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거티브는 유죄(有罪)인가?

선거전략 교과서를 보면 선거캠페인의 종류가 세 가지로 소개돼 있다. 포지티브(Positive), 네거티브(Negative), 대비되는(Contrastive) 등이 그것이다.

이는 우리나라 공직선거법에도 고스란히 반영돼 있다. 선거운동의 정의는 “당선되거나 되게 하거나 되지 못하게 하기 위한 활동”으로 후보자 비방과 같이 불법적인 방식만 아니면 폭넓게 허용한다. 그러므로 포지티브와 네거티브 양쪽 모두가 합법이다.

상대방 후보와 정책, 능력, 자질 등의 차이점을 비교·전달하는 ‘대비되는 방식’은 선거법이 허용하는 후보자초청 TV토론회가 가장 효과적이다.

 

6·4 지방선거를 일주일 앞둔 28일 선거가 중반전에 접어들면서 네거티브전이 가열되고 있는 가운데 충남 청양군 대치면 장곡사 입구 장승공원에 ‘공명 대장군’과 ‘공명선거 지킴이’, ‘공명선거 여장군’ 등 장승이 자태를 뽐내고 있다. 이 장승들을 계기로 흠집 내기 와 네거티브 등 난타전이 벌어지고 있는 시점에서 후보들의 공정하고 깨끗한 정책 선거를 치렀르면 바란다. 2014.05.28<사진=뉴시스>

제45대 도날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의 1등 공신은 단연 로저 스톤(64세)이다. 스톤은 1972년 대선 당시 리처드 닉슨 대선캠프의 전략 컨설턴트를 맡아 워싱턴에 데뷔했다. 이후 로널드 레이건 캠프(1980년·1984년)를 거쳐 밥 돌 캠프의 대변인(1996년)을 맡기도 했다. 최근에도 조지 부시 2세(2004년) 및 밋 롬니 캠프(2008년)의 선거자문역을 역임한 고참 정치컨설턴트다.

스톤의 장점은 “워싱턴의 암살자”로 불릴 만큼 40년 이상 네거티브를 해온 경험에서 우러나온다. “멕시코 국경에 거대장벽 설치” 및 “이슬람 이민자 사상검증” 등 트럼프의 계산된 숱한 막말은 스톤의 주문이었다.

네거티브 선거전의 대가는 조지 H. W. 부시를 만든 리 애트워터이다. 그는 별명이 아예 ‘나쁜 놈(bad boy)’으로 불렸다.

1988년 대선은 레이건 행정부에서 부통령을 지낸 공화당 후보 부시 對 매사추세츠州의 경제기적을 일으킨 민주당 후보 마이클 듀카키스의 뜨거운 한판승이었다. 당시 부시는 이란-콘트라 스캔들로 위기를 맞고 지지율은 추락을 거듭한다. 7월 말 민주당 전당대회 직후 실시된 뉴스위크 여론조사에서 듀카키스 55% 대 부시 38%로 그 격차는 무려 17%P나 벌어졌다.

하지만 부시의 역전승을 일군 건 37세의 젊은 선거 전략가 애트워터였다. 그는 이미 1984년 한 차례 레이건 캠프에 참여한 정치컨설턴트였다. 애트워터는 철저하게 ‘네거티브 전쟁’으로 몰고 가 대선 판도를 완전히 바꿔놓는다.

애트워터는 네거티브의 전설로 불리는 ‘윌리 호튼 광고’를 제작·방영하는데 대성공이었다.

“듀카키스는 사형에 반대하고 있을 뿐 아니라, 1급 살인을 저지른 죄수의 일시 귀향을 인정하고 있다. 그 중 한 사람이 바로 윌리 허튼이다. 종신형을 언도받았음에도 불구하고 허튼은 10차례나 일시 귀향을 허락받았다. 허튼은 일시 귀향 중 탈주를 감행하여 젊은 커플을 털고 남자를 칼로 찔러 살해했으며, 여성은 수차례나 걸쳐 강간했다. (살해, 강간이라는 글자가 화면에 나타난다.) 죄수의 일시 귀향, 이것이 범죄에 대한 듀카키스의 대응이다.”

윌리 호튼 사건은 이미 대선 1년 전 듀카키스가 주지사로 있던 매사추세츠州에서 벌어진 일이었다. 당시 ‘일시 귀향제’ 도입에 따른 강력범죄율은 13%가 감소했으나 ‘윌리 호튼 광고’를 시청한 유권자들의 분노는 극에 달했다.

이처럼 네거티브는 근거 없는 사실을 조작해 상대편을 중상·모략하는 흑색선전인 마타도어와는 질적으로 다르다. 미국 등 선진국에서는 오히려 능력이나 자질 등의 검증을 위해 합법적이고 폭넓게 보장된 선거운동 방식이다.

약관 38세에 공화당 전국위원회 의장직에 오르는 애트워터의 선거 전략은 뜻밖에 손자병법으로부터 비롯됐다. 손자병법은 기본적으로 상대의 약점을 찾아내는 네거티브 전쟁에 관한 기술이다.

손자병법 군쟁(軍爭) 편을 보면 교전과 관련한 8가지 원칙이 나온다. 이중 다섯 번째가 이병물식(餌兵勿食)이다. 이병물식은 적이 이익을 미끼로 내걸어 아군을 유인할 때 이를 덥석 물지 말라는 뜻이다. 네거티브 공격과 함께 수비의 중요성을 강조하기 위해 사용한다.

1997년과 2002년 대선은 각각 1.5% 및 2.3% 등 박빙 승부가 펼쳐졌지만 한나라당 이회창 후보의 두 아들 병역면제 문제가 결정타였다. 특히 2002년 대선 때는 수사관을 사칭한 김대업까지 등장해 병역면제 과정에서 비리가 있는 것처럼 흠집을 냈으나 대선이 끝난 다음 오히려 김대업이 명예훼손 등 혐의로 유죄판결을 받았다. 네거티브에 대한 잘못된 대응이 화근을 부른 것이다.

지난 2012년 대선 때도 NLL(서해 북방한계선) 포기 발언 의혹제기에 대해 효과적으로 대응하지 못한 문재인 후보가 눈물을 삼켜야 했다. ‘진보’ 후보에게 대북문제가 약점이 된다는 점을 악용한 상대방의 미끼를 덥석 물어버린 후과는 컸다.

2007년 정동영-이명박 후보 간 대결은 정책은 실종되고 네거티브만 난무했다. 아니 실정법 상으로는 마타도어 선거였다. 불확실한 정황만으로 정치공세를 펴는 게 바로 마타도어다. BBK 사건은 명명백백한 증거가 없는 상태였다. 그러니 이를 선거운동에 활용한 것 자체가 어리석은 짓이었다.

16대 대선에서 이회창 후보는 2478만 투표수 중 1144만표(46.6%)를 획득했다. 5년 뒤 이명박 후보는 2372만 투표수 중 1149만표(48.7%)를 득표했다. 7% 이상 하락한 투표율 속에서도 득표수는 오히려 5만표가 더 늘어난 것이다.

서울 강남구 유권자들도 말없이 조용하게 66.4%나 이명박 후보를 찍었다. 정동영 후보와의 격차는 무려 51.8%였다. 5년 전보다 7% 낮아진 투표율 속에서도 2만 3천여표가 더 늘었다. 강남구는 참여정부 기간 중 부동산 폭등으로 가장 큰 수혜를 받은 중산층과 그 이상의 상층 자산가들이 대부분 거주하는 지역이다.

 

역대 대선에서 가장 적은 표차가 난 건 1963년 제5대 대선이다. 이 선거는 5·16 군사쿠데타에 대한 심판성격이 강했으며 공화당 박정희 후보는 군정(軍政)에서 민정(民政)으로 간신히 합법적 정통성을 획득하게 된다. 개표 결과는 15만 6천여표 차이(1.55%)로 박정희 후보의 승리였으나 남여북야(南與北野)의 지역대결 구도를 보였다. 서울·경기·강원 지역에서는 민정당(民政黨) 윤보선 후보를, 영남과 호남에서는 박정희 후보를 압도적 표차로 지지했다 충남·북 지역에서는 윤보선 후보의 신승(辛勝)이었다.

 

윤보선 후보는 선거기간 내내 “구악(舊惡)과 부패의 일소(一掃)하겠다고 공약한 군사정부 2년 동안의 부정·비리는 증권파동과 공화당 사전조직 사건 등 舊정치인보다 더 어마어마했다.”라고 규탄했다. 찬조유세에 나선 서범석, 윤제술, 김영삼 前의원 등은 “삼천만 국민 누구도 대통령이 되어도 좋으나 非민족적인 박정희 후보만은 시킬 수 없다.”며 목소리를 높였다. 박정희 후보는 남노당의 군사책임자와 여순사건 가담 의혹에서 자유롭지 못한 상태였는데 5·16 직후 북한이 박정희 최고회의 의장에게 20만 달러와 함께 보낸 밀사임을 주장한 거물 간첩 황태성이 나타나 민정당 측은 이를 규명하라고 맹공한 것이었다. 한국전쟁 종전 10년째인 이 해만 해도 매카시 열풍은 대단했고 야당이 붙인 사상논쟁은 불을 뿜었다.

 

13일 3대 세습 독재국가인 북한의 17세 선거권 사례를 거론하며 18세 선거연령 인하문제를 제기한 문재인 前대표가 새누리당과 보수단체로부터 ‘종북 네거티브’의 표적이 되고 있다.

그는 또한 15일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는 “사드배치문제는 다음 정부로 미루는 것이 바람직하고 다음 정부가 해법을 강구해야 한다. 한미 간 이미 합의가 이뤄진 것을 쉽게 취소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며 기존 입장에서 한 발짝 물러섰다.

지난해 7월에는 정부에 대해 “사드배치 결정 재검토와 공론화”를 요청했고 당 지도부에는 당론채택을 요구한 바 있으니 말을 바꾼 셈이다. 그러자 정치권이 일제히 나서서 “문 前대표가 말을 바꿨다.”고 비판을 가하고 있다.

우파들은 문 前대표를 집중적인 표적을 삼아 네거티브 ‘사상 공세’를 펼칠 전망이다. 그들은 문재인 前대표에게 오락가락 하는 입장이 아니라 진심을 내보이라고 할 터이다.

이 두 사안만 놓고 봐도 네거티브 전략을 주로 사용하는 정치컨설턴트들에게 문 前대표는 매우 좋은 먹잇감이다. 실수도 반복되면 실력이 되는 것이다. 조심 또 조심하는 길이 최선이다.

정책능력, 리더로서의 자질, 그리고 도덕성 등등 상대방과 나를 비교·전달하는, 피 터지는 포지티브-네거티브 선거전은 반드시 필요하다. 유권자에게 많은 정보제공을 위해서도 유익하다.

네거티브는 잘만 쓰면 약(藥)이 될 수 있다. 하지만 마타도어는 무조건 독(毒)이다. 불법으로 처벌을 받는다.

 

최 광 웅

데이터정치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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