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인 노벨상 수상자와 교수 채용 시 국내박사 할당제 도입의 필요성

막부시대 일본은 전쟁에서 지면 그 나라로 유학을 보냄

2016-01-27     정한중

2015년 노벨 물리학상 수상자로 일본의 가지타 다카아키(梶田隆章·56) 도쿄(東京)대 교수, 화학상 수상자로 일본 키타사토(北里)대학의 오무라 사토시(大村智,80) 명예교수를 선정했다. 이로써 일본은 총 24명(미국 국적 취득자 2명 포함, 과학분야 21명)이 노벨상을 받았다. 그런데 놀라운 사실은 1949년 일본 최초 노벨상인 물리학상을 수상한 유카와 히데키를 포함하여 대부분이 일본 국내에서 공부한 사람들이라는 것이다. 즉 수상 당시의 박사 학위 취득자는 19명이며 이 중 3명(1명은 일본에서 먼저 박사학위를 취득함)이 미국 대학에서 박사 학위를 취득했을 뿐이다. 출신대학도 이름 없는 지방 사립대 출신 등 다양하다.

법학분야만 보아도 우리는 독일 등 해외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한 교수가 대부분임에 반해 일본 교수는 거의 일본에서 공부한 사람들이다.

일본의 역사를 보면 이 점이 좀 의아하다. 즉 일본은 임진왜란 전에 천주교 신부들의 선교와 무역상들의 교류로 서양과 접촉했다. 포르투갈로부터 전래된 조총은 물론 경제, 문화적으로 많은 영향을 받았다.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천주교 금지령과 탄압으로 포르투갈 대신 네덜란드와 교류를 시작한다. 막부 정권의 기본 방침은 쇄국이었지만 나카사키에 데지마라는 인공섬을 만들어서 상업적 교류는 지속했다. 이때 서양의 해부학 등이 들어왔다. 이 해부학이 네덜란드어로 써 있었는데 당시 이를 번역할 수 있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하지만 해부도가 그려져 있고 장기를 가리키는 명칭을 보고서 하나 둘씩 번역해서 일본에서 끝내 네덜란드 사전을 만들었다. 또한 네덜란드 상인대표는 1년에 한번씩 막부의 주인인 쇼군에게 서양의 소식을 알려야 했다.(이것이 나중에는 책으로 만들어져 유포 되었다.) 이러한 지속적인 관심은 '난학(난은 네덜란드를 말함)'이란 이름으로 널리 유행했다.

도쿠가와 막부정권 말기에는 네덜란드어를 배우던 사람들도 모두 영어로 바꾼다. 아편전쟁의 영향으로 영국 등 서양에 대한 관심과 정보 수집의 필요성이 커졌고 당시 일본은 전쟁에서 지면 그 나라로 유학을 보냈다. 이러한 경제, 문화적으로 축적된 경험으로 개항을 하자마자 '번역국'을 두어서 서양의 학문을 번역하고 일본에 맞게 적용하기 시작했다. 메이지 유신 이후 많은 유학생을 유럽과 미국으로 보냈고 서양의 많은 학자들이 일본에서 학문을 가르쳤다.

현재 한국인들이 일상생활에 사용하는 상당수의 주요 한자(漢字) 단어는 일본인들이 만들어 번역한 것이 대부분이다. 대표적으로 '사회(社會)'란 단어는 일본인이 외국어를 漢字로 번역(飜譯)하는 과정에서 만든 번역어(飜譯語)다. 서양개념인 'society'에 해당하는 동양 한자권의 언어로 정착됐다. '철학(哲學)'도 마찬가지다. 계몽사상가 시아마네가 메이지시대(1868~1912년) '백일신론(百一新論)'에서 서양개념인 'philosophy'를 중국 고전 등에서 哲자와 學자를 가져와 '철학'으로 번역한 것이다.

이와 같이 일본이 임진왜란 전부터 서양과 지속적인 교류를 하였고, 1868년 메이지 유신 전․후로 많은 유학생을 유럽과 미국에 보내다가 50년이 지난 시점부터 일본 노벨상 수상자들과 교수들 대부분이 국내에서 공부한 사람들이라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유학을 가지 않는 대신 일본의 번역 중시 전통에 따라 석, 박사 과정 대학원생들은 번역을 많이 하지만 이제 일본은 해외에 유학을 보내지 않아도 될 정도로 학문 수준이 깊거나 넓어진 것이 아닐까?

한편으로는 유학을 갈 필요가 없다는 점은 교수가 되는데 큰 비용이 들지 않는다는 것이다. 일본 교수들의 월급이 우리와 비슷하다는 점에서 교수들이 자기 자식을 교수나 학자로 만들려고 했을 때 비용이 적게 든다는 것은 누가 알아주거나 말거나 한눈팔지 않고 연구를 꾸준히 할 수 있는 토대가 된다. 또 학문적 소신을 지킬 수 있다는 점이다. 즉 대기업이나 정부로부터 억대의 연구용역을 받기 위해 학문을 팔아먹지 않아도 되는 것이다. 경제적 여유가 있는 계층 출신들이 해외 학위를 취득하여 교수가 됨으로써 교수 사회가 보수화되는 것도 방지할 수 있다.

우리는 일본 교수의 학문적 소신에 입각한 처신을 작년에도 목도한 바가 있다. 자민당 아베정권은 2015년 집단자위권 행사를 가능하게 하는 소위 안보법들을 국회에서 통과시켰다. 그런데 그 전에 개최된 중의원 헌법심의회는 헌법 전문가인 헌법학자 3명을 초대해 참고인 질의를 했는데, 여기서 자민당이 추천한 하세베 야스오 와세다대 교수는 집단적자위권 행사에 대해 "위헌이다. 종래 정부 견해의 기본적 논리 범위 안에서는 설명(해석)을 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우리나라에서 새누리당 추천 교수가 국정역사교과서가 위헌이라고 국회 공청회에서 소신을 말할 수 있을까? 필자는 없다고 본다. 왜? 우리나라 교수들은 자식을 초등학교 때부터 유학을 보내고, 자식을 교수나 학자를 만들려면 석, 박사 과정을 해외로 보내야 한다. 따라서 돈이 많이 필요하다. 교수 월급으로는 어림도 없다. 정부나 대기업의 용역에 의지할 수밖에 없는 구조이기 때문이다.

이제 우리도 해외 유학파 중심의 교수사회를 개혁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교수를 채용할 때 국내 박사를 일정 비율 이상 할당해야 한다.

김대중 정부에서 실시한 교수 채용 시 여성할당제도는 처음에는

여러 문제점과 시행착오가 있었지만 이것이 기폭제가 되어 현재 교수사회는 물론 많은 전문직에 여성 비율이 엄청 높아졌고, 서울대학교 김빛내리 교수 등 훌륭한 여성 과학자들이 노벨상 수상 후보로 거론되고 있다.

지금 국내 대학원은 위기이다. 국내에서 학위를 취득해도 교수가 될 가능성이 낮으니 유능한 대학원생들이 입학을 하지 않으려 한다. 해외학위를 우대하여 국내 대학원을 고사시키고, 해외 유학을 부추기어 다시 국내 학문의 발전을 저해하는 악순환의 고리를 이제는 끊어야 한다. 특히 과학 분야 연구는 교수와 능력 있는 석, 박사 과정 대학원생을 비롯한 여러 사람의 협업이 필요하다. 과학 분야 노벨상 수상자를 배출하려면 국내 대학원이 활성화되어야 한다. 또한 교수들을 돈의 노예로부터 조금이나마 해방시켜 교수들이 학문적 소신을 지키고 묵묵히 연구와 강의에 매진할 수 있도록 하여야 한다. 교수사회의 지나친 보수화를 막기 위해서도 국내박사 할당제가 필요하다. 해방 후 60년이 지났고, 그 기간 많은 유학생들이 교수나 학자가 되었고 학문적 수준도 높아졌다. 높아지지 않았다면 유학이 국내 학문 발전에 별 도움이 되지 않았음을 반증하는 것이다. 이제 우리도 일본과 같이 유학시대를 마칠 때가 된 것이다.

정 한 중(한국외국어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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