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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U(유럽연합)가 '친환경'을 강조하며 글로벌 기업 대상으로 여러 강력한 규제들을 내놓고 있다. 연합뉴스

EU(유럽연합)가 '친환경'을 강조하며 글로벌 기업 대상으로 여러 강력한 규제들을 내놓고 있어 우리 기업들이 고심에 빠졌다. 사실상 '무역 장벽'인 것 아니냐는 말이 나오는 정도다.

EU의 규제는 갈수록 강해지고 있다. 먼저 오는 10월부터 EU가 '탄소국경조정제도(CBAM)'를 시범 시행한다. 이에 따라 철강·알루미늄·비료·전기·시멘트·수소제품 등 6개 품목을 수입하는 기업은 제품 생산 과정에서 탄소배출량을 보고하고 기준을 초과하면 탄소배출권을 강제로 구매해야 한다. 유럽지역 내에 제품 공장을 두고 있는 삼성, LG 계열사들의 부담이 커질 것으로 예상된다.

한국무역협회는 "CBAM은 한국 기업의 환경 관련 생산비용을 상승시킬 것"이라며 "대상 품목의 실제 온실가스 배출량 측정, CBAM 신고서 제출, 인증서 구매 등 규정 준수 비용이 증가할 것으로 예상한다"고 분석했다.

이어 오는 2025년 시행 예정인 '공급망 실사 지침'은 EU 내 매출 1억5000만 유로(2130억원) 이상 기업에 인권과 환경에 미치는 부정적 영향에 대한 실사 의무를 부과, '경영상의 기밀'이 포함될 수밖에 없어 문제가 되고 있다. EU는 기업 사업장·공급망 전체에서 발생한 환경 훼손과 인권 침해 여부 등을 파악해 개선하고 공개하라는 입장이다.

16개 전략원자재를 집중 관리해 원료의 지속 가능성을 높이겠다는 명분을 내세운 '핵심원자재법(CRMA)'도 기업들에 부담을 가중시키고 있다. 지난 3월 초안이 공개된 이 법안은 배터리·친환경 에너지 설비에 들어가는 광물의 채굴·제련·재활용 등을 EU 권역 안에서 일정 비율 이상 수행하도록 요구하고 있다. 주요 광물 공급망을 EU 안으로 끌고 들어오려는 구상이다. 전략원자재를 활용해 기술을 개발하는 기업에 공급망 점검 결과를 2년마다 보고하도록 하는 내용도 들어 있다.

여기에 EU는 CRMA에 알루미늄을 핵심 원자재로 규정하는 방안을 검토하기 시작했다. 알루미늄은 배터리, 태양광 패널 등에 광범위하게 쓰이는데, 세계 생산량의 절반 이상을 중국에서 담당하고 있다. 우리 기업도 중국 의존도가 높은데, EU는 알루미늄을 핵심 원자재로 지정해 연간 소비량의 40%를 EU 권역 내에서 가공하고 재활용 비율을 15%까지 끌어올리려는 계획이다.

최근에는 EU 의회 본회의를 통과한 'EU 배터리법'이 큰 논란이 되고 있다. EU 배터리법에는 '배터리 탈부착'이 가능한 스마트폰을 판매하도록 하고, 유럽에서 사용된 폐배터리에서 핵심 원자재 회수를 의무화하고 새 배터리를 생산할 때 '재활용 원료'를 일정 비율 이상 사용하게 하는 등의 조항들이 담겼기 때문이다.

EU는 법 적용 시기를 공표하지 않고 '안전 등과 관련한 이유가 있을 경우엔 일체형도 허용할 수 있다'는 예외 조항을 둬 협상 가능성을 열어놨지만 삼성전자, 애플 등 스마트폰 제조사들은 당혹스러운 기색이다. 삼성전자는 2015년 갤럭시S6부터 '일체형 배터리'를 프리미엄 폰에 적용해오고 있으며 애플은 배터리 탈부착 스마트폰을 출시한 적이 없다. 만약 실제로 법이 시행된다면 스마트폰 제조사들은 제품 설계부터 생산라인을 대대적으로 바꿔야 하므로 혼란이 예상된다

EU는 이 같은 법안들의 제정 취지로 '친환경'과 '소비자 편익 제고'를 내세우고 있으나 이를 바라보는 전세계 산업계 시각은 다르다. EU가 자국 내 첨단산업 공급망을 강화하려는 목적이라는 의견이 우세하다.

국내 기업들은 골머리를 앓고 있다. 단순 친환경 포장재를 장려하는 수준을 넘어 제품 원재료나 생산 방식 등 스펙에까지 간섭하는 모습이기 때문이다.

앞서 올해 3월 EU가 TV의 에너지효율지수(EEI)를 강화시킨 것이 대표적 사례로 꼽힌다. 당시 삼성전자와 LG전자의 8K·OLED 등 프리미엄 TV가 유럽 시장에서 '판매 중단'을 맞을 위기에 처하기도 했다. 양사는 저전력모드를 기본 기능으로 하는 대안을 마련해 가까스로 위기를 넘겼다.

이같은 상황에 정부가 EU 집행위원회에 국내 기업들의 상황을 알리고 더욱 적극적으로 의견을 피력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다. 업계 관계자는 "EU의 친환경 규제가 예상보다 빠르게 시행되고 있다"며 "친환경 기조로 산업계가 흘러가야하는 것은 맞지만 기업이 대비하고 준비할 시간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스트레이트뉴스 함영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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