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간은행 최초의 여성 은행장…여성 리더십의 대표주자
성공적 소비자금융 철수로 연임…기업금융 중심 재편 성공 기대감

오는 27일 이사회와 주총을 거쳐 임기 2기 시작 예정인 유명순 한국씨티은행장. 한국씨티은행 제공.
오는 27일 이사회와 주총을 거쳐 임기 2기 시작 예정인 유명순 한국씨티은행장. 한국씨티은행 제공.

금융회사는 세련된 이미지와는 별개로 유독 여성들에게 두터운 유리천장이 드리워져 있다. 고객의 자산을 책임지는 일을 여성이 맡는 것에 대한 편견 때문이다. 그런 관점에서 여성이 금융회사 임원이 되는 것은 말 그대로 ‘기사감’이다. 하지만 금융회사가 ESG경영을 외치며 서서히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다. 사회적(Social) 이슈에 대한 관심 제고의 과정에서 성(Gender)에 무관한 공평한 기회의 장이 열리자 금융권에 C레벨 여성들이 늘고 있다. 그 선구자들을 따라가본다.<편집자 주>

오는 27일 열리는 한국씨티은행 이사회와 주주총회를 거치면 유명순 행장의 임기 2기가 시작된다. 지난달 12일 씨티은행 임원후보추천위원회는 차기 행장에 유 행장을 단독 추천했다.

이른바 주인없는 곳으로 치부되는 국내 금융지주와 달리 외국계 은행들의 지배구조는 명쾌하다. 한국 땅에서 영업을 하니 금융당국과 조율이 필요한 건 당연하지만 이른바 낙하산 논란으로부터 비교적 자유롭다. 회사의 이익에 부합하는 실력 있는 사람을 추천하겠다는데 시비거리가 없는 셈이다. 그런 관점에서 이번 유 행장의 유임은 3년간의 지난 임기가 성공적이었다는 방증이다.

64년생인 유 행장은 이화여대 영어교육과를 졸업하던 87년 씨티은행 기업심사부 애널리스트로 입사했다. 일하면서 서강대 경영대학원(MBA)을 졸업했다. 이후 국내대기업부 리스크매니저와 기업심사부장을 맡았다. 시작부터 기업금융 전문가로서의 길을 걸은 셈이다.

한국씨티은행은 2004년 사모펀드 칼라일이 보유하던 한미은행을 미국 씨티은행이 인수하면서 국내 씨티은행 서울지점과 합병해 탄생한 회사다.

씨티은행은 우리나라에서 1967년부터 기업금융업무를 시작했고, 한미은행은 1983년 국내 대기업들의 자본과 뱅크오브아메리카(BOA)가 만든 합작사다. 초대 은행장은 서강대 경제학과 교수 출신으로 나중에 재무부장관과 경제부총리까지 지낸 김만제다. 은행명 ‘한미’는 한국기업과 미국기업이 힘을 합쳐졌다는 뜻에서 나왔다. 이후 BOA의 지분이 줄고 사모펀드에 넘어간 후 씨티은행과 합쳐진 것이 현재의 한국씨티은행이다.

다른 업종도 마찬가지지만 글로벌 기업이 한국에 들어와 성공한 사례는 많지 않다. 글로벌 유통체인이 한국에서 이마트 등과의 경쟁에서 백기를 들고 나간 일 등은 유명하다. 그만큼 한국 시장이 만만치 않고, 고객의 취향도 까다롭다. 더군다나 당국의 통제하에 있는 1금융권 은행의 경우 막강한 경쟁자들과 싸워 소매금융에서 힘을 발휘하기는 더욱 어렵다. 자연스레 기업금융으로 좀더 무게중심이 이동하고 전통적으로 기업금융을 맡았던 전문가들이 한국씨티은행장을 맡았던 이유도 거기에 있다.

영어라는 무기와 분석 능력, 리스크관리와 영업력을 두루 갖춘 유 행장이 한국씨티은행 최초이자 민간은행 최초의 여성 행장이 된 것은 그런 관점에서 자연스럽다. 유 행장은 3년 전 정식 행장 취임을 앞두고 은행장 대행을 맡았다. 전임 박진회 은행장이 한번 연임 이후 2연임 도전을 고사하면서 생긴 일이다.

한국씨티은행은 이미 박 행장 시절 줄어드는 이자수익을 고려, 한때 133개이던 지점을 43개까지 줄이는 등 개인금융부문의 외형을 줄이는 대신 WM센터로 통합하는 작업을 이어갔다. 신임 유 행장에게 주어진 임무는 이를 넘어서 아예 개인금융부문을 철수하는 본사의 결정을 이행하는 일이었다.

당연히 노조의 반발이 있을 수 밖에 없고, 사업부문 철수에 따른 비즈니스 구조를 지속가능하게 바꾸는 일이 필요하다. 아직 청사진을 제시한 수준에 불과하지만 1조원이 넘는 퇴직금을 집행하고 7960억원의 적자를 기록했던 2021년을 지나 2022년 1460억원의 당기순이익으로 다시 흑자전환하며 그룹의 신임을 받은 결과가 이번 연임 결정으로 나타났다.

한국씨티은행의 소매금융 철수는 비단 한국만의 이슈는 아니다. 씨티그룹은 2021년 아시아 국가들을 중심으로 13개국에서 소매금융 철수를 선언했다. 한국씨티은행 WM센터에서 근무했던 인력들이 주요 증권사 WM센터로 간판만 바꾸고 통째로 회사를 옮기는 일들도 생겼다. 글로벌 은행의 노하우에 대한 가치, 씨티라는 이름을 보고 이용했던 고액자산가 자산의 흡수 등을 기대한 증권사들의 러브콜 덕분이다.

한국씨티은행 임추위는 유 행장의 유임 추천 이유로 “임기 동안 수익 모델의 전략적 재편이라는 어려운 과제를 성공적으로 달성해 소비자금융 단계적 폐지를 실행하는 동시에 기업금융에 집중해 역량을 강화한 점, 수익 모델의 전략적 재편 효과가 본격적으로 나타나기 시작한 올해 이후 주요 재무지표가 가시적으로 개선되고 있는 점 등을 높이 평가했다”고 밝혔다.

이어 “연임 임기 동안 은행을 씨티그룹 내 핵심 사업으로 도약시키겠다는 명확한 비전 하에 중장기 전략 목표를 제시함으로써 앞으로의 실적 또한 기대할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지나온 시간에 대한 평가와 미래에 대한 기대가 더해진 결정인 셈이다.

한국씨티은행 관계자는 “유 행장은 본인이 여성이라는 점을 십분 강조하며 오히려 여성들이 적극적으로 업무에 임해서 자신의 권리를 찾을 것을 독려하는 편”이라며, “ESG관점에서 본인 스스로가 본이 되어 그 역할 확대에 일조하는 자리에 빠지지 않는다”고 말했다.

실제 한국씨티은행 내부에는 여성 인재 발굴과 육성을 위한 인재관리 프로세스, 멘토링 및 코칭 프로그램등이 체계화돼 있다는 설명이다. 또 일정 직급에 오르는 단계마다 여성 리더십 연수도 필수 코스다. 글로벌 기업 답게 다양성위원회, ESG협의회 등도 설치돼 있다.

작년 말 열린 세계여성이사협회 창립 6주년 포럼에서 유 행장은 “ESG 중심의 사회로 나아가는 변화의 흐름에서 여성의 경영참여 확대와 우수한 여성 인재 양성을 위해 지속적이고 변함없는 경영진의 의지와 노력, 그리고 이를 통한 전사적인 문화로의 정착이 중요하다”며 여성의 사회 참여에 대한 자신의 소신을 밝힌 바 있다.

한 시중은행 기업금융부문 부행장은 “한국씨티은행이 기업금융 부문에 가진 장점이 분명하고 유 행장 스스로도 능력이 있는 것은 검증이 됐다”며, “다만 현재 기업들의 성장동력이 희미해지는 상황에서 소매금융과의 균형없이 기업금융만으로 위기를 극복하는 것은 또다른 도전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스트레이트뉴스 장석진 기자] 

저작권자 © 스트레이트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