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시의무제도' 22일 시행.. 유예 기간 없어 업계 '난감'
역성장 우려에 역차별 고민까지.. 게임사별 희비 교차

'리니지M'에 새로 업데이트된 인게임 확률 정보. 게임 화면 캡처
'리니지M'에 새로 업데이트된 인게임 확률 정보. 게임 화면 캡처

확률형 아이템 규제가 열흘 뒤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가운데  이번 조치가 게임업계의 판도에도 큰 영향을 미칠 수 밖에 없어 게임업계 전체가 긴장하는 분위기다.

12일 업계에 따르면 확률형 아이템 표시 의무제도를 담은 개정 게임산업법은 22일부터 유예기간없이 시행된다. 업계에서는 특히 전격적 시행으로 인한 혼란 우려의 목소리가 커지는 가운데 새로운 수익창출 방안 등 대응책 모색 움직임이 빨라지고 있다.

개정 법률에 따라 '확률형 아이템'을 제공하는 모든 게임물은 아이템 유형과 확률정보 등을 게임 내부는 물론 홈페이지, 광고물 등에 공개해야 한다. 최근 3년 내 연평균 매출액 1억원을 초과하는 게임 개발사, 유통사 등을 대상으로 한다.

확률형 아이템이란 현금으로 구매하는 유상 아이템 중 획득 결과에 확률적 우연이 영향을 주며 그 결과가 구매 결정과 게임 이용에 영향을 주는 아이템을 의미한다. 또 무상 아이템과 유상 아이템을 결합하거나 유상 아이템 획득에 영향을 주는 무상 아이템도 확률 정보 공개 대상에 해당한다.

이런 규제가 대두된 것은 일부 게임사들의 과도한 이익추구와 고객을 돈벌이 수단으로만 인식한 행태 등에서 비롯됐다. 앞서 일부 게임업체들은 당첨률 0%인 아이템을 판매하는 등 확률 조작 논란에 휩싸인바 있다. 수억원을 들이고도 원하는 아이템을 얻지 못한 게임 유저들의 고발이 잇따르기도 했다.

개정된 법 시행 이후 확률 정보를 표시하지 않거나 허위로 기재했다가 적발되면 시정권고와 시정명령을 받게 된다. 또 게임사가 이를 따르지 않을 시에는 2년 이하 징역 또는 2000만원 이하 벌금이 부과된다.

이같은 규제 시행을 앞두고 게임물관리위원회가 확률형 아이템 사후관리 업무설명회를 개최하고 관련 대응 팀을 마련하는 등 게임업계 전반적으로 촉각을 곤두세우는 모습이다. 게임위는 팀장 1명, 모니터링 22명, 행정업부 4명으로 구성된 사후관리 조직을 신설했다. 예상보다 빠른 법 개정에 게임사들의 입장 및 의견 청취 등을 적극적으로 수용하겠다는 입장이다.

국내 게임업계에도 변화가 감지되고 있다. 모바일 중심의 확률형 아이템에 의존하던 수익 창출 비즈니스 모델(BM)에서 벗어나 새로운 수익 창출 방법을 모색하거나 확률형 아이템 정보를 선제적으로 공개하는 한편 구매형 PC·콘솔 게임 등을 선보이고 있는 것이다. 게임 유저들의 '사행성'을 조장해온 확률형 아이템에 대한 사회적 비난 등을 인식했기 때문이다.

'리니지' 시리즈를 운영 중인 엔씨소프트는 확률형 아이템 정보 공개를 이미 적용해 시행 중이다. 또 지난해 출시한 '쓰론 앤 리버티(TL)'에서는 확률형 아이템을 전격 배제했다. 이와 함께 지난해 8년 만에 참여한 지스타에서는 '프로젝트 BSS', '배틀크러쉬' 등 PC·콘솔 게임을 전면에 배치하면서 기존과는 다른 행보를 보이기도 했다.

데브시스터즈는 확률형 아이템 비중이 낮은 '쿠키런: 킹덤' 시리즈로 꾸준한 실적을 내고 있다. 귀여운 그래픽의 쿠키들의 대서사를 따라 전개되는 전투 콘텐츠와 왕국을 만들어나가는 타운 건설 요소가 결합된 소셜 RPG 장르에 과금 유도가 비교적 덜한 것이 강점이 됐다. 여러 이벤트와 보상 제공으로 무과금으로도 즐길 수 있게 한 전략도 주효했다는 평이다. 확률형 아이템 규제가 강화된 중국에서도 무사히 시장에 안착했다.

스마일게이트의 '로스트아크' 역시 최근 신규 이용자를 늘리며 흥행을 이어가고 있다. 스마일게이트에 따르면 지난 1월 기준 로스트아크의 신규 이용자수는 전월 대비 355%, 복귀 이용자수는 318% 늘었다. 지나치지 않은 과금 구조와 본래도 투명하게 공개해오고 있던 확률형 아이템 정보 등이 이용자들에게 어필했다는 자체분석이다.

일례로 로스트아크는 사냥후 떨어지는 아이템을 자동으로 획득하는 자석펫과 같은 아이템을 무료로 얻을 수 있으며 캐릭터 외형 등을 꾸밀때도 확률형 아이템 사용 단계없이 이용자가 직접 캐릭터 외형을 정할 수 있다. 과금 요소가 현저히 적은 것이다. 확률 면에서도 최고 등급 아이템이 나올 확률이 0.5%로 기존 게임들이 평균 0.01%, 0.005% 이하의 확률을 보이는 것과 비교해 높은 수준이다.

경기 성남시에 위치한 넥슨코리아 사옥 전경. 넥슨 제공
경기 성남시에 위치한 넥슨코리아 사옥 전경. 넥슨 제공

 

반면 업계 선두 기업인 넥슨은 향후 가장 큰 진통이 예상된다. 사실상 확률형 아이템 규제를 촉발한 곳으로 '메이플 스토리'가 대표적으로 꼽히는데, 무너진 신뢰를 되찾기 위해 대대적인 개편이 불가피하다. 넥슨은 공정거래위원회로부터 과징금 116억원을 부여받은 데 대해 행정소송을 제기하며 반발해 대중의 뭇매를 맞기도 했다. 메이플스토리가 장수게임인 것은 분명하지만 오랫동안 확률형 아이템에 과도하게 의존했던 만큼 다른 수익성 개선 모델을 찾는 데는 상당한 시간이 소요될 것으로 예상된다.

최근 몇 년 사이 실적이 크게 감소하고 있는 넷마블도 당분간 어려움을 겪을 것으로 보인다. 단기간 빠르게 수익성을 올릴 수 있는 획기적인 비즈니스 모델도 없어 올해 출시한 게임들로 실적을 내야하는데 수익 증대 방안을 찾는게 급선무다.

이처럼 이번 규제로 인해 그간 수익 창출을 확률형 아이템에 의존하던 게임사와 그렇지 않은 게임사 간 희비가 갈릴 전망이다. 업계에서는 해외 게임사가 운영 중인 '파이널판타지 14'나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 등을 벤치마킹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확률형 아이템 없이 월정액제를 고수하면서 꾸준한 인기를 유지하고 있는 게임들의 성공 사례를 배우라는 것이다.

다만 일각에서는 이번 규제가 국내 게임사들에 대한 '역차별'로 작용할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해외 게임사들에게는 강제할 방법이 없어 규제 사각지대가 발생할 수 있다는 것이다. 또한 유예기간이나 계도기간 없이 바로 제도가 시행되다보니 초기 혼란이 불가피할 것이라는 반응도 나온다.

게임업계 관계자는 "확률형 아이템이 그간 국내 게임업계 매출에서 50% 이상 큰 부분을 차지하고 있었던 만큼 게임업계 실적 감소는 일정 부분 불가피하다"고 진단했다. 그러면서 "해외 게임사에 비해 역차별 논란도 있는 만큼 명확하고 세부적인 기준이 마련돼야 한다"고 말했다.

[스트레이트뉴스 함영원 기자] 

저작권자 © 스트레이트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