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무역협정(FTA)의 들러리로 전락해 속절없이 떨어지는 추수의 가치

「풍년이 들어도 떨어지고, 흉작이 들어도 떨어지는 것은?」
「추석 이후 수매 종료 시 쌀 재고 200만 톤 거뜬히 넘어설 것으로 전망」
「대본大本에서 계륵鷄肋으로 전락한 식량 주권, 혁명의 기운에 짓눌려」


황금빛 들녘에 온갖 먹거리가 풍성한 한가위는 분명 축일祝日이다. 풍년이라도 들면 보릿고개에 찌든 우리네 조상들의 얼굴이 황금빛으로 빛나곤 했다.

ⓒ돌직구뉴스

하지만 벼농사를 짓는 농부들에게 그런 추석은 이미 옛 기억으로 사라지고 없다. 풍작 흉작 가리지 않고 끝 간 데 없이 추락하는 쌀값 때문이다.

지난해 추석 무렵 39,800원이었던 20kg들이 상품(上品) 쌀의 도매가가 속절없는 추락을 거듭한 끝에 12일 현재 무려 15% 가까이 떨어진 34,000원에 거래되고 있다.

올해 농지는 지난해에 비해 20,000ha가 줄어들었다. 전체 농지 중 2.5%가량이 줄어든 것이어서, 추석 이후 수확량도 10만 톤 정도 줄어들 것으로 전망된다. 그럼에도 쌀값은 하락세를 이어가고 있다.

농지가 큰 폭으로 감소하는 가운데 쌀값 하락세가 지속되는 가장 큰 이유는 매년 불어나는 재고 때문이다.

2015년 말 기준 정부가 보유하고 있던 쌀 재고량은 139만 톤이었는데, 올해 7월 말에는 36만 톤(26%) 증가한 175만 톤을 기록했다. 추석 이후 수매가 종료되면 이 수치는 200만 톤을 거뜬히 넘어설 것으로 보인다.

▲ 추곡 수매 중인 노부부(2011년) ⓒ뉴시스

이처럼 쌀 재고가 급증세를 보이는 가장 큰 이유는, 매년 수입해야 하는 쌀 의무수입물량이 40만9,000톤에 이르고, 거기에 국내 소비를 마치고 남는 쌀 30만 톤을 더하면, 매년 70만 톤이 창고로 직행하기 때문이다.

재고가 남아도니 쌀값이 오를 리 없다. 80kg들이 상품이 170,000원이었던 2013년 7월 이후 쌀값은 풍년과 흉작에 관계없이 지속적인 하락세를 기록해왔다. 재고가 어느 정도 소진되어야만 쌀값이 제자리를 찾을 수 있지만, 마땅한 소비처가 없다.

극심한 쌀 부족에 시달리는 북한에 보내려니 정치가 막아서고, 아이들이 진흙 비스킷으로 연명하는 수단, 콩고 등 아프리카 지역으로 보내려니 운송비, 가공비 등 부대비용이 막아선다.

주정용이나 사료용으로 전환해 봤지만 소비량은 연간 10만 톤에도 미달이다. 총채벼, 즉 수확기 이전 어린 벼를 추수해 사료용으로 공급하자는 안이 진즉에 나와 있지만, 농림수산식품부는 아직도 검토 중이다.

쌀을 의무적으로 수입해야 하는 이유는 각국과 맺은 자유무역협정(FTA) 때문이다. 성공적인 자동차 무역 협정을 위해 희생되는 것은 1차 산업의 생산물이다. 국내 서비스 분야를 성공적으로 방어하기 위해 희생되는 것도 1차 산업의 생산물이다. 이런 방식으로 쌀이라는 ‘식량 주권’은 늘 들러리 역할만 강요당했다. 정부에 의해서 말이다.

식량 주권을 담보로 여타 산업의 경쟁력을 확보한 주체가 정부라면, 우리나라의 식량 주권이 흔적도 없이 사라지기 전에 결자해지結者解之의 측면에서 해결방안을 마련해야 하는 주체도 당연히 정부다.

▲ 미 의회의 한미FTA 이행법안 비준 직후 자축하는 이명박 전 대통령과 버락 오바마 대통령(2011.10.12) ⓒ뉴시스

쌀이 창고에 쌓여갈수록 쌀값은 떨어지고, 떨어지는 쌀값 따라 농심도 추락한다. 추락하는 농심 따라 한가위 축일의 의미는 ‘그저 노는 날’로 전락해갈 것이다.

농사를 짓는 국민들은 무역에 있어서 계륵이 되어버렸다. 농자무역지계륵農者貿易之鷄肋이다. 세계경제에서 차지하는 한국의 위상을 고려하면, 농자천하지대본農者天下之大本은 이제 바라지도 않고, 바래서도 안 된다.

그러나 잊지 말아야 할 것은, ‘별다른 이익은 없지만, 버리기는 아까운 닭 갈비뼈’, 즉 계륵이 되어버린 농심에서 ‘버리기는 아까운’ 가치마저 사라진 후에는 스스로 버린 식량 주권이 가해오는 역습에 후회할 날이 반드시 올 것이라는 점이다.

2015년 4월, 독일 앙겔라 메르켈(Angela Merkel) 총리는 하노버 산업박람회에서 미래 독일을 이끌 핵심 키워드로 디지털과 제조업의 융합을 의미하는 ‘Industry 4.0(4차 산업혁명)’을 꼽았다. 올해 다보스포럼의 주제 역시 4차 산업혁명이었다.

3차 산업혁명, 2차 산업혁명, 1차 산업혁명이 빛을 잃어가고 있다. 덩달아 1차 산업의 꽃이었던 쌀과 밀이 천덕꾸러기로 전락하고 있다.

한 해의 추수를 감사하는 우리의 명절, 한가위가 세계를 휩쓸고 있는 혁명의 기운에 주눅 들고 있다. 추석 보름달이 찌그러들고 있다.

이땅의 모든 백남기가 죽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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