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위에의 복종 - 국민의 명령

삼국지연의에 조조가 군사를 몰고 여포를 치러가는 장면이 나온다. 조조가 탄 마차 앞에서 꿩 한 마리가 날아오르자, 놀란 말들이 밀밭으로 질주해 들어간다. 가까스로 마차를 세운 뒤, 조조는 결기 가득한 표정으로 이렇게 말한다.

“출정 전에 나는 제군들에게 백성의 목숨과 재산을 털끝만큼도 건드리지 말라는 군령을 세웠다. 특히 어떠한 경우에도 농작물에 손을 대지 말라고 했다. 그런데 나는 이렇게 밀밭에 들어와 있다. 내가 내린 군령을 스스로 어기고 말았다. 나를 참수해 군령을 세우라!”

군령을 어긴 자신을 참수하라고 명령하는 조조 ⓒxingge.baike.com

누구도 전쟁을 앞두고 총사령관인 주군의 목을 벨 수는 없었다. 물론 조조 역시 그깟 일로 죽을 마음은 없었다. 그러나 그는 자신이 내린 군령을 스스로 어길 경우, 그 관대함으로 인해 권위를 잃게 될 것이고, 군사를 통제할 능력을 상실할 것이며, 이는 결국 패배로 이어질 것임을 잘 알고 있었다.

영민한 조조는 잠시 생각한 뒤에 소리쳤다.

“전투를 앞두고 있는 마당이니, 나의 과오는 전투가 끝난 후에 재차 따져 묻기로 하고, 대신 나의 상투를 내 스스로 참수해 군령을 세울 것이다!”

그는 휘하 장수로 하여금 참수당한 머리털을 들고 진영을 돌아다니며 자신의 뜻을 알리게 했다. 목을 내놓았어야 마땅하지만, 조조는 그런 방식으로 추락 직전에 놓인 군령을 되살려 놓았고, 그렇게 살아난 군령은 조조의 권위를 향한 휘하 장수와 군졸들의 이탈을 막아냈으며, ‘권위에의 복종’은 결국 여포와의 전투를 승리로 이끌었다.

 

강압적 복종과 자발적 복종

조직을 이끌어가는 지도자에게는 적재적소에 사람을 쓸 수 있는 능력부터 각 부문의 문제를 분석하는 능력과 해결 방안, 그리고 그 모든 것을 하나로 통합해 낼 수 있는 능력까지 많은 능력들이 요구된다.

그중 없어서는 안 될 덕목이 권위에 복종케 하는 능력이다. 지도력은 권위에서 나오고, 가신이나 다른 목적을 가진 사람이 아닌 다음에야 권위를 상실한 지도자의 명령에 충실히 따를 사람은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권위에의 복종에는 강압적인 복종과 자발적인 복종, 이렇게 두 종류가 있다. 강압적인 복종은 권위에 복종하지 않아서 입을 위해가 우려될 때 생겨난다. 세상의 모든 독재자에 대한 복종이 대표적인 강압적 복종이다.

자발적인 복종은 두 가지 경우에 일어난다. 먼저, 권위에 복종해 얻을 이득이 있을 때 사람들은 스스로 권위에 복종한다. 친일 부역자들이 여기에 해당한다. 다음으로 권위가 정당할 때에도 사람들은 스스로 권위에 복종한다.

우리의 역사를 돌이켜보면, 독재자를 향한 강압적인 복종이 넘쳐나던 때도 있었고, 이득을 위한 자발적 복종이 횡행하던 시절도 있었다. 이런 방식의 복종이 지배하는 세상에는 한 가지 공통점이 있다. 비민주적인 세상이라는 것이다.

놀라운 사실은 비민주적인 권위에 처음부터 항거하지 못한 사람은 그 권위에 차츰 굴복하고, 비민주적인 자신의 복종 행위를 정당화하기 위해 내면의 구실을 만들어낸다는 점이다.

 

2016년 대한민국 대통령의 권위

최순실씨 국정농단과 대통령의 국가권력 사유화로 몸살을 앓고 있는 2016년의 대한민국에는 어떤 권위가 있을까? 박근혜 대통령의 권위를 교육심리학자 로렌스 콜버그Lawrence Kohlberg의 도덕성 발달 이론에 적용해 분석해보자.

콜버그는 다음과 같이 도덕성이 발달하는 단계를 6단계로 구분했다.

제1수준 : 전인습적 수준
1단계 : 벌이 무서워서 또는 보상을 위해서 행동하는 단계(3-7세)
2단계 : 욕심을 채우기 위해서 행동하는 단계(8-11세)

제2수준 : 인습적 수준
3단계 : 타인의 관점을 의식해 비난을 피하거나 인정을 받으려고 행동하는 단계(12-17세)
4단계 : 법과 질서를 지키기 위해 행동하는 단계(18-25세)

제3수준 : 인습후 수준
5단계 : 사회의 복지와 공공의 복리를 위해 행동하는 단계
6단계 : 스스로 선택한 도덕적 원리나 양심을 지키기 위해 행동하는 단계

검찰은 중간발표를 통해 대통령이 최순실씨(60, 구속), 안종범 전 청와대 정책조정수석(57, 구속), 정호성 전 청와대 부속비서관(47, 구속) 등이 저지른 직권남용 및 공무상 비밀누설 등의 공범이라고 밝혔다. 헌법을 수호해야 할 대통령이 헌법을 어김으로써 국민의 신임을 배신했다는 사실을 명확히 한 것이다.

그러나 대통령은 검찰조사에 성실히 임하겠다던 자신의 약속까지 무시해가며 헌법에 명시되어 있는 탄핵소추로 방향을 잡았다. 이 지점에서 대통령과 100만 촛불의 명령이 충돌한다.

4%를 제외한 대한민국 국민들은 이미 대통령이 국정을 담당할 자격을 상실했다며 성토하고 있다. 4주 내내 그렇다. 이는 대통령이 헌법을 파괴했으며, 그런 대통령에게서 찾을 권위는 없다는 국민적 공감대에 이르렀기 때문이다.

100만 명 시위 현장 ⓒ돌직구뉴스 데이터베이스

그런데 대통령을 포함한 여권 일부는 대통령의 즉각적인 사퇴를 요구하는 국민들의 행위가 헌법에 없다며 버티고 있다. 그런 그들의 도덕성은 제2수준, 즉 타인의 관점을 의식해 비난을 피하려는 단계에 머물러 있다. 헌법적으로 결격 사유가 있는 대통령이 적반하장 격으로 법과 질서를 외치는 이유는, 그보다 더 낮은 제1수준의 2단계, 즉 욕심을 채우기 위해 행동하는 단계로밖에 해석될 수 없다.

사회의 복지와 공공의 복리를 위해 행동하는 지도자라면, 어떤 경우에도 법을 준수해야 하고, 법을 준수하지 못한 경우에는 당장 그 지위를 내려놓아야 한다. 그가 법보다 도덕과 양심과 염치를 더 중요한 인간 삶의 기준으로 생각한다면 말이다.

법을 어긴 사람이 주장하는 도덕적 원리나 양심은 아무런 권위를 획득할 수 없다. 그런 사람이 주장하는 법과 질서에서, 우리가 찾을 것은 법과 질서를 사리私利에 이용하려는 욕심뿐이다. 법륜스님의 말대로, 그런 대통령은 대통령이 아니다.

탄핵소추로 가닥을 잡은 대통령의 행위에서, 대다수 국민들은 대통령의 도덕적 수준이 주로 3단계, 즉 비난을 피하거나 인정을 받으려고 행동하는 단계에 있으며, 이를 실행에 옮기기 위해 제1수준, 즉 벌이 무서운 단계 또는 욕심을 채우기 위한 단계에서 대응책을 궁리하고 있음을 발견할 뿐이다. 현직 대통령이 검찰 또는 특검의 대면수사를 받아야 하는 사상 초유의 사태가 발생한 지금, 대통령에게서는 제3수준, 즉 양심을 지킨다거나 높은 도덕성을 발견할 수 없는 것이다.

이처럼 염치없는 상황이 지속된다면, 갈 길은 대통령이 원하는 헌법적인 방법, 즉 탄핵소추뿐이다. 하지만 스스로 퇴진을 결단하지 않고 탄핵소추라는 방법을 언급하는 순간부터 아름다운 퇴진이 아닌 부끄러운 퇴진이 시작되고, 대통령의 낮은 도덕적 수준은 도저히 헤어 나올 수 없는 수렁으로 빠져들고 만다. 블루 하우스(청와대)에서 블루 필(푸른색 비아그라)을 구입했다는 소식에 전 세계가 대한민국을 비웃고 있다. 국격 추락도 이런 국격 추락이 없다.

헌법에는 국민이 주권자임이 명시되어 있다.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말의 의미는 권위의 원천이 국민이라는 것이다. 그런 국민이, 절대 권력을 가진 국민이, 도덕과 권위를 잃은 대통령에게 내려와서 법의 준엄한 심판을 받으라고 명령하고 있다. 이만큼 헌법적인 행위가 또 어디 있단 말인가.

역사가 뒤틀어지고 있다. 헌법적 가치가 몰염치에 매몰되고 있으며, 도덕과 권위를 잃은 대통령으로 인해 내치와 외치가 흔들리고 있다. 그런 대한민국에 탄핵소추라는 방식을 동원해 끝끝내 버티기로 일관하면서 ‘수치’까지 얹어놓을 생각인가?

새누리당 김진태 의원은 “촛불은 바람이 불면 꺼진다”고 했다. 그는 작금의 상황이 서해 NLL 사태나 미국산 소고기 수입 반대 또는 4대강 반대 당시와 유사하다고 생각하는 듯하다. 이런 생각은 반드시 거대한 판단착오를 불러올 것이다. 해당 분야에 문제가 발생했을 때와 달리, 이번 촛불은 모든 분야를 조정하고 제어하는 권위, 국민들이 부여해준 그 권위의 실추에 대한 반응이기 때문이다.

민주적인 세상에서 요청되는 복종의 전제는 ‘자발’이다. 강압에 의한 리더십은 그 방식에서 폭력을 전제하고, 이득에 의한 복종은 그 목적에서 저열하며, 정당성을 잃어버린 권위는 결국 수치스러운 종말로 가기 때문이다.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다. 대통령은 이미 잃어버린 도덕과 권위를 다시 주워 담을 방법은 없다는 사실을 직시하고, 염치에 대해 무겁게 생각한 후 국민의 준엄한 명령에 부응하는 결단에 이르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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