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사청, 27일 '기밀유출' 입찰 제한 심의
특수선 사업부 운명에 지역사회도 '요동'

HD현대중공업 울산조선소 근로자들. 사진 HD현대중공업
HD현대중공업 울산조선소 근로자들. 사진 HD현대중공업

 

최근 HD현대중공업이 특수선 사업과 관련해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8조원 규모의 한국형 차기 구축함(KDDX) 사업 입찰을 앞두고 방위사업청으로부터 입찰 제한을 받을 위기에 처했기 때문이다. 나아가 HD현대중공업의 위기가 지역 간 분쟁으로도 번지는 모습을 보여 주목된다.

26일 조선업계에 따르면 HD현대중공업의 KDDX 사업 입찰 가능 여부 결정이 임박했다. 방사청은 오는 27일 계약심의위원회를 열어 HD현대중공업의 입찰 제한 여부를 심사할 예정이다.

KDDX 사업은 '미니 이지스함'을 국산화하는 것으로, 2030년까지 6000t급 차세대 주력 함정 6척을 구축하는 프로젝트다. '개념설계→기본설계→상세설계 및 초도함 건조→후속함 건조순'으로 진행되며 현재 상세설계 및 초도함 건조 단계 수주를 남겨두고 있다.

여기에는 개발비 1조8000억원과 건조비 6조원 등 총 7조8000억원이 투입되면서 특수선 사업을 적극적으로 키우고 있는 HD현대중공업과 한화오션이 수주 자리를 놓고 치열한 경쟁을 펼치고 있다.

앞서 2012년 대우조선해양(현 한화오션)이 개념설계를 진행하고 2020년에는 현대중공업(현 HD현대중공업)이 기본설계 계약을 따내는 등 각각 초기 사업을 맡아서 진행한 바 있다. 양사 모두 앞선 계약에 이어 이번 수주사업까지 따내고자 공을 들이고 있다.

다만 HD현대중공업으로서는 입장이 불리해 '노심초사'하고 있는 상황이다. HD현대중공업 직원들이 대우조선해양이 진행한 KDDX 개념설계 등의 군사기밀을 유출한 사실이 드러나면서 위기에 처한 것이다.

기밀을 유출한 것으로 밝혀진 HD현대중공업 직원 9명은 군사기밀보호법 위반 혐의로 기소돼 지난해 11월 전원 유죄가 확정됐다. 이에 HD현대중공업은 2025년 11월까지 입찰시 보안 감점(-1.8점)을 받게 됐다. 이어 오는 27일 방사청이 HD현대중공업의 입찰 참가 제한 안건을 심의하기 위해 '계약심의위원회'를 열게 됐다.

당초 방사청은 계약심의위원회를 지난해 12월 열 예정이었다. 그러나 HD현대중공업의 제3자 판결문 열람 금지 신청으로 판결문을 확보하지 못하면서 제재 절차를 연기하게 됐고 최근에서야 판결문을 확보하면서 관련 절차에 다시 나서게 됐다.

입찰 참가 제한 가능성이 제기되면서 HD현대중공업은 비상 상황이 됐다. 이미 지난해 감점 1.8점을 적용받으면서 경쟁상대인 한화오션에게 울산급 배치-Ⅲ 5·6번함 건조사업 우선협상대상자 자리를 내주는 등 어려움을 겪고 있다. 특히 지난해 특수선 사업부에서 매출과 영업이익이 전년 대비 각각 40.8%와 59.9%씩 감소한 4188억원, 186억원에 그쳤다.

여기에 입찰 참가까지 제한된다면 수주 기회가 대폭 줄어들게 될 전망이다. 방위사업법상 방사청이 HD현대중공업에 가할 수 있는 가장 큰 제재는 입찰 참여 5년 제한이다. HD현대중공업 측은 감점 적용을 받는데 이어 입찰 참가 제한이 된다면 '이중 제재'라는 입장이다.

울산상공회의소도 지난 22일 방위사업청에 HD현대중공업이 특수선 함정사업 입찰에 참여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달라는 건의서를 발송하는 등 이중 처벌을 하지 말아달라는 의견을 전달했다.

한국형 차기 구축함(KDDX) 조감도. HD현대중공업 제공
한국형 차기 구축함(KDDX) 조감도. HD현대중공업 제공

 

입찰 제한 여부를 두고서는 의견이 분분한 상황이다. 국가계약법상 '부정한 행위를 한 자'에 대한 입찰 참가자격 제한은 5년이 지나면 할 수 없고 방위사업법상 입찰 참가자격 제한은 청렴서약 위반 당사자를 대표 및 임원으로 국한하고 있기 때문이다. HD현대중공업의 사례를 보면 이미 5년이 지났고 직원의 범법 행위로는 제재가 어려울 수 있기 때문이다.

다만 일각에서는 국가계약법의 5년 경과 조항은 소 제기 이후 형 확정까지 기간을 뺀 것이라는 해석도 제기되고 있다. 관계 당국이 인지한 시점이 2018년 4월이고 HD현대중공업 직원들이 기소된 시점은 2020년 9월, 직원 8명에 대한 형 확정은 2022년 11월로, 아직 법 적용 기간이 남았다는 분석이다.

아울러 경찰은 HD현대중공업이 불법 취득한 기밀자료를 비인가 서버에 관리하는 과정에서 당시 회사 임원이 외부 서버 업체와 계약한 자료 등을 확보해 별건 수사를 진행하고 있다. 이와 관련해 임원 보고나 결재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는 상황이다.

다만 방위사업법에서 규정하고 있는 임원이 등기임원인지 비등기임원인지는 불명확하기 때문에 책임이 달라질 수 있는 여부도 남아있다. HD현대중공업의 특수선사업 최고 책임자인 본부장은 부사장이지만 등기임원이 아니다.

이런 가운데 HD현대중공업 입찰 제한 심의를 두고 지역간 다툼으로도 번지는 양상이다. 국민의힘 울산 지역 국회의원 이채익·권명호 의원은 지난 20일 기자회견을 열고 HD현대중공업 입찰 배제 시 우려가 크다는 입장을 밝혔다. 반면 같은 당 거제 지역 서일준 의원은 같은 날 엄격하게 심의해야 한다며 반대 의견을 보였다.

한화오션이 위치한 경남 거제시가 지역구인 서일준 국민의힘 의원은 20일 "KDDX 군사기밀 절도 사건은 대한민국 방위산업의 근간을 바로 세우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며 "국가 방위산업은 국민의 생명과 대한민국 영토를 수호하는 엄중하고도 근본적인 책임과 의무가 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국가 방위산업의 위상을 올리는 길은 방사청 입찰 참가 자격 제한 심의가 첫 단추가 될 것"이라며 "방사청법에 따른 공정하고 엄격한 심의와 신속한 후속 조치가 반드시 이뤄져야 한다"고 했다. HD현대중공업에 대한 강도 높은 제재를 촉구한 것이다.

반면 같은 당 이채익·권명호 의원은 "HD현대중공업이 입찰에서 배제된다면 특수선 사업은 문을 닫으라는 소리와 같다"며 "HD현대중공업 특수선 사업부의 매출은 1조원, 고용 인원은 1700명에 달한다. 하지만 최근 특수선 사업부가 위기에 빠져 울산 시민들이 많은 우려와 걱정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방사청이 문제 삼고 있는 것은 10년 전 발생한 보안사고로, 이로 인해 HD현대중공업은 이미 1.8점의 감점을 적용받고 있다"면서 "수주전 당락이 소수점 차이로 결정되는 점을 감안하면 이미 강력한 처분을 받고 있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방사청이 울산지역 경제는 물론 대한민국 안보 등을 고려해 현명한 결정을 내려주길 기원한다"며 "정부도 어떤 결과가 대한민국의 경제적 국익과 튼튼한 해양안보를 위한 것인지 국민 눈높이로 고심해 달라"고 촉구했다.

이에 대해 석종건 방사청장은 지난 22일 "법과 규정, 절차에 따라 합리적인 심의 결과를 도출할 것"이라며 "어떤 결과가 나오게 되면 후속조치를 잘하도록 하겠다. 어떤 정무적인 것까지 고려해 판단할 것이라 생각하지 않는다"고 입장을 밝혔다.

이번에 방사청의 심의 결과 입찰 참가 제한 조치가 확정되면 일정 기간 공공 입찰이 불가능해지므로 HD현대중공업은 자사가 설계한 KDDX 건조 사업에 참여할 수 없게 된다. 이에 HD현대중공업을 향한 방사청의 결정을 두고 업계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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