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관진 석방 판사·법원 모독…법치 흔드는 위험사회
김관진 석방 판사·법원 모독…법치 흔드는 위험사회
  • 장오성 기자
  • 승인 2017.11.29 14:5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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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인 조롱·막말 사법정의 위협…불구속 수사·무죄추정의 원칙 존중돼야

판사 신상털기가 민주주의의 근간이 삼권분립을 위협할 수준으로 치닫고 있다.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이후 급작스럽게 늘어나 이제는 사회 병리 현상으로 자리 잡는 듯하다. 검찰의 적폐수사가 전 방위적으로 이루어지면서 검찰과 법원의 팽팽한 신경전도 예사롭지 않다. 

자신의 생각과 이념이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사법적 판단을 비방하는 것은 법치를 흔드는 위험사회다. 촛불혁명으로 태어난 현 정부에서 자칫 ‘촛불’에 반하면 조림돌림을 당하는 일은 예사가 되고 있다. 촛불의 권력화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다. 

모든 ‘촛불’이 그러하진 않겠지만 문제는 촛불을 등에 업은 정치인들이다. 그야말로 차려진 밥상에 숟가락이나 얻어 보자는 노골적 심사를 내보인다. 법치와 사법 독립을 수호해야 할 정치인이 혼란과 갈등을 조장하는 데 앞장서고 있다. 

더욱이 집권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이 보이는 반응은 심각하다. 오직했으면 전국법과대학교수회가 성명서를 내고 "담당 판사에 대한 과도한 비난은 사법권 독립과 재판의 공정성 등에 대한 위협이 될 수 있다"고 경고했을까.

발단의 시작은 김관진 전 국방부장관과 임관빈 전 실장에 대한 구속적부심에서 신광렬 부장판사가 석방 결정을 내리면서다. 청와대 홈페이지에는 신 판사에 대한 해임 청원이 봇물처럼 쏟아졌다. 사이버상에는 ‘적폐 부역자’ ‘사법부 양아치’ 같은 조롱 글과 함께 신 판사의 사진과 이력 등 신상털이가 도를 넘고 있다.

처음이 아니다. 지난 1월에는 조의연 서울중앙지법 영장전담 판사가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구속영장을 기각했다 ‘신상털이’를 당했다. ‘삼성 장학생 출신’이라는 유언비어에 시달렸다. 당시에도 여당 중진 의원은 “삼성이 돈 주고 법원을 주물렀다”고 허황한 비난을 퍼부었다. 

지난 7월에는 조윤선 전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을 석방한 황병헌 판사가 가짜뉴스의 타깃이 됐다.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과거 라면을 훔친 도둑에게 징역 3년6개월의 실형을 선고한 적이 있다’는 가짜 뉴스를 만들어 소셜 미디어 등에 퍼 날랐다. 

이번에는 당 대표까지 가세했다. 추미애 민주당 대표는 27일 김 전 장관과 임 전 실장의 석방과 관련 "법원은 사법부에 대한 국민적 불신이 높아지고 있음을 직시해야 한다. 검찰은 법원 판단에 일희일비하지 말고 전 정권의 국가기관에 의해 자행된 불법 정치 개입에 대해 흔들림 없이 수사에 매진해야 한다"고 했다. 

같은 당 안민석 의원은 신광렬 판사에 대해 "적폐 판사들을 향해 국민과 떼창으로 욕하고 싶다"고 했다. 박범계 의원은 "법리가 아니라 소수의 정치적 공세와 궤를 같이한 것"이라고 비난했다. 앞서 송영길 의원은 트위터에서 "(석방 판사는) 우병우와 같은 성향"이라고 자의적 잣대로 공격을 가했다. 

신 판사는 앞서 ‘정유라 특혜 입학’ 사건으로 구속된 김경숙 전 이화여대 학장과 ‘옥시 보고서 조작’ 논란으로 구속돼 최근 무죄를 선고받은 조모 서울대 교수의 구속적부심도 맡았으나 모두 풀어주지 않았다. 

그의 재판장 시절을 돌아보자. 1970년대 ‘동아투위 사건’과 한국전쟁 때의 ‘거창 양민학살 사건’과 관련해 국가상대 소송의 재판장을 맡았던 신 판사는 당시 동아일보 해직 기자들과 희생자 유족들의 손을 들어주는 판결을 내렸다.  

헌법은 '법관은 법률과 양심에 따라 독립하여 심판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법관윤리강령 첫머리에는 '외부 영향으로부터 사법권의 독립 수호'를 강조한다. 법관은 초당파성의 직업윤리를 지키도록 요구받는다. 법원이 권력과 외압, 당파적 눈치에 이끌려 시류적 판단을 한다면 재판 당사자들은 판결에 승복하지 않게 된다.

여당 의원들이 집단으로 신 판사에게 이지메를 가하고 사법부를 향해 돌팔매질을 하고 있다. 재판과 사법의 독립을 위협하는 반헌법적 행동이다. 마치 자신의 입맛대로 사법부를 길들이기라도 하겠다는 식의 위협적인 도발이 이어지고 있다. 

법대교수회는 "이런 사태는 법관 개인의 직업적 양심을 위축하고 제한해 헌법이 정하는 공정하고 신속한 재판을 받을 권리를 침해할 소지가 있다“며 ”표현의 자유는 보장돼야 하지만 집단으로 인격 살인에 가까운 막말을 하고 정치인들까지 가세하는 것은 책임 있는 시민의 자세라고 할 수 없다"고 일침을 가했다. 자칫 헌법과 법치주의 정신을 무너뜨릴 수 있다는 위기감으로 받아들였다는 교수들의 뜻이다.


헌법과 민주주의를 배신했다는 이유로 대통령을 탄핵시키고 들어선 촛불 정권에서 헌법파괴가 진행되고 있는 아이러니다. 유죄 증거가 명확하지 않을 때는 피고인에게 유리하게 판단하는 것이 사법 대원칙이다. 자녀들이 지켜보는 앞에서 압수 수색을 당한 검사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재판을 채 받기도 전에 죄인처럼 되는 마녀사냥은 멈춰야 한다. 민주 법치 국가에서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구속적부심에서 석방됐다고 무죄를 뜻하는 것도 아니다. 불구속 수사와 무죄 추정의 원칙을 재확인한 것에 불과하다. 그럼에도 민심을 선동하고 판사의 권위를 능멸하고 사법부를 모욕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남의 적폐만 보고 제 눈의 적폐는 보지 못하는 정치인의 무책임을 더 이상 방관해서는 안 된다.

헌법과 법치에 위배되는 행동에 사법부는 단호히 나서야 한다. 더 이상 침묵하면 재판과 법관의 독립이 아니라 정권의 눈치를 본다는 비판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이대라면 ‘코드 사법부’란 불명예를 쓰고 신뢰를 잃는 것은 명약관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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