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수처(고위공직자비리수사처)를 헌법기관으로!

국가인권위원회는 모든 개인이 가지는 불가침의 기본적 인권을 보호하고 그 수준을 향상시키기 위한 ‘독립기구’로 지난 2001년 설립되었다. 이는 헌법 제10조 “국가는 개인이 가지는 불가침의 기본적 인권을 확인하고 이를 보장할 의무를 진다.”라는 조항을 근거로 한다.

따라서 국가인권위원회법(제5조) 규정에 의하면 국가인권위원의 형식적 임명권은 대통령이 갖지만 그 구성은 국회가 선출하는 4인과 대통령이 지명하는 4인, 그리고 대법원장이 지명하는 3인 등 행정부로부터 확실하게 독립돼 있다.

대한민국은 3권 분립이 확립된 나라다. 헌법의 각 규정을 살펴보면 이를 명확하게 알 수 있다. 입법권은 국회에(제40조), 행정권은 대통령을 수반으로 하는 정부에(제66조 제④), 그리고 사법권은 법관으로 구성된 법원에 속한다(제101조 제①항)고 규정한다.

탄핵 정국과 맞물려 ‘고위공직자비리수사처(공수처)’ 설치요구가 갈수록 국민적 지지를 얻고 있다. 헌정 사상 처음 현직 검사장이 뇌물수수 혐의로 구속·기소돼 1심에서 징역 4년 실형을 선고받았다. 청와대 선임수석(정책조정)은 대통령의 명을 받아 재벌들에게 삥 뜯기를 하다가 발각돼 구속됐다. 또 다른 청와대 수석(정무)도 수십억원의 뇌물수수 혐의로 구속되며 자해소동까지 벌였다. 이들을 감시·감독해야 하는 할 민정수석은 수임비리와 탈세·횡령 등 혐의로 검찰 조사를 받았고 국회청문회에 증인으로 출석해 직무유기 혐의를 집중 추궁 당했다. 이것이 병신년(丙申年) 세밑을 보내는 대한민국의 민낯이다.

‘고위공직자비리수사처 설치 및 운영에 관한 법률(공수처법)’은 고위공직자와 가족, 퇴임 2년 이내의 전직 고위공직자와 가족, 대통령 친족범죄 등에 대해 수사할 수 있는 기구를 설치한다는 점이 주요 내용이다. 민주당-국민의당-정의당 등 야 3당이 추진해온 공수처는 대통령 직속기관이 아닌 국가인권위원회처럼 독립기관을 목표로 한다. 민주당은 상시적으로 수사·기소할 수 있는 대상을 청와대 선임행정관(2급 상당)까지 확대해놓고 있다.

그런데 공수처 설치가 과연 법률 제정만으로 가능할까? 새정치국민회의 시절부터 지난 20년 동안 ‘공수처’ 설치는 야당의 전매특허 공약이었고 국민의정부와 참여정부 시절에는 일정한 논의까지 진척됐다. 하지만 검찰과 새누리당(한나라당)의 반대로 번번이 좌절됐다. 헌법상 근거 없이 입법·행정·사법부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 독립기구로 설치할 경우 3권 분립 원칙에 어긋날 소지가 있다는 비판과 함께 무소불위의 권력기관으로 탄생할 것이라는 우려 때문이었다.

18대와 19대 국회 당시에도 ‘고위공직자비리수사처 설치 및 운영에 관한 법률(공수처법)’이라는 같은 이름의 법안은 여러 개가 동시에 발의됐으나 임기 만료로 폐기된 바 있다. 김동철 박영선 이춘석 의원 등 18대 민주당 의원 10명이 발의한 법안은 공수처장 임명방식이 특징이다. 공수처장 추천위원회 추천과 국회 인사청문을 거치는데 추천위원 9인 중 3명은 대통령이 지명, 3명은 국회의장이 교섭단체 대표위원과 협의하여 추천, 3명은 국회 법사위 추천 등 추천위원 다수는 사실상 국회 몫이다. 따라서 공수처장 임명권은 대통령이 갖지만 추천위원회가 추천한 2인 중에서 하기 때문에 대통령의 임명권은 사실상 형식에 불과하다. 공수처장은 국회의 요구가 있을 때에는 출석하여 보고하거나 답변해야 하는 의무가 있는 것이 기존 검찰총장과는 전혀 다르다.

이상규 의원 등 19대 통합진보당 의원 10명이 발의한 법안을 보면, 역시 공수처장 임명 절차가 색다르다. 대법원장의 추천으로 대통령이 국회의 인사청문회를 거쳐 임명하는 것이 특징이다. 따라서 이 두 법안은 ‘행정권은 대통령을 수반으로 하는 정부에 속한다.’는 3권 분립의 원칙을 침해하는, 위헌 소지가 다분하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과 더불어민주당 박범계, 국민의당 이용주, 정의당 노회찬 의원실이 주최한 고위공직자비리수사처 입법토론회가 30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리고 있다. 2016.08.30.<사진=뉴시스>

20대 국회에 들어와서도 ‘공수처법’은 여러 개가 동시에 발의돼 있다. 지난 7월 21일 노회찬 의원이 대표 발의한 법안을 보면, 공수처장은 대법원장의 추천을 받은 후보자 중에서 국회의 동의를 받아 대통령이 임명하도록 돼 있다. 공수처의 직무집행 공정성을 높이기 위해 공수처가 수사한 사건에 대하여 기소 또는 불기소를 결정할 경우 10일 이내 대통령과 국회에 보고 의무를 두었다. 그러므로 이 법안도 3권 분립을 위배한다는 지적이 나올 수밖에 없다.

민주당 우상호 원내대표와 국민의당 박지원 원내대표는 진경준 前검사장 비리사건이 발발한 직후인 지난 7월 공수처 신설·공조를 합의한 바 있다. 그래서 지난 8월 8일 민주당 박범계 의원과 국민의당 이용주 의원이 대표발의하고 추미애 우상호 안철수 박지원 의원 등 양당 의원 총 71명이 이름을 올린 공수처설치법이 제출되었는데 ‘공수처장 추천위원회’가 특징이다. 추천위원회는 국회에 두고 정치적으로 중립을 지키고 독립하여 그 직무를 수행하며, 7명의 위원으로 구성하도록 돼 있다. 이번 추천위원회는 단 1명만을 공수처장 후보로 추천하여 국회 인사청문을 거쳐 ‘대통령에게 사실상 임명을 강제’하도록 돼 있다. 추천위원 7명의 구성도 법무부장관, 법원행정처장, 대한변호사협회장, 그리고 국회의장이 교섭단체 대표의원과 협의하여 추천하는 4명 등 행정부가 개입할 여지가 거의 없기 때문에 이 역시 명백한 3권 분립 위배이다.

법학자인 서울대 조국 교수는 21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청와대가 아니라 국회가 장을 임명하는 공수처가 제도화되면, 검찰 권력은 약해지고 고위공직자에 대한 항상적 감시와 통제가 가능해진다.”라고 글을 올렸다. 필자가 과문한 탓인지는 몰라도 국회의장이 공수처장의 임명권을 갖는다면 이는 명백한 헌법(3권 분립)의 부정이 아닌가?

야권 대선주자 1위를 달리는 민주당의 문재인 前대표 또한 지난 14일 도올과의 인터뷰에서 “고위공직자에 대한 성역 없는 수사를 위해 공수처라는 독립기관을 만들어야 한다. 공수처는 행정 지휘체계로부터 독립된 기관이어야 한다.”라고 밝혔다. 변호사이자 청와대 민정수석 출신인 문 前대표의 이 발상에 대해 필자는 너무나도 놀랍다.

국민의당 대선주자인 안철수 前대표 역시 22일 한 토론회 기조연설을 통해 대선 前 개헌반대 입장울 밝히면서도 박근혜 대통령 헌법재판소 탄핵 판결 前 3대 개혁과제의 하나로 공수처 설치법을 통과시키자고 제안했다. 이는 명백한 논리모순이다. 자신이 공동·발의한 공수처법이 3권 분립을 규정한 헌법에 대한 정면 도전임을 알고도 이러는 것인지?

우상호 원내대표는 최근 이번 12월 임시국회에서 고위공직자비리수사처 설치법 등 그동안 여당이 막았던 안건을 처리할 방침이라고 밝힌 바 있으나 새누리당은 명확한 당론 반대 입장이다. 더구나 소관인 법사위원장은 여당 소속이 자리를 지키고 있다.

23일 열린 국민의당 비상대책위원-국회의원 연석회의에서 결정한 개헌시기와 관련한 당론은 ‘즉각 개헌추진’이다. 당내 유력 대선주자인 안철수 前대표의 전날 입장과 상반되지만 그래도 참으로 다행스럽다. 국민의당이 추진할 개헌(안)에는 공수처 설치 근거를 명확하게 담아야 할 것이다. 

필자는 ‘고위공직자비리수사처(공수처)’ 도입을 반대하지 않는다. 아니 적극적으로 환영한다. 하지만 지금과 같이 꼼수를 부려 법률 제정만으로 설치를 추진할 경우, 3권 분립을 규정한 현행 헌법과 충돌할 수밖에 없다. 따라서 공수처는 ‘헌법기관’이어야 한다. 반드시 개헌이 필요한 이유이다! 

 

최 광 웅

데이터정치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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