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주 총회를 한 달 앞두고 행동주의 펀드를 중심으로 한 주주행동이 본격화됐다. 연합뉴스
주주 총회를 한 달 앞두고 행동주의 펀드를 중심으로 한 주주행동이 본격화됐다. 연합뉴스

주주 총회를 한 달 앞두고 행동주의 펀드를 중심으로 한 주주행동이 본격화됐다. 이들은 기업들의 후진적인 지배구조를 개선하거나 배당금을 늘려 주주가치를 제고하는 등 적극적인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다만 주주행동이 결국 의결권을 행사하더라도 기관투자자(기관)의 힘을 얻지 못한다면 결국 부결될 가능성이 높다는 점에서 국민연금 등 기관의 움직임이 주목된다.

15일 IB(투자은행)업계에 따르면 의결권 자문사 서스틴베스트는 지난 9일 2023년 정기주주총회 시즌 프리뷰 보고서를 통해 주총 관전포인트로 행동주의 펀드의 주주제안 확대, 소유분산 기업에 대한 의결권 행사, 환경·사회 주주권 행사를 꼽았다.

서스틴베스트는 "작년에 이어 올해 정기주총 시즌 국내 행동주의 펀드들과 소액주주의 주주제안이 다수 등장할 전망"이라며 "총수 일가 내분에 따른 경영권 분쟁 성격의 주주제안보다 소액주주, 펀드 등 일반주주가 제기하는 주주제안이 점차 두드러지고 있는 점이 특징"이라고 말했다.

작년 주주제안을 통해 상정된 안건을 살펴보면 사외이사 선임(24%), 배당(19%), 정관변경(14%), 사내이사 선임(10%), 감사 선임(7%), 감사위원회 위원 선임(7%) 등으로 지배구조 관련 안건과 주주환원 관련 안건의 비중이 대부분을 차지했다.

서스틴베스트는 올해 주주제안 안건 유형도 비슷한 분포를 보일 것으로 전망했다. 그 사례로 플래쉬라이트캐피탈파트너스(FCP)와 안다자산운용이 캠페인을 진행하고 있는 KT&G의 주주총회, 얼라인파트너스가 예고한 7개 은행지주에 대한 배당확대 주주제안 등이 관심을 끌 것이라고 예상했다.

또 KT와 신한지주 등 국민연금이 최대 주주로 있는 대표적인 소유분산 기업들의 최고경영자 임기가 오는 3월 만료돼 이들 기업에 대한 의결권 행사 역시 주목 포인트 중 하나로 제시됐다.

이렇듯 행동주의 펀드와 소액주주 제안을 중심으로 한 주주행동이 본격화됐으나 기업이 제안을 받아들이기 위해서는 기관의 역할이 중요하다.

다만 지난해 기관 투자자들이 정기주주총회에서 주주제안에 반대 의결권을 행사한 비율은 24.0%로 전체 안건 반대율보다도 높은 수준이다.

한국ESG연구소에 따르면 작년 정기주총에서 의결권을 행사한 기관투자자(국민연금 등 연기금 제외·공시 기준) 193개사 중 주주제안에 의결권을 행사한 기관은 총 38개사로 전년(208개사 중 22개사)보다 행사 기관 수가 늘어났다.

이들 기관이 주주 제안에 대해 반대 의결권을 행사한 비율은 전체 기관 투자자의 반대 의결권 행사 비율보다 크게 높았다.

작년 125건의 주주제안 의결권 행사에서 반대 의결권 행사는 30건으로 반대율은 24.0%이었다. 이중 안건 별로는 임원 선임에 대한 안건(22건) 반대 비중이 73.3%로 대부분이었고 배당(6건), 정관(2건) 안건에 대한 반대 의결권 행사도 있었다. 2021년에는 반대 의결권 행사 비율이 29.8%였다.

국민연금공단 기금운용본부. 연합뉴스
국민연금공단 기금운용본부. 연합뉴스

즉 여전히 기관투자자는 주주제안에 반대하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는 뜻이다. 그러나 최근 들어 기관투자자가 주주제안 반대 의결권을 행사하는 비율이 줄어드는 추세라는 점도 주목된다.

주주행동주의 영향력이 커지면서 올해 주총에서는 주주 제안에 대해 의결권을 행사하는 기관 수가 많아지고 찬성 비율도 더 높아질 것이라는 예상도 나온다.

현재까지 올해 주총에서 기관 투자자의 주주제안이 예상되는 기업으로는 SM(얼라인파트너스, 기타비상무이사 선임), 은행지주(얼라인파트너스, 주주환원 확대 요구), 태광산업(트러스톤자산운용, 감사위원 선임 등), KT&G(안다자산운용·플래쉬라이트캐피탈파트너스, 인적분할 등) 등이 있다.

소액주주 연합도 DB하이텍(감사위원 선임), 광주신세계(현금배당 확대 등), 젬백스링크(경영진 교체) 등 기업에 대해 주주제안을 할 것으로 예상된다.

최근에 주주행동은 배당 등 일회성 요구에서 벗어나 기업가치나 지배구조 전반에 대한 요구로 전환되고 있다.

특히 대표적인 기관투자자이자 국내 주요 기업의 대주주인 국민연금의 행보가 가장 중요하다.

스튜어드십 코드(기관투자자의 적극적 경영 참여) 강화가 최근 강조되면서 국민연금이 주주제안 의결권 행사에도 더 적극적으로 참여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온다. 국민연금도 이를 받아들이려는 경향을 보인다.

특히 국민연금은 최근 현대백화점이 지주사로 전환하기 위해 추진한 인적 분할에 대해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국민연금은 현대백화점의 지분 8.03%를 보유하고 있다. 정지선 현대백화점그룹 회장을 포함한 특수 관계인 지분 36.08%에는 못 미치지만 인적 분할에 반대하는 소액 주주들의 지분과 합치면 캐스팅 보드를 쥐게 된다.

현대백화점 인적분할과 관련돼 행동주의 펀드나 소액주주 제안이 두드러지게 나타나지는 않았지만 '오너 일가의 지배력을 강화하기 위해 주주가치를 희석한다'는 주장이 강하게 제기됐다.

국민연금은 이러한 주장에 공감했다. 또 글로벌 의결권 자문사인 ISS와 노르웨이 중앙은행의 국부펀드도 반대하면서 현대백화점 인적분할에 부정적인 공감대가 형성됐다.

실제로 현대백화점의 인적 분할 안건은 표결에 참여한 주주 중 찬성이 64.9%, 반대가 35.1%로 부결됐다. 안건이 통과되려면 참석 주주의 3분의 2(66.7%)가 찬성해야 하는데 2%포인트가 부족해 부결됐다.

이에 국민연금이 현대백화점의 사례와 같이 정기주총에서도 적극적인 의결권을 행사할 가능성이 점쳐지고 있다.

서스틴베스트는 "국민연금이 소유분산 기업의 지배구조 투명성을 강조하며 적극적인 의결권 행사를 예고한 가운데 이들 기업의 이사 선임 안건에 대한 국민연금의 의결권 행사 과정과 그 방향에 관심이 쏠릴 것"이라고 내다봤다.

한 IB업계 관계자도 “최근 들어 주주행동 주의가 본격화되면서 국민연금도 주주 입장에서 주주제안에 적극적으로 움직일 것으로 기대된다”고 말했다.

[스트레이트뉴스 신용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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