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적 채찍질 나선 SK, 'BBC' 앞세워 위기 타개 특명
그룹 기대감 속 어두운 전망도.. 성장중심 경영 사활

서울 종로구에 위치한 SK그룹 본사. 연합뉴스
서울 종로구에 위치한 SK그룹 본사. 연합뉴스

 

지난해 하반기부터 '서든데스(돌연사)'를 강조하며 위기 돌파에 주력하고 있는 SK그룹이 최근 BBC(배터리·바이오·반도체) 사업을 본궤도에 올리기 위해 분주한 모습이다. 글로벌 경기 침체가 장기화되고 있어 핵심 먹거리인 BBC 사업 성과가 무엇보다 중요한 시점이기 때문이다.

6일 재계에 따르면 SK그룹의 반도체 사업을 담당하고 있는 SK하이닉스는 고대역폭메모리(HBM) 설비투자를 올해 2배 확대할 계획이다. 생성형 인공지능(AI) 시장이 폭발적으로 성장하면서 엔비디아, AMD 등 글로벌 고객사로부터 HBM 주문이 밀려들자 생산능력을 대폭 확대하기 위한 것이다.

SK하이닉스는 지난해 4분기 예상보다 빠르게 흑자전환에 성공하면서 올해 성장세에 대한 기대가 더욱 높아지고 있다. AI 서버와 모바일향 제품 수요가 늘고 평균판매단가(ASP)가 상승하는 등 메모리반도체를 중심으로 시장 환경이 개선되자 반도체 업황 회복이 점차 가시화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실제로 SK하이닉스는 주력제품인 D램 DDR5와 4세대 고대역폭메모리인 HBM3 매출이 전년(2022년) 대비 각각 4배, 5배 이상으로 증가했다. 업황 부진으로 재작년 하반기부터 적자를 지속해오던 SK하이닉스가 반도체 봄을 타고 본격 반등에 돌입하면서 그룹의 기대감도 커지고 있다.

올해 들어 SK는 배터리 사업 성장세에도 집중하고 있다. 이날 그룹 핵심 계열사인 SK이노베이션이 지난해 연간 실적과 4분기 성적표를 공개했는데, 특히 배터리 사업 부문이 개선세를 보이면서 역대 최대 실적을 낸 점이 주목 받았다.

SK이노베이션의 배터리 자회사 SK온은 작년 한해 동안 영업손실 5818억원을 기록했다. 전년 대비 적자폭을 45.8% 줄인 수치다. 4분기로만 놓고 보면 영업손실은 186억원 수준으로, 1분기(3449억원)에 이어 2분기(1322억원), 3분기(861억원)로 가면서 적자폭을 줄여오더니 4분기에 대폭 영업손실이 감소했다.

SK온은 올해 북미 등에 7조5000억원을 추가 투자하면서 시장 우위를 선점하기 위해 속도를 내고 있으며 흑자 달성 시점은 '하반기'로 잡았다. 전기차 수요 둔화로 전세계적으로 배터리 사업이 흔들리고 있는 점을 고려해 손익분기점을 최대한 맞춘다는 목표다. 글로벌 완성차 기업과의 프로젝트 추진 등 수주 확대에도 힘쓸 계획이다.

SK는 바이오 사업에도 사활을 걸고 있다.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제약·바이오 계열사의 정리를 추진 중이며 수익성 낮은 사업을 버리고 '그린바이오'에 집중한다는 방침이다. 이를 통해 SK케미칼의 부진 사업을 정리 중이며, SK바이오팜과 SK팜테코 등을 통해 신약 개발과 CDMO(위탁개발생산) 사업에 속도를 내고 있다.

특히 SK바이오팜은 뇌전증 치료제 '세노바메이트'의 판매 호조에 힘입어 지난해 4분기 흑자 전환에 성공하기도 했다. SK바이오팜 관계자는 "기존의 흑자 전환은 라이선스 등 일회성 수익에 힘입은 것이었다"며 "이번 흑자 전환은 판매 매출의 신장을 통해 달성한 것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고 말했다.

다만 SK그룹을 향한 우려의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반도체 분야에서 D램과 달리 낸드플래시 회복이 더뎌지면서 올해 SK하이닉스의 실적 개선을 바라보는 글로벌 신용평가사들의 전망이 엇갈리고 있는 것. 

현재 낸드플래시 시장 분위기는 D램과 다른 상황으로, D램이 회복세를 보이고 있는 반면 낸드플래시는 여전히 공급 과잉이 이어지면서 업황 개선이 늦어지고 있다.

경기 이천시 SK하이닉스 본사 앞에 있는 신호등에 빨간불이 커져 있다. 연합뉴스
경기 이천시 SK하이닉스 본사 앞에 있는 신호등에 빨간불이 커져 있다. 연합뉴스

 

한국기업평가 연구원은 SK하이닉스에 대해 "기술경쟁력 유지를 위한 선단공정 전환, 고부가제품 수요 대응 등으로 제조사 전반의 케팩스는 지난해 대비 늘어날 것"이라고 짚었다. 다만 "여전히 선단공정 설비 확장은 제한적이고 미국의 첨단사업 보호 육성 기조 유지에 따른 추가적인 제재 가능성이 상존하고 있다"며 "미국의 중국 반도체산업에 대한 규제 정책은 중국 내 생산비중이 높은 국내 메모리산업의 잠재적 위험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고 진단했다.

글로벌 신용사 무디스는 SK하이닉스에 대해 '부정적' 등급 전망을 지속했다. SK하이닉스가 2018년까지만 해도 현금이 차입금보다 많은 순현금 상태였으나 메모리반도체 업황 부진과 함께 M&A(인수합병)에 조 단위 자금을 투입하면서 차입금이 크게 늘어난 상태임을 감안한 것으로 풀이된다. SK하이닉스는 2021년 인텔 낸드플래시 사업부(현 솔리다임), 2022년 키파운드리 인수로 인해 지난해 말 기준 순차입금은 23조원을 넘어섰다.

배터리 사업과 바이오 사업도 안심할 순 없는 상황이다. 배터리 사업은 전기차 수요가 둔화되고 있는데다 미국 대통령 선거를 앞두며 정책 변화 등을 주시해야하는 불안정한 형국이다. 바이오 사업 역시 코로나19 팬데믹을 지나면서 백신 위주로 성장해 온 SK바이오사이언스 등이 실적 부진을 겪고 있어 새로운 돌파구가 필요한 시점이다.

특히 SK온은 지난해 8조원 가량의 자본적지출을 한 것으로 추정되는데, 대규모 투자는 차입 확대로 이어져 이자비용 증가가 발생하고 있다. 고금리 시대와 맞물려 재무 부담이 빠르게 커지고 있는 실정이다. SK온의 총 차입금은 지난해 3분기 말 기준 14조5614억원이며 현금성 자산을 제외한 순차입금도 10조원을 넘겼다. 노우호 메리츠증권 연구원은 "고난의 행군이 예상된다"며 SK온이 올해 역시 흑자 전환에 실패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런 가운데 SK그룹은 위기를 조기 타개하기 위해 '해현경장(解弦更張)' 경영을 본격화하고 있다. 지난달 초 토요일에 모여 현안을 논의하는 '전략글로벌위원회의'를 20년 만에 부활하기로 결정했으며 그룹 최고 의사결정협의기구인 수펙스추구협의회를 중심으로 '일하는 분위기'를 조성 중이다. SK그룹을 위기에서 끌어내기 위해 올해 본격 선임된 최창원 수펙스 의장은 SK서린빌딩으로 오전 6시 전후 출근해 업무 파악에 매진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스트레이트뉴스 함영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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