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C, 대한항공-아시아나 기업결합 조건부 승인
美 심사 앞두고 전망 엇갈려.. 해결 과제도 '첩첩'

대한항공 보잉 737-8. 대한항공 제공
대한항공 보잉 737-8. 대한항공 제공

유럽연합(EU) 집행위원회가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의 합병을 조건부 승인하면서 한진그룹 조원태 회장의 숙원이던 '메가 캐리어(초대형 항공사)' 탄생이 가시화되고 있다.

하지만 14일 업계 내부에서는 이러한 기대감과 달리 인수 주체인 대한항공을 향한 우려의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EU 내 기업결합 승인을 담당하는 유럽집행위원회(EC)는 지난 13일(현지시간)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의 기업결합 심사를 조건부 승인했다. 대한항공의 시정조치안 이행을 전제로 기업결합을 받아들인 것이다. EC는 대한항공이 연말까지 시정조치안을 이행하면 최종 통합 승인을 내준다는 방침이다.

이에 따라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 합병은 14개 필수 신고국 중 미국 단 한 곳의 승인 만을 남겨두게 됐다. 미국은 상반기 내로 기업결합 심사를 진행하고 결과를 통보할 것으로 전망된다.

대한항공 관계자는 "미국에서도 기업결합 승인을 위한 절차가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다"며 "올해 상반기 안으로 필요 절차를 모두 마무리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업계에서는 당초 난항이 예상됐던 유럽 심사를 통과하고 미국 한 곳만을 남겨두게 되면서 '메가 캐리어' 탄생이 가속화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미국 승인까지 받아내면 대한항공은 아시아나항공 지분 63%를 인수하는 절차를 시작하며 지분 인수 완료 후 2년간 분리 운영 및 통합 준비를 거쳐 대한항공의 이름 아래 두 항공사는 하나가 된다.

조 회장은 2020년 11월 아시아나항공 인수 추진을 공식화한 이후 매년 신년사를 통해 합병에 대한 의지를 다져왔다. 그는 양사 통합을 두고 "대한민국 하늘을 책임지고, 항공 산업의 새 지평을 여는 '시대적 사명'"이라고 강조해 왔다.

그러나 조 회장의 숙원인 메가 캐리어 탄생에 앞서 대한항공 앞에 적잖은 과제가 제기되면서 우려도 높아지고 있는 상황이다.

당장 화물사업 매각 방안을 마련해야하는 동시에 아시아나항공측 인력 관리, 통합 저비용항공사 사업구조 재편, 반납 노선 확충 등 다양한 문제를 해결해야하는 처치다. 일각에선 국제선을 독점함에 따라 항공 요금이 더 오르는 게 아니냐는 지적도 나오면서 이에 대한 해명도 필요한 시점이다.

특히 앞서 EC의 승인을 받기 위해 화물 매각과 4개 도시 슬롯(항공기 이·착륙 횟수) 이전 방안을 포함한 시정조치안을 제출한 것으로 알려지면서 미국 승인 과정에서도 추가적인 손해를 감수할 수밖에 없을 것으로 예상돼 걱정도 커지고 있다.

한진그룹 조원태 회장. 한진그룹 제공
한진그룹 조원태 회장. 한진그룹 제공

먼저 대한항공은 아시아나항공 직원들에 대한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아시아나항공 직원들이 대한항공 경영진에 요구하는 쟁점은 '고용 유지'에 대한 명확성으로 알려졌다. 애초 대한항공은 아시아나항공의 화물사업부 분리매각과 유럽 4개 노선 이관 등 EC에 제출한 시정조치안과 관련해 '고용승계 및 유지조건'을 내걸었다.

그러나 아시아나항공 직원들은 고용 유지를 어떻게 할 것인지에 대한 의문을 지속적으로 제기해 왔다. 동일 직군으로 보장이 되는 것인지 아닌지 등 구체적인 방안이 없어 불안감을 표하고 있는 것이다. 업무 연속성이 없는 인사발령 등 간접적인 구조조정을 걱정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특히 코로나19 팬데믹 이후로 알짜사업이 된 화물사업부 분리매각과 대규모 슬롯 반납 등으로 필요 인원이 줄어들면서 구조조정이 불가피하다는 의견도 제기된다.

또 EC 시정조치안 이행에 따른 아시아나항공 화물사업 분리매각 작업에 속도를 내야 하는 시점이다. 현재 화물사업 부문 인수 후보로는 제주항공과 이스타항공, 에어프레미아, 에어인천 등 국내 저비용항공사(LCC) 4곳이 거론되고 있다. 선정된 매수인에 대한 EC 승인 절차를 거쳐 거래를 종결할 수 있으며 이후에 실제 분리 매각을 추진하게 된다.

인수기업 입장에서는 5000억~7000억원에 달할 것으로 예상되는 아시아나항공 화물사업 인수 금액과 기존 아시아나항공이 가진 1조원 가량의 부채를 함께 떠안아야 하는 점이 부담이다. 화물사업이 평소 시장에 잘 나오지 않는 매물이고 연매출 1조원 규모의 알짜 사업인 만큼 인수자 찾기에는 큰 무리가 없을 것이라는 분석도 나오지만 아직까지 적극적으로 나서는 LCC는 없다.

소비자들의 우려도 불식시켜야 한다. 대한항공이 유일한 대형항공사로서 국제선을 독점함에 따라 항공 요금이 대폭 오르는 게 아니냐는 우려도 나오고 있는 탓이다.

특히 지난해 대한항공은 사상 최대 매출(14조5751억원)을 기록했지만 여객기 공급 증가에 따른 유류비, 인건비를 포함한 부대 비용 증가로 전년 대비 45% 감소한 1조5869억원의 영업이익을 기록한 바 있다. 이에 향후 운임 인상론이 고개를 들고 있는 것이다.

이에 대해 대한항공 관계자는 "항공 운임은 정부 승인을 받아야 하는 사안인 만큼 임의대로 인상할 수는 없다"고 설명했다.

'통합 LCC' 추진도 풀어야 하는 숙제다. 양사 합병 이후 대한항공의 자회사인 진에어, 아시아나항공의 자회사인 에어부산, 에어서울을 결합한 통합 LCC 출범을 앞두고 있기 때문이다. 통합 LCC가 출범하면 현재 1위인 제주항공(42대)를 앞서 총 55대 기체를 보유한 1위 LCC가 된다.

대한항공 입장에서는 2개의 FSC(대형항공사)와 3개의 LCC를 앞세워 대한항공의 시장 지배력을 강화하는 게 중요하다. 이미 다른 국가들의 승인을 받으면서 많은 노선과 슬롯을 반납했기 때문에 가지고 있는 것을 최대한 활용해야 한다. 전망 자체는 밝은 편이다. 일단 지난해 기준 5개사의 국제선 합산여객은 3335만여 명으로, 전체 여객의 48.6%를 기록했다.

김영호 삼성증권 연구원은 "아시아나항공과 대한항공의 합병이 승인되면 장거리는 물론 단거리 노선에서도 압도적인 시장 지배력을 확보할 것으로 기대되며 가격 결정권 제고에 따른 실적 개선세가 이어질 것으로 전망된다"고 설명했다. 

단 이러한 모든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관건은 미국이다. 미국이 최종 승인해야 합병도 이뤄질 수 있다. 그러나 미국의 승인 과정에서도 출혈은 불가피할 것으로 예상돼 우려가 커지고 있는 분위기다.

현재 미국 법무부(DOJ)가 대한항공과 아시아나가 운항하는 미주노선 13개 중 샌프란시스코와 호놀룰루, 뉴욕, 로스앤젤레스(LA), 시애틀 등 5개 노선에서 독점 우려를 제기하고 있어 노선 이관 등 또다시 손해가 불가피할 것이라는 예상이 나온다.

인천국제공항 계류장에 서 있는 LCC 항공기. 연합뉴스
인천국제공항 계류장에 서 있는 LCC 항공기. 연합뉴스

 

업계에서는 미국이 승인하지 않는다면 합병이 무산되는 만큼 경쟁제한에 대한 조건을 더욱 깐깐하게 판단할 가능성도 높다고 보고 있다. 실제로 지난해 일부 외신에 따르면 미국 DOJ가 양 항공사 기업결합 관련 소송을 검토하고 있다는 보도가 나오기도 했는데, 이는 그만큼 해당 사안을 꼼꼼하게 살펴보고 있다는 증거다. 아울러 최근 DOJ가 '반독점 기조'를 강화하는 중인 만큼 돌발 변수로 작용할 가능성도 나온다.

유나이티드항공과 얽힌 이해관계를 풀어가는 것도 난항이 될 전망이다. 유나이티드항공은 합병으로 인해 아시아나항공이 같은 항공 동맹 '스타얼라이언스'에서 빠지는 것에 대해 강하게 반감을 드러내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이재혁 이베스트투자증권 연구원은 "대한항공·아시아나항공의 DOJ 심사를 앞둔 현 시점에서 항공사 M&A에 대한 미 경쟁당국 및 사법부의 비우호적인 분위기는 다소 부담 요인"이라면서도 "미국은 5단계 항공자유화 지역으로 국제선 여객 경쟁환경 침해에 대한 우려는 다른 국가에 비해 제한적"이라고 말했다. 이어 "현재 위험은 항공동맹 간 경쟁구도와 관련해 유나이티드항공의 합병 저지 의지"라고 분석했다.

이렇게 미국이란는 마지막 관문을 남기고 있는 가운데 대한항공의 고심은 더욱 깊어질 것으로 보인다. 업계 관계자는 "조 회장의 숙원이었던 메가 캐리어 완성이 코 앞으로 다가오긴 했으나 미국의 승인이 까다로울 것으로 예상되면서 불확실성은 높은 편"이라며 "합병 성사 시에도 해결해야 할 과제가 산적해 대한항공 경영 정상화에는 다소 시간이 소요될 전망"이라고 말했다.

한편 대한항공은 최근 2년간 미국 정관계 로비활동에만 57만 달러(7억6300만원)의 자금을 쏟으며 아시아나항공과의 합병 승인을 얻는 데 공을 들이고 있다. 여기에 미국에만 법률자문료 등의 명목으로 100억원 이상 투입한 것으로 알려졌다.

현재 미국 경쟁당국에 ▲정부의 항공산업 구조조정 및 고용유지를 위한 노력에 당사가 동참해 진행했다는 점 ▲한-미 노선의 승객이 대다수 한국인이라는 점 ▲한국 공정위에서 이미 강력한 시정조치를 부과했다는 점 ▲경쟁제한이 우려되는 노선이 신규 항공사의 진입과 증편이 이뤄지고 있다는 점 등을 적극 설득하고 있는 상황이다.

[스트레이트뉴스 함영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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