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 마지막으로 4대그룹 사장단 인사 마무리
안정 속 '강한 변화'.. 인재 선임으로 위기 타개

(왼쪽 위부터 시계방향으로)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 최태원 SK그룹 회장, 구광모 LG그룹 회장, 정의선 현대자동차그룹 회장. 각 사 제공
(왼쪽 위부터 시계방향으로)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 최태원 SK그룹 회장, 구광모 LG그룹 회장, 정의선 현대자동차그룹 회장. 각 사 제공

전세계적 경기 침체와 경영환경 불확실성이 내년에 더욱 심화될 것으로 예상되는 가운데 4대그룹이 내년 사업을 이끌 수장 선임을 모두 마쳤다. 세대교체를 통한 위기극복에 정확히 초점을 맞춘 모습이다.

8일 재계에 따르면 전날 SK그룹을 끝으로 삼성전자, 현대자동차그룹, LG그룹 등 4대그룹의 2024년 정기인사가 마무리됐다. 현대차그룹만이 이달 중순 후속 인사만 남겨두고 있다.

이번 4대그룹 인사의 특징은 경영 위기 극복을 위한 미래 준비와 사업 추진 동력 확보를 위한 새 인재들의 전면 배치다. 구체적으로 삼성은 '미래 먹거리 발굴', SK '수장 전격 교체', 현대차 '수익성 확보', LG '젊은 인재 통한 쇄신' 등으로 요약된다.

먼저 지난달 27일 임원인사를 진행한 삼성전자는 디바이스경험(DX) 부문을 총괄하는 한종희 부회장과 디바이스솔루션(DS) 부문을 이끄는 경계현 사장의 '투톱(2 top)' 체제를 유지하기로 했다.

그러면서 DX부문 영상디스플레이사업부 부사업부장이던 용석우 부사장을 사장으로 승진시켜 사업부장 자리에 앉혔다. 그룹의 고민거리인 TV사업 부진을 타개하기 위해 젊은 인재를 전면 배치하기로 한 것이다.

또 김원경 DX부문 경영지원실 글로벌 퍼블릭 어페어(GPA) 팀장을 사장으로 승진시키고 조직을 사장(실장)급으로 격상했다. 소속도 DX부문 산하에서 벗어나도록 해 삼성전자 전반의 글로벌 대외협력 업무를 맡게 했다. 미중 갈등과 주요국의 자국우선주의 정책 강화로 글로벌 대외협력 역량 강화가 절실해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에 삼성의 이번 인사는 전쟁 등 지정학적 위기에 따른 공급망 교란, 글로벌 경기 악화에 따른 수요시장 둔화 등 불확실성이 증대되는 경영환경 속에서 투톱 체제를 유지해 안정을 도모하는 한편, 능력있는 새롭고 젊은 인재들을 전면 배치해 변화도 주겠다는 의지로 풀이된다.

미래 준비도 착실히 진행한다. 부회장급 전담조직인 '미래사업기획단'을 신설해 삼성의 10년 후를 책임질 미래 먹거리 발굴을 담당하도록 했다. 삼성전자 메모리 반도체와 배터리 사업 성장의 주역인 전영현 삼성SDI 이사회 의장(부회장)이 첫 미래사업기획단장을 맡았다. 이곳을 통해 2017년 하만 이후 이뤄질 새로운 인수합병(M&A)에 대한 기대도 커지고 있다.

SK그룹은 4대 그룹 중 가장 마지막으로 인사를 단행하면서 4대그룹 중 가장 큰 폭의 경영진 교체를 실시해 주목받았다. 60대가 된 주요 부회장 4명을 2선으로 물러나도록 하고 새로운 50대 수장들과 젊은 리더들을 전진 배치했다.

그룹 내 최고협의기구인 수펙스추구협의회 의장은 최태원 회장의 사촌동생인 최창원 SK디스커버리 부회장이 맡게 됐다. 최 신임 의장은 각 사의 이사회 중심 경영과 그룹 고유의 '따로 또 같이' 경영 문화를 발전시킬 적임자라는 평가다.

이어 그룹 지주회사인 SK㈜ 대표이사는 장용호 SK실트론 사장으로 교체했다. 장 신임 대표이사는 그간 SK수펙스추구협의회와 SK㈜로 분산돼 있던 투자 기능과 조직을 하나로 합쳐 중복됐던 투자 기능을 일원화하고 효율화하는 역할을 수행하게 됐다. 경기 침체가 심화되면서 투자에 대해 신중해지고 있는 그룹의 분위기가 반영된 모습이다.

SK이노베이션의 수장은 박상규 SK엔무브 사장이 맡게 됐다. 박 신임 대표이사는 SK㈜에서 투자 관련 업무를 담당한 바 있고 윤활유 업체 SK엔무브 사장 시절 전기차 시대에 걸맞은 전력효율화 포트폴리오를 구축하는 등 산업 환경 변화에 대한 대응능력이 뛰어나다는 평가다.

특히 SK가 내년 흑자전환을 위해 가장 공 들이고 있는 SK온도 새로운 수장을 맞이하게 됐다. 지난해 3월 SK하이닉스 대표이사를 마지막으로 현직에서 물러났던 이석희 사장이 복귀해 SK온을 이끌게 된 것이다. 이 사장은 제조업 기술 전문가로, 무엇보다 수익성 확보가 중요한 상황인 SK온의 수율 문제를 크게 개선시킬 것으로 기대받고 있다.

박정호 SK하이닉스 부회장도 대표이사 자리를 내놓고 부회장 직함만 남기게 됐다. 박 부회장 퇴진으로 SK하이닉스는 곽노정 사장 단독 대표이사 체제가 됐다.

최근 최 회장이 '서든데스(돌연사)'를 강조하며 위기 대응을 위한 쇄신에 나설 것을 예고한대로 대대적인 세대교체가 이뤄진 모습이다. '젊은 피'에게 미래 대비를 맡겨서 변화를 꾀하고 이전 경영진은 2선으로 후퇴하되 조력자 역할을 담당하게 해 안정도 도모한다는 계획이다.

현대차그룹은 지난달 17일 4대그룹 중 가장 먼저 인사를 실시했다. 아직 부사장급 이하 후속 인사가 남았지만 현대자동차와 기아 다음으로 그룹 핵심 계열사인 현대모비스와 현대제철의 수장을 교체하는 '투 포인트' 인사를 단행하며 사장급 인사는 소폭 변화로 마쳤다.

현대모비스 대표이사에는 이규석 현대차·기아 구매본부장이, 현대제철 대표이사에는 서강현 현대차 기획재경본부장이 각각 선임되면서 눈길을 끌었다.

현대모비스 수장에 R&D(연구개발) 대신 '구매 전문가'를, 현대제철 수장에 철강맨 대신 '재무통'을 신임 사장으로 앉히면서 '수익성 확보'에 집중한 것으로 풀이된다. 특히 현대제철은 올해 수익성 악화가 문제로 지적돼 왔으며, 전기차 시대로 접어들며 그룹 내 중요성이 낮아지는 게 아니냐는 관측도 나왔다.

그러나 새 인재를 전격 배치하면서 논란을 잠재우고 내년 대비에 분주한 모습이 나타나고 있다. 현대제철 새 수장이 된 서강현 신임 대표이사는 앞서 현대차 회계관리실장, 경영관리실장, 해외관리실장, 현대제철 재경본부장, 현대차 기획재경본부장 등을 거쳐오모 그룹 내 대표적 재무 전문가로 평가받고 있다.

특히 현대차 CFO(최고재무책임자) 재임 기간에는 매출·영업이익 등에서 최대 실적을 달성했고 2021년부터는 현대차의 기획 부문도 겸임하며 중장기 방향 수립 등 핵심 역할을 수행한 인물이기에 현대제철을 향한 기대가 높아지고 있다.

LG그룹은 지난달 22일부터 사흘에 걸쳐 주요 계열사 인사를 단행했다. 인사폭 자체는 크지 않았지만, 고 구본무 선대회장 시절부터 중책을 맡아온 6인 부회장들이 모두 경영 일선에서 물러나게 되면서 이목이 집중됐다.

이번 인사에서 권영수 LG에너지솔루션 부회장이 용퇴하면서 2018년 구광모 회장 취임 이후 5년 만에 6인 부회장(권영수·박진수·조성진·차석용·한상범·하현회)이 모두 떠나게 된 것이다. 대신 구 회장이 재임 기간동안 직접 선출한 2인의 부회장(신학철·권봉석)만이 남게 되면서 진정한 구 회장 시대가 도래했다는 평가도 나온다.

구 회장이 이전 세대 인물들과는 작별하고 한층 젊어진 경영진으로 세대교체를 단행해 지속성장을 위한 체제를 확립한 것으로 풀이된다. 그간 '선택과 집중'을 앞세우며 공격적인 경영 행보를 보였던 만큼 그 속도가 한층 더 가속화될 가능성도 높다.

권 부회장이 나간 LG에너지솔루션은 김동명 자동차전지사업부장 사장이 이끌게 됐다. 김 사장은 배터리 연구센터로 입사해 R&D, 상품기획, 사업부장 등 배터리 사업 전반에 걸친 직무를 맡아오며 '배터리 전문가'라는 평가를 받고 있는 인물로, 배터리 사업 1위를 달성할 것으로 기대받고 있다.

TV사업 부진을 타개하기 위해 LG디스플레이 수장의 자리에 오른 정철동 사장은 LG이노텍 대표 시절 이뤄낸 성과를 LG디스플레이에서도 보여줘야 하는 임무를 맡게 됐다. LCD(액정표시장치) 사업 사양화로 위기에 빠진 LG디스플레이의 사업 재편이 우선 과제다.

정 사장은 앞서 LG이노텍 대표일 때 수년간 적자를 지속하던 LED(발광다이오드) 사업을 과감히 접고 카메라모듈 사업을 강화해 주력 사업으로 성장시키는 한편 FC-BGA 등 신사업의 기틀을 잡는 성과를 낸 인물이다.

LG이노텍의 수장은 70년생 젊은 인재인 문혁수 부사장이 맡게 됐다. 문 부사장은 광학솔루션 개발실장, 연구소장 등을 두루 역임한 광학 분야 전문가다. LG이노텍의 매출의 80%를 차지할 정도로 중요해진 카메라 모듈 분야에서 세계 1위 자리를 더욱 굳히겠다는 의지가 반영된 인사로 풀이된다.

재계 관계자는 "경영 불확실성이 커지고 있는 만큼 4대그룹이 기존 사업 살리기와 선두 자리 지키기에 집중하고 신사업 발굴에 공을 들이고 있다"며 "이번 인사의 폭이 큰 편은 아니지만 그룹의 성장을 위해 오래된 것을 버리고 새로운 것을 펼치는 '제구포신'(除舊布新)의 정신으로 세대교체를 착실히 진행해 확실한 변화를 준 모습"이라고 말했다.  

[스트레이트뉴스 함영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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