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금리 장기화에 5대 은행 건전성↓….올해 부실채권 3.2조 상·매각
부실채권 정리 효과로 가계대출 축소 ‘착시’…실제 부실 지속 증가

서울 용산구 경리단길 초입에 나란히 자리한 주요은행 ATM기. 장석진 기자.
서울 용산구 경리단길 초입에 나란히 자리한 주요은행 ATM기. 장석진 기자.

우려했던 고금리 장기화에 은행에서 돈을 빌린 가계와 기업들이 버티지 못하고 돈을 갚지 못하는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 부실화된 대출 채권을 은행들이 건전성 관리 차원에서 상각 또는 매각하고 있음에도 연체율 증가가 이어질 조짐이다.

15일 금융권에 따르면 5대 은행(KB·신한·하나·우리·NH농협)은 올들어 3분기(1∼9월)까지 3조2201억원 상당의 부실 채권을 상각 또는 매각했다. 이는 작년 동기 상·매각(1조5406억원) 규모의 2배가 넘고 작년 전체 규모(2조2711억원)을 훌쩍 뛰어넘은 규모다.

은행의 자산건정성 분류 기준은 크게 정상, 요주의, 고정, 회수의문, 추정손실 등 5등급으로 구분한다. 가운데 등급인 ‘고정’이하 여신을 부실 채권으로 보고 상환능력, 연체기간, 부도여부 등을 기준으로 관리하다 회수 가능성이 없다고 보여지면 상환불능으로 간주해 회계장부상 손실처리를 하게 된다.

손실처리는 장부에서 지우는 ‘상각’과 그나마 조금이라도 살리기 위해 자산유동화회사 등에 헐값에 파는 ‘매각’이 있다. 지난 3분기 상·매각된 부실채권 규모는 약 1조73억원으로, 2분기 규모(1조3560억원)보다는 상당 폭 줄었지만 작년 3분기(5501억원)의 약 1.83배 수준이다.

시중은행 관계자는 "금융지원 종료 등 영향으로 연체 증가 속도가 더 빨라질 것"이라며 "자산 건전성 제고를 위한 대손 상각·매각도 4분기 이후 계속 늘어날 것"이라고 예상했다. 코로나19 상황에 따라 차주들의 원금이나 이자 상환을 유예하는 프로그램들이 종료되면 연체가 더 가속화될 것으로 보은 시각이다.

최근 부동산 가격 상승과 연동해 가계대출 증가에 대한 위험성이 커지는 가운데, 건정선 관리라는 명분 하에 이뤄지는 은행권의 대규모 상·매각이 전체 가계대출 추이 관찰에 착시현상을 일으킬 가능성도 있다.

한은과 금융당국에 따르면 지난 9월 은행권과 전체 금융권의 가계대출은 8월 말보다 각각 4조9000억원, 2조4000억원 늘었다. 증가 폭이 한 달 사이 약 2조원, 3조7000억원씩 줄어 가계대출 증가세가 꺾인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대규모 부실채권 상·매각에 힘입은 결과다.

한은 관계자는 "신용대출 등 기타대출의 경우 명절 상여금 유입, 금융기관의 부실채권 매·상각 등 계절 요인으로 감소 폭이 1000억원에서 1조3000억원으로 커졌다"고 설명했다.

3분기말 대규모 은행들의 부실채권 정리로 9월 연체율과 고정이하여신(NPL) 비율도 한 달 새 다소 낮아졌지만 1년 전과 비교하면 여전히 높다.

5대 은행의 9월 말 기준 단순 평균 대출 연체율(1개월 이상 원리금 연체 기준)은 0.31%(가계대출 0.27%·기업대출 0.34%)로 집계됐다. 8월 말(평균 0.34%·가계 0.30%·기업 0.37%)보다 0.03%포인트(p) 낮지만, 작년 9월 말(평균 0.18%·가계 0.16%·기업 0.20%)보다는 0.13%p 높다. 부실채권(NPL) 비율도 한 달 사이 평균 0.29%에서 0.26%로 0.03%p 하락했으나 1년 전(0.21%)과 비교하면 0.05%p 상승했다.

하지만 신규 연체율(해당월 신규 연체 발생액/전월 말 대출잔액) 평균은 0.09%로 전월과 같은 수준이다. 일부 은행 중에서는 신규 연체율이 집계를 시작한 2018년 이후 가장 높아진 곳도 있다. 해당 은행 관계자는 "개인과 기업에서 각각 연체가 크게 발생한 건이 있었다"고 설명했다.

은행권에서는 고금리 환경이 이어지고 경기도 둔화하는 만큼 당분간 연체율이 더 오를 것으로 보고 있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통화 긴축 지속, 경기 둔화, 환율 변동성 증가, 코로나19 대유행 기저효과 등 대내외적 요인으로 인한 경기 불확실성으로 한계 차주 부실이 증가하고 있다"고 밝혔다.

다른 은행 관계자도 "올해 초부터 중소법인 연체율이 늘기 시작하다가 최근에는 개인사업자·가계 연체도 늘고 있다"며 "중소기업 연체는 특정 기업이나 업종이 아니라 전반적으로 늘어나는 추세"라고 설명했다.

건전성 관리를 위해 은행들은 위험 관리 강화에 나서고 있다.

은행 관계자는 "지속적 연체율 상승이 예상됨에 따라 한계기업 대상 업권별 현황, 유동성 상황을 고려한 위험 관리에 중점을 둘 것"이라며 "자산건전성 악화에 대비해 충당금 적립, 취약 차주 지원을 위한 다각적 연착륙 지원 프로그램을 검토해 충분한 손실 흡수 능력을 갖출 것"이라고 밝혔다.

금투업계 관계자는 “최근 주식시장이 미국의 긴축 기조와 강달러, 전쟁 여파 등으로 약세를 보이는 가운데 그 대안으로 금융주에 대한 관심이 커지는 상황”이라며, “고배당을 노리는 것도 좋지만 자칫 차주 부실 확대 등에 따른 대손충당금 적립 확대 등의 이슈가 과도하지 않은지 추이를 지켜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스트레이트뉴스 장석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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