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의 대국민 기망欺罔 ① 북핵과 사드THAAD
북한은 대화 상대 아닌 대국민 안보 위기감 부추기는 들러리일 뿐
「시대착오적 비유는 개발독재를 향한 향수?」
「4반세기 대북정책의 줄기는 유연함 vs 강공 드라이브」
「이명박 정권과의 패착 연대, 북핵 위기 전용으로」
박근혜 대통령이 읽어 내려간 대국민 담화는 안보 불안감과 경제적 위기감, 그간의 정책적 성과, 국회 탓, 그리고 국민을 향한 호소까지 잘 버무려진, 근래 보기 힘든 성공작이었다.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담화 직전에 언급했던 안보와 경제를 현 정세의 두 축으로 규정하면서 위기 국면이라 진단한 것은 옳다. 대북 확성기 방송 재개와 한미 동맹에 관한 설명도, 경제 위기를 타개하기 위한 선제적 개혁에 대한 주문도 큰 틀에서 보면 그렇게 나쁘지 않다.
시대착오적 비유
그러나 담화를 시청하는 동안 귓가를 간지럽힌 은유가 몇 있다. 서독 광부, 파독 간호사, 중동 건설현장, 월남 패망... 기회만 있으면 새로운 패러다임을 주장해온 대통령의 인식이 어쩌면 이렇게도 과거, 특히 박정희 대통령 시절에 머물러 있을까.
과거 우리가 어려웠던 시절을 들라면 1997년 IMF, 2008년 리먼브라더스 사태를 포함, 수도 없이 많다. 그럼에도 그는 틈만 나면 파독 광부와 간호사, 중동 건설과 월남만 말해왔다.
대통령의 대국민 담화이고, 대통령 자신이 담화문을 꼼꼼히 챙긴다는 점에서, 그냥 쓰던 대로 생각 없이 넣은 비유가 아니다. 그렇다면 목적이 있을 테고, 가장 의심되는 목적은 국민들로 하여금 박정희 대통령 시절을 회상할 수 있도록 하는 효과다.
새 술은 새 부대에 담아야 한다. 마찬가지로 새로운 패러다임을 주장하는 은유 역시 새로운 정치・경제적 지형에 담아내야 한다. 박정희 대통령을 연상시켜서 동정심을 유발하고, 그럼으로써 미묘한 선거개입을 시도한다는 쓸데없는 오해를 받지 않으려거든, 은유 하나에도 더 깊은 고민의 흔적을 남겨야 할 것이다.
이번 대국민 담화가 매우 정교하게 짜인 언어적 기망으로 들린 것은 비단 나뿐만이 아닐 것이다. 왜 대국민 기망인지 몇 회에 걸쳐 살펴보자. 오늘은 안보 위기, 그중에서도 미국의 입장을 북한과의 대립에 교묘하게 섞어 넣은 부분이다.
북한은 만능 바지저고리?
북한의 기습적인 4차 핵실험. 분명 우리는 물론 동북아와 세계의 안전에 현격한 위협이며, 북한의 변화를 유도하기 위한 실효적이고도 긴밀한 협력을 필요로 하는 사안이다. 그런데 그 내용을 보면 어처구니가 없다. 대통령의 말부터 전제해 놓고 시작한다.
“북한이 뼈아프게 느낄 수 있는 실효적인 제재조치... 북한의 태도 변화를 가져올 수 있을 정도의 새로운 제재가 포함된 가장 강력한 대북 제재 건의안이 도출될 수 있도록 모든 외교적 노력을 다해나갈 것입니다.”
새로운 제재가 포함된 가장 강력한 대북 제재를 위해 노력한다... 틀린 말은 아니다. 그러나 현 정권의 대북 정책 기조에 비추어보면 다분히 영혼 없는 발언이 아닌가 싶다.
박근혜 대통령의 대북 정책 기조인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 개념과 목표, 그리고 추진 기조를 살펴보면 임기 3년을 넘어선 지금 왜 아직도 통일이 안 되고 있나 싶을 정도로 아름답다.
그런데도 통일이 이토록 멀게만 느껴지는 이유는 무엇일까? 통일은커녕 이명박 정부 5년 동안 알차게 건설해놓은 ‘대북 경색’ 국면은 점점 고착화의 수렁으로 빠져들고만 있다. 분명 어딘가 결정적으로 잘못된 구석, 즉 북한을 대화 상대가 아닌 자국민 교란용 만능 바지저고리로 생각하는 구석이 있겠지. 그게 뭘까?
4반세기 대북정책의 개략
오래된 과거는 접어두고, 4반세기를 이어온 대북정책의 역사, 즉 김대중 정부의 ‘햇볕정책’과 노무현 정부의 ‘평화번영정책’, 이명박 정부의 ‘비핵・개방・3000’, 그리고 현 정부의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에서 답을 찾아보자.
박정희 정권의 「7·4 남북공동성명」으로 시작된 통일원칙은 노태우 정권의 「남북기본합의서」를 거쳐 김대중 정권의 「6·15 공동선언」으로 연결되었다. 그러나 좌우 양측의 어긋난 기대와 숙성되지 못한 정책적 과오는 1999년과 2000년 연평해전이라는 두 차례의 도발로 이어져 국민들의 가슴에 큰 좌절과 아픔을 남겼다.
그럼에도 상호 존중하고 약속을 이행하려는 양측의 노력은 서서히 과실을 맺기 시작해 노무현 정부 들어 괄목할 만한 성과로 나타났다. 첫 번째 성과는 미국과 북한의 관계 악화에도 불구하고 남북교류가 지속된 것이고, 두 번째로는 남북 간 우발적 군사충돌이 현저히 줄어든 것이며, 세 번째로는 경제협력을 대폭 확대하는 「10·4 공동선언」으로까지 이어진 것이다.
이런 결실이 가능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북핵 문제와 남북경협·교류를 분리해 따로 가게 하는 two-track 전략이 자리하고 있었다. 이 전략은 국방백서에 명기되어 있던 ‘북한주적론’의 폐기로, 다시 ‘플루토늄 핵시설 폐기’와 ‘남측에 의한 미사용 핵연료봉의 구매’ 등 북핵 문제를 실질적으로 해소할 수 있는 실마리로까지 이어졌다.
그런데 평화의 분위기가 무르익을 즈음, 미 부시 정부가 의회의 반대에 눌려 북한을 테러지원국 리스트에서 삭제하는 데 실패하고, 거기에 반발한 북한이 대미 강경 자세로 돌아서서 핵실험을 강행하는 등 남북관계는 파국의 기미를 보이기 시작했다.
그 시기는 누가 보더라도 지속가능한 평화를 추구하는 한반도에 매우 엄중하며, 그런 만큼 치밀하고도 섬세한 정책적 판단이 요구되는 시기였다.
이명박 정권의 패착
그러나 새로 들어선 정부의 고민은 깊지 않았다. 이명박 정권은 햇볕정책에서 평화번영정책으로 이어진 two-track 전략을 실패로 선언, 북핵 문제와 남북경협·교류를 연동시키는 비핵·개방·3000 정책을 추진함으로써 통일과 안보의 미래를 압박과 봉쇄라는 도박에 내맡겼다. 전략적 인내로 북한을 압박하고, 북핵 문제가 악화되면 남북관계도 자연히 악화되는 시스템으로 바꿔놓고 말았던 것이다.
당연히 이전 합의사항이었던 ‘미사용 핵연료봉의 구매’는 거부되었고, 모든 교류 역시 중단 위기에 처했다. 이에 대해 위키리크스가 폭로한 외교문서에는 다음과 같이 표현되어 있다.
‘비핵·개방·3000 정책의 실제 의도는 북한 봉쇄-봉쇄 유도책이었다.’
이후, 남북 양측은 다시 서해상과 휴전선 등지에서 무력시위를 벌이기 시작했고, 그런 대치 국면은 온 국민을 고통과 공포로 몰아넣는 두 차례의 참혹한 사건, 즉 천안함 피격사건과 연평도 포격사건을 낳고 말았다.
이명박 정권은 결국 「5·24 대북 제재조치」를 발표하기에 이르렀으며, 개성공단 기업 등 경협에 참여한 1천 여 기업은 심각한 경영난으로 파산의 위협에 직면해야만 했다.
그리고 북한은 우리 국방백서에 다시 주적으로 등장했으며, 이명박 대통령은 라디오 대국민담화에서 다음과 같이 얼치기 대북 정책인 비핵·개방·3000의 실패를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이제 북한 스스로 군사적 모험주의와 핵을 포기하는 것을 기대하기는 힘들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압박과 봉쇄라는 도박은 군사적 모험주의가 아니었던가? 그보다 햇볕이 외투 벗기기에 더 효과적이라는 사실은 안데르센도 알고 꼬마들도 안다. two-track이 외골수 one-track보다 더 합리적이라는 것도 쉽게 짐작할 수 있다. 그런데 그 쉬운 이치를 일국의 지도자가 몰랐더란 말인가?
더더욱 절망적인 것은, 실패를 새로운 도전의 자양분이나 반성의 기회로 삼아야 할진대, 이명박 정권은 어떤 대안도 가질 수 없었다는 점이다. 왜냐하면 임기의 절반이 지나버린 시점에 실패를 인정한 터라 새로운 정책을 추진할 여력이 없었고, 햇볕정책에서 평화번영정책으로 이어진 과거 정부의 대북 정책을 이미 실패로 낙인찍어 놓아 되돌아갈 수도 없었기 때문이다.
그런 탓에 전략이라 부르기도 민망한 무력시위와 ‘대놓고 기다리기’로 일관했고, 그 사이 북핵 문제는 눈덩이처럼 불어나버렸던 것이다.
이쯤 되면, 의도야 그렇지 않았겠지만, 결과적으로 ‘통일 기피세력이었다’는 세간의 비아냥에 무슨 입이 있어 토를 달 수 있겠는가. 천안함과 연평도가 봉쇄 유도책의 제물이 되고 말았다는 질타에 무엇이라 변명하겠는가! 강바닥 삽질하느라 국민에게 빚만 떠안긴 것도 모자라 대북정책까지 실패해 통일의 물길을 무려 5년 동안이나 꽉 틀어막아놓은 녹조라떼 정권, 통일 기피 정권이라니...
패착의 전이 혹은 연대
그럼,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는 어떨까. 추진 원칙을 보면, 신뢰 형성을 통한 남북관계 정상화와 지속가능한 평화를 추구하는 방안으로 ‘대화채널 구축’, ‘정치·군사적 신뢰 구축’을 명시해놓았다. 일견 좋아 보인다. 하지만 듣기 좋은 후렴구일 뿐, 첫 단추부터 아귀가 맞지 않는다.
대화 상대를 주적으로 상정해놓은 상태에서, 주적과 대화채널을 구축해 신뢰를 형성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주적과 정치·군사적 신뢰를 구축하려면 도대체 어떻게 해야 할까?
부부가 수십 년 동안 싸워서 ‘미운 정’이 들듯, 서해와 동해, 휴전선 부근 가리지 않고 전투를 벌여서 ‘죽일 놈의 정’이라도 쌓아야 하나? 아니면 예배당이나 절간에서 대화를 시도해야 하나? 그것도 아니면 둘 중 한쪽이 용서하고 포용하는 성자가 될 때까지 전략적 인내를 발휘해야 하나?
박근혜 정부가 비핵·개방·3000 정책이 실현될 수 없는 껍데기임을 간파한 것은 그나마 다행이다. 그런 사실은 청와대가 「드레스덴 통일 독트린」이라고까지 자화자찬한 박근혜 대통령의 「한반도평화통일구상」에서 확인할 수 있다.
그 구상에는 모자패키지 사업과 같은 인도적 지원, 복합농촌단지와 물류협력사업, 한반도 경제공동체 건설을 통한 민생 인프라 구축, 순수 민간교류 확대 및 다양한 교육 프로그램 공동개발을 통한 남북 동질성 회복 등 적지 않은 당근이 담겨 있다. 남북교류협력사무소를 설치하자는 제안에 이르면 거의 햇볕정책이나 평화번영정책과 다를 바 없다는 느낌까지 든다.
그러나 이런 노력들의 ‘전제’는 우리를 한숨짓게 한다. 바로 ‘북한이 핵을 포기하면’이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장용석 서울대 통일평화연구원 선임연구원은 “북한의 비핵화가 진전되어야 통일 구상이 실현될 수 있다는 기존의 틀에서 벗어나지 못했으므로 실효성이 떨어진다. 남북교류와 북핵 문제를 연동시켰기 때문에 앞으로 북핵 문제가 진전되지 않으면 북한이 부정적인 반응을 내놓을 가능성이 있다”고 했다.
실제로 북한의 대남기구인 조국평화통일위원회는 박근혜 대통령의 ‘선 핵포기론’이 이명박 정부의 비핵·개방·3000 정책과 조금도 차이가 나지 않는다는 평을 내놓기도 했다.
물론 드레스덴 선언이 비핵·개방·3000처럼 완전한 빈껍데기는 아니다. 대북 경색 국면의 큰 장애물이었던 「5·24 대북 제재조치」의 폐지가 전제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러면 뭐하나, 그보다 더 큰 전제가 이미 실패한 비핵·개방·3000과 하나도 다르지 않은 one-track, 과거 정부에서 10년 동안 추진해왔던 two-track을 모방한 짝퉁 two-track인 것을... 그러니 이대로라면 ‘통일대박’은 ‘통일쪽박’이 될 게 뻔하다.
북핵 위기의 전용
암울하게도, 통일쪽박의 기운은 짝퉁 two-track의 허점을 파고든 ‘고고도 미사일 방어체계’, 즉 ‘사드THAAD’라는 이름으로 이미 우리 곁에 바짝 다가와 있다. 이 부분에 관한 박근혜 대통령의 담화내용을 들어보자.
“중국 정부가 한반도의 긴장상황을 더욱 악화되도록 하지는 않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어렵고 힘들 때 손을 잡아주는 것이 최상의 파트너입니다... 한미 양국은 미국의 전략 자산 추가 전개와 확장억제력을 포함한 연합 방위력 강화를 통해 북한의 도발 의지 자체를 무력화시켜 나가도록 할 것입니다.”
북핵 문제 해결을 위해 한편으로는 중국의 역할을 주문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대중국 압박용 카드로 미국과의 방위력 강화를 언급했다. 그리고 그 방위력 강화의 가장 최전선에 고고도미사일, 즉 사드THAAD가 있다.
현재 북한은 남한 전역을 10분 내에 타격할 수 있는 고도 20km 미사일, 그리고 장사정포라는 단거리 공격수단을 보유하고 있다. 그런데 우리에게는 단거리 공격에 대응하는 시스템조차 없다. 고도 20km 미사일과 장사정포가 날아든다면, 설사 고도 40km 미사일이 있다 해도 속수무책이라는 말이다. 이런 상황이라면 ‘고고도’가 아니라 ‘고도’ 미사일 방어체계부터 갖추는 것이 옳다.
그럼에도 집권 여당은 정책총회를 열어가며 고고도 미사일 방어체계, 1포대 당 1조5천억 원의 비용이 예상되는 ‘돈 먹는 하마’의 배치를 공론화해온 것은 물론, 여당의 원내대표까지 나서서 우리도 핵을 가져야 하느니 마느니 군불까지 지펴왔다. 우리 돈으로 미국의 동아시아 MD(미사일방어) 시스템을 완성시켜주기 위해서 말이다.
현실적으로 미국의 핵우산이 필요한 실정인 것은 인정한다. 그렇다면 협상력을 발휘하건 뭘 하건 미국 돈으로 하도록 하면 될 것이 아닌가. 그러라고 있는 것이 외교부 장관이고 대통령일진대, 얼토당토않은 일본군 위안부 합의로 국민들을 상대로 우격다짐 협상력이나 발휘하고 있는 현실이라니...
곰은 비핵·개방·3000,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 드레스덴 통일 독트린이라는 재주를 열심히 넘었지만, 곰에게는 쭉정이만 돌아오고, 정작 그 결실은 사드THAAD라는 통일쪽박의 기운이 챙기게 생겼다. 이렇게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는 ‘지뢰’ 프로세스가 되어가고 있다.
이념의 허공을 횡행하던 ‘종북’이라는 프레임이 ‘다름’을 공격하는 빨간약(머큐로크롬)으로 전락해버린 지금, 대화 당사자인 북한을 주적으로 명시하는 강공 드라이브를 구사하지 않으면서도 고착화되어가는 대북 경색 국면을 풀어내 한반도를 핵의 공포로부터 건져내고, 자주적이고 당당한 노력으로 통일을 향해 나아가되, 중국과 미국 등 주변국의 이해까지 아우를 수 있는, 그런 외교·안보 정책이 절실한 시점이다.
그런 점에서, 북한을 대화 상대가 아닌 바지저고리로 보고 미국의 입장 대변하기를 주저하지 않았던 이번 북핵 관련 대국민 담화는 실로 대국민 기망이라 부르지 않을 수 없다.
김태현 두마음행복연구소 소장, 인문작가, 강연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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