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년 1개월 만 부회장 승진.. 승계 작업 빨라져
신사업 중심 성과 시급.. 지분 확보도 과제로

정기선 HD현대 부회장. HD현대 제공
정기선 HD현대 부회장. HD현대 제공

  

HD현대 정기선 사장이 부회장으로 승진하면서, 전문경영인 체제였던 HD현대가 드디어 변화에 나섰다는 반응이 나온다. 권오갑 회장이 연임에 성공하며 3년 가량 시간이 남은 가운데 이 기간 동안 승계작업이 가속화될 것으로 예상된다.  

HD현대 오너가(家) 3세인 정기선 HD현대 사장은 최근 정기 임원인사에서 부회장으로 전격 승진했다. 2021년 10월 사장직에 오른 지 2년 1개월 만이다.

이어 정 부회장과 인수합병(M&A)이나 투자 등 신사업 전략을 담당했던 경영기획실 소속의 강석주 상무가 전무로 승진하고, 정 부회장과 경영기획실에서 함께 일한 김완수 부사장도 HD현대로보틱스 대표이사로 선임되는 등 정 부회장의 측근들이 주요 자리를 채웠다.

정 부회장은 1982년생으로, 재계에서 80년대생 대표적인 오너로 통한다. 연세대학교와 미국 스탠퍼드대 경영대학원에서 공부한 뒤 2013년(당시 현대중공업) 경영기획팀 수석부장으로 입사해 경영지원실장, 부사장, 사장 등을 역임하며 그룹을 이끄는 중추적인 역할을 해왔다.  

올해 초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세계 IT·가전 전시회 'CES 2023'에서는 바다에 대한 관점과 활용 방식의 근본적 변화를 기반으로 하는 '오션 트랜스포메이션'(Ocean Transformation)을 그룹의 미래전략으로 제시하며 그룹의 이미지 변신에 나서 이목을 집중시켰다.

현대중공업그룹에서 HD현대로 사명이 바뀐 것도 정 부회장이 사장으로 승진한 뒤 얼마 안 된 지난해 초다. 전통적인 조선 중심 사업 체제에서 친환경 조선 및 해양, 로봇, 수소, 신재생에너지, 인공지능(AI) 등으로 사업 영역을 넓히려는 포석으로 읽힌다. 업계에서는 이번 정 부회장의 승진으로 사업 재편과 신사업 추진에 더욱 속도가 붙을 것이란 시각이 대체적이다. 

정 부회장은 HD현대를 '쉽 빌더(조선사)'를 넘어 '퓨처 빌더(미래 건설자)'로 거듭나겠다는 비전을 세웠다. 이에 따라 ▲아비커스(자율운항전문 HD현대그룹 자회사)의 자율운항기술 ▲액화수소운반 및 추진시스템 기술 ▲지능형 로보틱스 및 솔루션 기술 등 3대 핵심사업을 중심으로 포트폴리오를 재편했다. 올해 그룹의 성장 기반을 구축하고 미래 먹거리를 확보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특히 2020년 사내벤처 1호로 시작한 아비커스는 정 부회장이 자율운항·항해시스템을 개발하는 전문 계열사로 키워낸 곳이다. 현재 그룹 내에서 큰 지원을 받고 있으며, 지난해 8월 세계 최초로 자율운항 2단계 솔루션 '하이나스 2.0'을 상용화하는 등 성과를 내고 있다.

이 밖에 정 부회장은 올해 4차례에 걸쳐 윤석열 대통령의 해외 순방에 경제 사절단으로 참가하며 해외 사업 영토 확장에도 공을 들였다. 지난달 초에는 경기 성남시 HD현대 글로벌R&D센터(GRC)에서 열린 전동화센터 개소식에 참가해 그룹 성장 동력을 챙기는 모습을 보이는 등 경영 전면에 나서고 있다.

다만 경영 측면에서는 승계와 세대교체가 착실히 이뤄지고 있으나, 정 부회장에게는 '낮은 지분율'이 과제로 남아있다. 많은 지분을 확보하기 위한 큰 재원 마련이 필요한 상황이다.

정 부회장은 지배구조 최정점인 HD현대 지분 5.26%만을 보유 중으로, HD한국조선해양, HD현대건설기계, HD현대일렉트릭 지분도 일부 보유하고 있지만 1%에도 못 미치는 수준이다. 부친인 정몽준 아산재단 이사장이 HD현대 지분 26.6%를 보유하고 있어 해당 지분을 상속·증여받기 위해서는 막대한 자금이 필요하다.

이에 정 부회장은 권오갑 회장의 남은 임기동안 신사업을 확실히 주도하며 그룹의 빠른 성장을 이끌어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다. 실제 글로벌 경기 침체로 올해 3분기 기준 HD현대의 매출은 13조7232억원, 영업이익은 6677억원을 기록했다. 매출과 영업이익 모두 전년 동기 대비 각각 20.6%, 37.7% 감소한 규모다.

또 정 부회장이 사장이던 시절 HD현대를 받쳐주던 4인의 부회장단이 올해를 기점으로 모두 용퇴한 만큼, 실적 관리 등 그룹 전반을 상세히 챙겨야 하는 역할도 주어졌다. 그동안 HD현대의 주력 사업인 조선 부문을 이끌었던 가삼현 HD한국조선해양 부회장과 한영석 HD현대중공업 부회장은 이달까지 활동한 뒤 내년부터 자문역을 맡는다.

다만 최근 조선업이 호황기에 접어들면서 HD현대 조선사들이 업계 1위를 달리고 있고 수소, 자율운항, 로봇 등 신사업에서 초석을 잘 다지고 있어 정 부회장의 신사업 추진 역량이 그룹 지배권 확보를 앞당길 수 있을 것이란 긍정적인 시각도 나온다.

[스트레이트뉴스 함영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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