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는 감사인(監査人)이다. 회색정장을 입고, 신을 제외한 아무도 믿지 않는(In god we trust, all other we audit) 감사인이다. 프랑스의 철학자 데카르트(Descartes, René)는 신을 포함한 모든 것을 의심하면서, 더 이상 의심할 수 없으며, 의심할수록 더욱 명석판명(明晳判明)해지는 ‘의심하는 자신의 존재‘를 자각하며 ‘나는 생각(懷疑)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Cogito, ergo sum)’는 명제로 인간이성을 신의 영역으로부터 해방시켰다.
공공 감사인이 추구하는 인식의 출발점과 지향점은 무엇인가? 부패없는 청렴한 공직사회는 어떻게 가능한 것일까? 합리주의자의 방법적 회의를 따라, 어느 공무원도 믿지 않으며 감사를 거듭해도 부패의 알고리즘(algorithm)은 얽혀져만 간다.
부패는 유기생명체가 분해되고 순환하는 자연의 한 과정이며, 인간의 본성과도 그 맥락을 같이 한다. 부패(腐敗)라는 한자어를 풀어보면, 관청(府)이 고기(肉)를 깔고 재물(貝)을 깨트리는(攵) 구성이다. rupt는 부서지고(disrupt) 망하거나(bankrupt) 이별의(rupture) 어근이다. 부패(Corruption)는 공멸(共滅)이다.
법률적 정의로는 ‘공직자가 법률을 위반하여 자기 또는 제 3자의 이익을 도모하는 행위’를 의미하며, ‘공공기관의 예산사용과 재산처분, 계약의 이행시 법령을 위반하여 공공기관에 손해를 가하는 행위’로 예시하고 있다.
인류역사는 부패의 역사라고 할 만큼 부패는 동서(東西)와 고금(古今)에 상존하며 그 원성 또한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조선왕조실록 세종편에는 청백리의 표상으로 알려진 황희 정승의 부패에 관한 기록이 믿기 어려울 정도로 나열되어 있다. 월가의 저승사자로 불리던 정의의 검사 엘리엇 스피처(Eliot Spitzer)는 흉측한 추문으로 몰락했고, 감동의 인간승리 데이비드 페터슨(David Paterson) 뉴욕 주 지사 역시 부패로 험난한 앞길을 예고하고 있다. 시진핑의 반부패(爲人民服務) 열풍에 충칭(中京)의 영웅 보시라이(薄熙来)는 참담하게 몰락했고 상무위원 저우융캉(周永康)의 가족들은 다시는 서로 볼 수 없는 처지가 되고 말았다.
유럽의 중세 봉건 영주들이 수확량을 지키기 위해 시작한 회계감사나, 고려의 어사대나 조선의 사헌부가 담당했던 공직감찰 기능은 오늘날에도 감사기관, 사법기관이 그 명칭과 형식을 달리했을 뿐 각국의 제도에 그 기능은 고스란히 이어지고 있다.
청렴한 공직사회를 위한 국제적인 노력으로 세계 160개국이 참여한 세계감사위원회(INTOSAI)1)가 조직되었으며 각국의 지방정부에 자체 감사기구가 광범위하게 편재되어 있다.

필자가 속한 양천구의 경우도 민선6기 출범과 함께 반부패 행정시스템을 구축하여 부패행위 발생여부를 실시간 모니터링하고 5대분야 23개 청렴시책을 연중 추진하며, 공직윤리관리 시스템으로 모든 공직자의 업무와 활동을 관리하고 있다. 이렇게 전 조직원이 긴장의 끈을 늦추지 않고 노력한 결과 우리 양천구는 지난해 서울시 청렴인센티브 수상구로 선정되기도 하였다.
중요 정책사항과 대규모 사업의 경우 사전 일상감사를 통해 오류와 낭비를 방지하고 행정감사규칙에 따라 정해진 주기별로 각 기관과 부서에 대한 정기 감사를 실시하여 불법 부당한 행위와, 비효율 저성과에 대한 신상필벌을 엄격히 시행하고 있다.
근대초기의 야경국가(夜警國家)와 달리 국민생활 전반을 보장하는 현대 복지국가체계에서 국민들은 공직자의 높은 책무성을 요구하고 있다. 국가의 근본을 의심케하는 법조비리에서, 국민을 기망한 천문학적 분식회계에서, 한맺힌 세월호에서 그 목소리는 더 없이 절실했다.
우리나라 공무원의 업무량은 OECD 주요국 중 상당히 많은 편이다 주2).
취업난 속에 공직사회로 진입하기도 어렵지만, 국민의 높은 요구수준과 과중한 업무 스트레스로 공직을 떠나는 경우도 많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무원 스스로의 평가와 달리 국민들은 공직사회의 부패와 무사안일이 심각한 수준이라고 질타하고 있다 주3).
부패의 고리는 검찰청 포토라인에서 펼쳐지지만 적극적 청렴은 시민들과 만남의 현장에서 나타나게 된다.
친절은 경청(傾聽)으로 시작된다. 경청은 몸을 기울여, 말하는 이의 이해와 정서까지 듣는 것이다. 감사(audit)도 원래 듣는(audio)것이다. 역발산기개세(力拔山氣蓋世)의 항우보다 상대의 이야기를 끝까지 들어주며 커이커이(可以可以) 맞장구 치던 유방이 승리했다. 경청은 이해를 수반한다. 이해(understand)는 남의 아래(under)에 섬(stand)으로 가능하다.
세계적인 문명사학자 아놀드 토인비(Arnold J. Toynbee)는 강연에서 청어 이야기를 자주 인용했다. 유럽인들이 즐겨먹는 청어는 기름기가 많아 부드럽고, DHA 함량이 높아 콜레스테롤 수치를 낮춰준다. 한류성 어종인 청어를 잡기위해 영국인들은 북해나 멀리 베링해까지 나가지만 돌아오는 과정에 대부분 죽어 버린다. 그래서 어부들은 청어가 가득한 수조에 물메기를 몇 마리 넣고 돌아온다. 천적을 경계하며 피해 다니던 청어는 살아있는 상태로 런던의 어시장에 도착하게 된다. 인류의 문명을 해석하는 그의 역작, 역사의 연구(A Study of History)의 키워드인 도전과 응전(challenge and response)의 원리와 같은 맥락이다. 건강한 조직을 위한 감사인의 역할을 생각하게 만든다.
공무원은 국민에 대한 봉사자라는 헌법적 가치를 실현하기 위해 우리는 감사한다주4). 가려진 것을 들추고 잘못을 지적하는 일은 때때로 환영받지 못한다. 특히나 순환보직 체계인 우리 공직 사회에선 곤혹스런 일들이 자주 발생한다. 그래도 우린 국민앞에 당당한 공무원을 보고 싶다.
데카르트의 명증한 진리처럼...
감사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Audit & I exist)
1) 세계최고감사기구(INTOSAI) international organization of supreme audit institution 세계 각국의 감사기구 대표들이 모여 감사지식과 정보 등을 교환하기 위해 지난 53년 쿠바에서 창립된 기구. 우리나라는 1965년 가입
2) 공무원 1인당 담당 국민수

3) 국민 및 공무원 인식도 조사(감사원 조사 및 한국행정연구원 자료)
○ 국민 인식도 조사
- 우리나라 공무원이 업무처리를 잘하는 지에 대한 설문에 부정적 답변 26.7%, 긍정적 답변이 16.5%
- 공무원이 무사안일한지에 대한 설문에 응답자의 57.8%가 그렇다고 답변
○ 공무원 인식도 조사
- 공무원 스스로 무사안일한지에 대한 설문에 응답자의 20.8%만이 그렇다고 답변
4) 헌법 7조 1항, 공무원은 국민전체에 대한 봉사자이며 국민에 대하여 책임을 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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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식 서울시 양천구청 감사담당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