목 짚어보자. 결론적으로 정부·여당의 노동 5법은 겉으로는 노동법이라는 이름을 달고 있지만 실제로는 기업보호법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특히 '근로자를 위한 법'이라는 정부·여당의 강변과는 달리, 이 법들은 그간 노동 시장에서 사용자의 이해만을 위해 '불법'적으로 행해지던 관행들을 법 테두리 안으로 밀어 넣어주는 ‘불법의 합법화' 법안이다.

정부·여당은 '선진국도 다 노동 개혁을 했다'고 주장하지만, 이는 세계 각국의 노동 정책 중 입맛에 맞는 부분만 골라낸 악의적인 왜곡에 불과하다. 이런 왜곡과 거짓이 바로 지록위마이며 한국 경제의 근본적 문제가 낳은 경기 침체에 대한 책임마저 노동계 탓으로 돌리려는 꼼수다.

'불법의 합법화' 법안이란 오명이 붙게 되는 대표적 법은 근로기준법이다. 정부·여당의 근로기준법 개정안은 ▲통상임금 범위 명확화 ▲근로시간 단축(연장 근로 축소)을 뼈대로 한다.

통상임금 기준이 까다로워지면 노동자들의 임금 소득 전체는 줄어들 수밖에 없다. 특히 통상임금 개념이 이미 법에 정의돼 있는데 '통상임금에서 제외할 수 있는 금품은 시행령에서 정한다'는 문안이 신설되는 것은 통상임금의 범위를 여러 각도에서 어떻게든 깎아내려고 하는 편법이다.

또한 현행 근로기준법은 법상 가능한 최대 근로시간을 1주 52시간으로 규정한다. 40시간에 노사가 합의할 경우 가능한 12시간으로 구성된 시간이다. 그러나 고용노동부는 '휴일근로는 연장근로에 포함되지 않는다'고 자의적으로 법을 해석해 왔다.

법엔 52시간이라고 적혀 있으나, 휴일근로 16시간(8시간+8시간)이 추가로 허용되는 기이한 사태가 벌어져 노동 현장에선 68시간까지 일을 시키는 게 가능했던 배경이다. 해서 정부·여당의 개정안은 52시간을 초과하던 불법 상황을 합법화 하려는 것이다.

기간제법 개정안을 두고 정부·여당의 쏟아내는 주장은 더 억지스럽다. 현행 최대 2년에 2년 연장이란 뜻이다. 정부·여당은 이 법으로 기간제 노동자들의 고용이 이전보다 안정되고, 숙련도가 높아져 정규직 전환 가능성이 커질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2년이건 4년이건 계약 만료 후 정규직 전환 시기가 다가오면 사용자는 정규직 전환보다는 계약 만료, 즉 해고를 할 가능성이 더 크다. 같은 자리에 신규 기간제를 얼마든지 사용할 수 있는데 굳이 정규직으로 전환할 착한 사용자가 얼마나 되겠는가.

'기업 활력 제고'를 앞세우며 '해외에서도 이런 구조 개혁을 했다'는 주장도 선동에 가깝다. 해외 많은 나라는 무분별한 기간제 사용을 방지하기 위한 각종 제한 장치들을 법 또는 제도로 두고 있다. 프랑스 스페인 핀란드 노르웨이 등은 기간제 비정규직 '사용 사유'를 제한한다.

외국 사례로 기간 연장을 주장하려면, 최소한 반복 갱신 제한을 명문화하고 연장 사용에 대한 정규직 간주 조항을 강력히 하거나 사유제한을 계약 갱신 시에라도 적용해야 한다. 때문에 외국 제도의 형식만 가져와 근거로 삼으려는 것은 곡학아세의 전형이다.

파견법 개정안은 노동계가 지적하는 '불법의 합법화' 법안이자, 이를 합리화하기 위해 '해외 사례를 우격다짐으로 소개'하는 대표적 예다. 정부·여당은 파견 허용 업종의 확대로 '일자리 창출'을 노린다지만, 근본적인 문제는 파견이라는 직종 자체가 근로기준법에서 금지한 '중간착취'를 허용하는 제도라는 점이다.

이처럼 정부·여당의 노동 5법은 노동자를 위한 법이 아니라 무려 1000조에 가까운 돈을 쌓아 놓고도 쓰지 않고 있는 대기업에게 통제력과 주도권을 더 강화해주기 위한 기업보호법이라고 해야 맞다.

이제 노동자들은 이미 간도 쓸개도 다 빼줘 더 쥐어짤 것도 없는 상태다. 때문에 진정 대통령보다 속이 타들어가고 잠도 못 이루는 이들은 궁지에 몰린 청년과 노동자 그리고 그들의 가족인 우리 국민 모두인 것이다.

그런데 박근혜 정부는 경제 정책 실패를 노동5법을 반대하는 야당과 노동계에 전가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다가오는 총선에 도구로 이용하려 하고 있으니 그야말로 혼용무도의 전형이다.

김상환(전 양천신문/인천타임스 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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