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형법 사례처럼 피해자가 '싫다'고 말한 것이 인정되면 강간혐의 적용해야“

▲17일 오후 ‘#문화예술계_내_성폭력, 어떻게 할 것인가?’ 토론회가 국회의원회관 제9간담회실에서 열렸다. ⓒ돌직구뉴스

지난해 10월, 문단에서 촉발된 성추문 폭로가 미술과 영화 등 문화예술계 전반으로 확산되면서 한국사회에 큰 충격을 주었다. 피해자들은 용기를 내어 ‘#00_내_성폭력’이란 해시태그로 익명의 절규를 쏟아냈고, 결국 문화예술계 내에서 구조적으로 발생하는 성폭력 문제가 심각하게 드러났다.

하지만 이러한 문제의식이 공유됐음에도 근본적인 해결 방안이 마련되지 않고 있는 가운데, 오히려 피해자가 명예훼손으로 고소당하거나 협박당하는 2차 피해에 노출되고 있다. 결국 용기를 냈던 피해자들은 움츠러들고 두려움에 또 다시 숨을 수밖에 없는 안타까운 상황이다.

때마침 17일 오후 문화예술계의 전체에 만행하고 있는 성폭력 실태의 심각성을 고발하고 근본적 해결방안 마련을 위한 토론회가 국회의원회관 제9간담회실에서 열렸다.

토론회는 국회의원 연구단체인 ‘아동·여성인권정책포럼’이 주최하고, 더불어민주당 정춘숙 의원이 주관했으며 ‘#문화예술계_내_성폭력, 어떻게 할 것인가?’를 주제로 성폭력 문제 전문가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정춘숙 의원은 인사말에서 "남성중심의 권력구조가 오랫동안 지배해온 문화예술계에선 침묵과 방조로 성폭력 피해가 반복돼 왔다"며 “이제 막 시작된 변화와 움직임을 지켜내고, 문화예술계의 성평등 환경 조성, 피해자에 대한 체계적 지원을 위한 정책적 대안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이날 토론회의 좌장은 국회 여성가족위원회 차인순 입법심의관이 맡고, 부산대 법학과 오정진 교수,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이선경 변호사가 발제를 했다.

오정진 교수는 문화예술계의현 상황에 대해 "문화예술계 성폭력이 하나의 예술가풍으로 치부되거나, 가해자의 지위나 권력으로 면제되는 부분이 있다"며 "여성의 성을 도구화해 작품에 이용하기도 하는 등 성폭력이 조장되는 경우가 많다"고 지적했다.

이선경 변호사는 "문화예술계에선 성폭력 사건이 발생해도 작업 중에 벌어진 '창작활동'이란 변명 때문에 강제성을 입증하기 어려운 경우가 많다"며 "독일 형법 사례처럼 피해자가 의사표현을 통해 '싫다'고 말한 것이 인정되면 강간혐의를 적용하는, 즉 동의하지 않은 성폭력은 강간으로 해석하는 법개정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또한 "소셜 네트워크(SNS)를 통해 공개적으로 성폭력 피해 사실을 폭로하더라도 사이버명예훼손죄가 항상 성립하는 건 아니다"며 "가해자가 명예훼손 운운하며 역으로 협박하는 경우 겁먹지 말고 법률전문가에게 상담받기를 권유한다"고 대처방법을 조언했다.  

이어진 지정토론에는 송란희 한국여성의전화 사무처장, 이성미 문단 내 성폭력 방지를 위한 작가모임 ‘페미라이터’, 김영주 한국작가회의 작가, 영화계 내 성폭력 방지를 위한 영화인들의 모임 ‘찍는페미’의 신희주 영화인, 문화체육관광부 이영열 문화여가정책과장, 여성가족부 최창행 과장이 참여했다.

송란희 사무처장은 "성폭력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선 피해자의 '말하기'가 중요하다"고 밝히면서 "피해사실을 폭로한 해시태그 운동을 통해 가해자와 피해자가 분명하게 구분되고, 성폭력에 구체성을 부여해 '나의 문제'로 다가오게 한 효과가 있었다"고 평가했다.

이영열 과장은 "문화예술계 성폭력 사건이 일어날 때마다 문체부도 사태파악과 해결방안을 모색해왔다"며 "교육과 상담을 통해 문화예술계에 양성평등문화가 확산할 수 있도록 노력하고 단체들과 협의해 자발적인 정화노력을 지원하겠다"고 밝혔다.

이날 토론회에 참여한 전문가들은 성폭력 피해자들을 보호하기 위한 법과 제도를 정비하고, 왜곡된 문화를 개선하는 비법률적 해결과정도 역시 중요하다는데 한목소리를 냈다.

토론회에서는 이밖에도 문화예술계 특수성을 고려해 포괄적인 성폭력 관련 기구가 설치돼야 한다는 의견과 공공부문 차원에서 성폭력 피해자를 위한 상담, 법률지원 등 지원체계를 마련해야 한다는 의견 등이 제기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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