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황이든 불황이든 소비자들에게 사랑받는 브랜드들은 그들만의 핵심비결이 있다. 그들은 늘 최고의 품질을 고집하면서 혁신과 변화를 지속해왔다. 소비자들과의 양방향 소통도 오랜 동안 브랜드의 사랑을 유지할 수 있게 한다. 스트레이트뉴스는 창간 9주년을 맞아 소비자들에게 사랑받는 브랜드를 살펴보고, 비결을 알아본다. 편집자주

활명수 라인업. 사진=동화약품

과식 등으로 속이 더부룩할 경우 약국에서 쉽게 접할 수 있는 액상소화제의 대명사. 120년이 넘도록 액상소화제 시장 1위를 놓치지 않는 의약품. 동화약품의 '활명수'가 바로 그 주인공이다.

활명수는 액상소화제 시장에서 약 70% 수준의 점유율을 유지하고 있는 부동의 스테디셀러다. 현재까지 국내에서 생산된 활명수는 약 85억병이 넘는다. 대한민국 국민 4800만명이 1인당 175병 이상 마셨다는 얘기다.

'활명수'는 생명을 살리는 물이란 뜻이다. 조선말, 일제강점기에 태어난 활명수는 현재까지 국내 최장수 브랜드의 명성을 이어가고 있다.

끊임 없는 혁신과 소통

활명수가 120년 넘게 소비자들의 선택을 받은 비결은 늘 새로움을 추구했기 때문이다.

가장 친숙한 ‘까스활명수’는 1966년 탄생했다. 경쟁사들이 유사한 제품을 내놓으면서 활명수의 아성에 도전하자 동화약품은 활명수 출시 70여년 만에 변화를 시도한다.

동화약품은 활명수에 탄산가스를 넣은 까스활명수를 앞세워 액상소화제시장을 완벽히 석권하게 된다. 이후 1991년 카스활명수-큐로 브랜드를 리뉴얼하면서 지위를 굳건히 했다.

이어 2015년엔 여성 소비자들 겨냥한 '미인활명수'를 내놓았고, 만 5세에서 7세를 위한 어린이를 위한 '꼬마활명수'도 출시하면서 남녀노소를 아우르를 라인업을 갖추게 됐다.

2017년엔 아사이베리 과즙 맛을 더한 '미인활(活)'을 출시했고, 의류브랜드 게스, 카카오 캐릭터 등과 끊임 없는 컬래버레이션을 시도하고 있다.

소비자들의 성원에 보답하기 위한 ‘활명수 기념판’에선 독특한 디자인을 담아내고 있다. 활명수 기념판은 지난 2013년 첫 선을 보인 이후, 매년 다양한 분야의 아티스트, 콘텐츠, 브랜드 등과의 협업을 통해 제작되어 왔다.

지난해 123주년 기념판에선 문구기업 '모나미'와 협업했다. 병 라벨에는 모나미의 대표 컬러인 블랙&화이트를 활용했고, 볼펜의 노크 부분을 감각적으로 표현했다.

활명수 123주년 기념판. 사진=동화약품

앞서 122주년 기념판은 페트병을 재활용해 가방을 제작하는 패션 브랜드인 플리츠마마(PLEATS MAMA)와 협업했고, 121년 기념판에선 게스와 컬래버레이션해 병 라벨에 청바지를 상징하는 데님을 배경 이미지로 넣었다. 또 게스의 역삼각형 로고에 활명수 로고를 담았다. 또 120주년 기념판에선 쇼미더머니6와의 협업으로 탄생했으며, '펜 아트(Pen Art)'가 활용됐다. 카카오프렌즈와 손잡은 119주년 기념판 4종도 큰 관심을 받았다.

동화약품은 매년 활명수 기념판의 판매수익금을 '생명을 살리는 물' 캠페인의 일환으로 물 부족 국가의 식수 정화, 우물 설치, 위생 교육 사업 등을 지원하는 활동에 기부하고 있다. 동화약품은 그 동안 유니세프 한국위원회, 초록우산어린이재단에 기부했으며, 지난해에는 대한적십자사를 통해 네팔 다일렉 지역에 안전한 식수 공급 및 위생 시설 설치를 지원했다. 123주년 기념판의 판매수익금 역시 사회공헌활동에 전액 기부될 예정이다.

독립운동 지원했던 활명수

활명수는 조선말 고종황제가 즉위한 1897년 탄생했다. 당시 궁정 선전관이었던 민병호 선생은 민중들이 소화불량으로 고생하는 것을 구제하고자 11가지 생약성분에 서양 의학을 결합한 처방을 고안했다. 이것이 활명수의 시초로, 우리나라 제약산업의 시초를 알린 제품이었다.

민병호 선생의 아들인 민강 선생은 같은해 9월 서울 순화동에 동화약방(현 동화약품)을 설립하고 활명수를 대중에 알리기 시작했다. 이어 1910년 '부채표'와 '활명수'를 상표 등록하고, 1931년 동화약방을 주식회사로 법인화하면서 제약회사의 모습을 갖추기 시작했다.

특히 민강 선생은 활명수를 판 자금으로 우리나라의 독립운동을 지원하기도 했다.

1920년대 활명수 한병의 가격은 설렁탕 두그릇을 먹을 수 있는 50전. 비싼 가격에 활명수 판매액은 독립운동 자금으로도 쓰였다. 독립운동가들은 활명수를 지참하고 현지에서 비싸게 팔아 임시정부에 전달하는 등 독립운동 자금으로 활용됐다. 민강 선생은 또 임시정부와 국내 사이의 비밀 연락망인 서울연통부를 동화약품 본사에 설치하는 등 독립운동을 체계적으로 지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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