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은 참말 : 테러방지법 설레발?

2016-01-27     김태현

「하얀 거짓말과 검은 참말」
「조선일보의 검은 참말은 테러방지법용?」
「검은 참말은 망국지사」
「언론의 검은 참말이 사라져야 하는 이유는?」

흔히 나쁜 것은 검은색으로, 좋은 것은 흰색으로 묘사된다. 악마와 천사가 그렇고, 전쟁과 평화가 그렇고, 거짓말과 참말이 그렇다.

악마와 전쟁은 두말할 여지없이 나쁘다. 좋은 악마나 좋은 전쟁이란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거짓말은 조금 달라서, 좋은 거짓말이 있다.

▲ 좋은 것과 나쁜 것 ⓒmytinyphone.com

하얀 거짓말과 검은 참말

조선시대 때 정신 못 차리고 감옥을 들락거리는 친구를 위해 부모 자식을 모두 죽였으니 감옥에서 나오면 복수를 하라고 했던 어느 사또의 이야기는 좋은 거짓말이다. 80세 된 어머니에게 암에 걸렸다는 말을 하지 않는 경우도 그렇다. 이런 경우를 ‘하얀 거짓말’이라 한다.

정반대의 경우도 있다. 전체적으로 보면 틀린 말이 아닌데, 중간 중간 말하는 이의 의중을 삽입해 듣는 이의 생각을 혼란스럽게 하거나 교묘하게 조종하는 경우, 해야 할 말을 의도적으로 하지 않아 듣는 이를 기만하는 경우다. 예를 하나 들어보자.

A는 B와 C가 싸웠다는 사실을 듣고 B에게 잘못이 있음을 알아냈다. A는 B를 불러내 무엇이 잘못이었는지를 설명한 다음, C에게 가서 사과하기를 요구했고, B는 그렇게 하기로 했다. B는 마지못해 C를 찾아갔지만, 사과는 하지 않고 엉뚱한 소리만 해대다가 돌아왔다.

A: C한테 다녀왔어?

B: 그럼, 다녀왔지. 야, 그 친구 생각보다 괜찮던데?

A: 뭐가?

B: 화통해. 그리고 호방하고.

A: 그래...? 알았어.

A가 B에게서 듣기를 원하는 대답은 “사과했다”였다. 그러나 B는 “화통해”, “호방해”라는 말로 분위기를 돌리며 하지도 않은 사과를 마치 한 것처럼 포장했고, A는 그 말을 “사과했다”로 받아들였다. 이런 식으로 듣는 이의 생각을 조종하는 경우를 ‘검은 참말’이라 한다.

▲ 나찌의 검은 들개 괴벨스Goebbels ⓒ4thmedia.org

팩트와 검은 참말

어제 언론 보도에서 또 하나의 검은 참말이 탄생했다. 그것도 ‘단독’이라는 이름을 달고. 중국인 남녀 2명이 인천공항 여객터미널 면세구역에서 국내로 밀입국한 사건 이야기다.

사건의 전말은 이렇다.

○ 중국인 남녀, 20일 오후 7시 30분경 인천공항에 도착
○ 공항에서 대기하다가 이튿날 중국 베이징으로 향할 예정
○ 그러나 면세구역으로 이동한 다음 국내로 밀입국
○ 25일 천안에서 체포

▲ 인천국제공항 전경 ⓒstarmometer.com

사건의 핵심은 인천공항의 출입국 관리시스템에 구멍이 뚫렸다는 것이다. 부실관리다. 그러므로 그에 따른 질책은 시설을 엄격하게 관리하지 못한 인천공항공사와 승객관리에 소홀했던 법무부 출입국관리사무소의 몫이다. 마땅히 인천공항공사 사장과 법무부 출입국관리사무소장의 사과가 뒤따라야 한다.

그러나 낙하산을 타고 인천공항에 착륙했던 박완수 전 인천공항공사 사장은 지난해 12월부터 총선 준비에 여념이 없고, 출입국관리사무소장은 묵언수행 중이다.

이 지점에서 검은 참말이 등장했다. CBS노컷뉴스와 조선일보, 이 두 언론사가 이번 사건을 어떤 시각으로 바라보고 있는지, 비교검토를 통해 검은 참말의 실제를 파악해 보자.

CBS노컷뉴스는 ‘뻥뻥 뚫린 인천공항 ... 중국인 밀입국 이틀 넘게 파악 못해’라는 제하의 기사에서, 사건의 경위와 당시 출국장 상황, 공항공사와 출입국관리사무소의 관리부실 및 이후 사건 진행 상황을 실었다. 더할 것도 뺄 것도 없는 ‘팩트’ 전달이었다.

그에 반해 이 사건을 1면 머리에 올린 조선일보의 기사는 더한 것과 뺄 것 투성이였다. 먼저, 제목과 부제목이다. ‘인천공항 4개 保安관문, 14분만에 뚫렸다’, ‘밀입국자들, 나흘간 천안까지 활보 ... IS 테러범이었다면 아찔’

한자까지 동원한 保安이라는 말에, 내 몸 어딘가 구멍이 난 것 같은 느낌. 부제에 등장하는 ‘IS 테러범’이라는 말에는 소름까지 돋아난다. 더구나 이 기사가 시작되는 첫 문장은 기사에 내포된 의도를 짐작케 하고도 남는다. 보자.

“IS(이슬람국가) 등에 의한 국제적 테러 사건이 잇따르고 있는 가운데...”

기사 중간에는 이런 구절들도 나온다.

“이들이 테러 조직원이었다면 대한민국의 안보를 송두리째 흔드는 사고로 이어질 수밖에 없었던 아찔한 상황이었다.”

“하지만 이들은 ...... 여기서부터 대한민국의 유・무형 보안시스템이 최소한 5번 뚫리는 사고가 발생했다.”

“1차 국경이 허물어진 것...”

“1차 국경을 뚫은 이들은...”

“중국인 남녀는 1차 관문을 뚫은 지 14분이 지난 21일 새벽...”

“9・11 테러사건 등을 계기로 미국과 영국 등 외국의 대형 공항은 ... 최근 국제적인 테러가 빈발하고 있는 점을 감안해...”

기사 전체를 통틀어 틀린 말, 즉 거짓말은 하나도 없다. 그러나 이 정도 기사라면 구 동독의 간첩이나 제임스 본드, KGB, CIA 따위를 떠올리는 게 정상이다. 조금 더 민감한 독자라면 ‘테러방지법’까지 연결할 수 있다. 나만 그런가?

▲ 테러방지법 찬반 ⓒnopota.jinbo.net ⓒsegye.com

검은 참말은 망국지사亡國之事

기사는 사실 전달에 최대한 충실해야 한다. 설사 전문가들의 의견을 삽입한다 해도 어디까지나 공정성을 잃지 않아야 하는 것이 기사다. 그런데 무슨 이유로 전문가의 의견 중 입에 맞는 것만 골라 인용해가며 이러쿵저러쿵 주절대는가? 이러쿵저러쿵은 기사의 몫이라기보다는 칼럼의 몫이다. 그러라고 있는 게 칼럼이니까 말이다.

상대를 배려하는 ‘하얀 거짓말’은 좋다. 하지만 듣는 이의 생각을 혼란스럽게 하거나 교묘하게 조종하는 ‘검은 참말’은 나쁘다. 그리고 검은 참말 중 가장 저열한 행위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는 것이다. 언론에서는 이를 ‘무보도無報道’라고 한다. 이런 행위는 나라를 망하게 하는 망국지사亡國之事다.

검은 참말을 자주 쓰는 인간을 따로 분류해 규정하는 사회적 호칭이 있다. ‘사기꾼’이다. 그렇지 않아도 좌우로 나뉘어 국민이 이리 휩쓸리고 저리 쏠리는 이 국론 분열의 마당에, 정치인들이야 어차피 ‘쏠림’에 익숙해져 있는 사람들이니 그렇다 쳐도, 공정성을 담보해야 할 언론까지 무뇌아처럼 정부나 사주社主의 지침에 부화뇌동해서야 쓰겠는가!

60년대, 70년대, 80년대를 살아오며 내내 들었던 이야기를 내가 또 떠들어야 하다니... 백일홍百日紅일 수 있는 자신의 생명을 스스로 단축시키고 있는 조선일보, ‘화무십일홍花無十日紅’이 남의 얘기가 아님을 자각해야 한다.

▲ 동아일보 기자 부당해고 백지화 성명을 발표하는 재야민주인사 22인(1975년3월14일) ⓒjournalist.or.kr

물론, 오늘의 한탄은 비단 조선일보에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다. 중앙일보나 동아일보 등 오른쪽은 물론, 경향신문과 한겨레 등 왼쪽에도 공히 적용되어야 한다. 어느 한쪽이 한쪽으로만 치달을 때, 다른 쪽은 당연히 반대쪽으로 치달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총선이 코앞으로 다가왔다. 언론이 바로서지 않는 한, 국민이 바로설 수 없고, 바로서지 못한 국민에게서 바른 선택을 기대하기는 어렵다. 언론의 검은 참말이 사라져야 할 단 하나의 이유다.

 

김태현 두마음행복연구소 소장, 인문작가, 강연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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