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터리 '캐즘' 속 지난해 실적 선방에도 시장 점유율은 '뚝'
P6 각형·46파이 원통형 등 제품 다변화로 점유확대 사활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이 지난달 설 연휴 기간에 말레이시아 스름반에 있는 삼성SDI의 배터리 생산 공장을 찾아 내부를 살펴보는 모습. 삼성전자 제공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이 지난달 설 연휴 기간에 말레이시아 스름반에 있는 삼성SDI의 배터리 생산 공장을 찾아 내부를 살펴보는 모습. 삼성전자 제공

전기자동차 수요 둔화에 따른 배터리 시장 침체로 국내 배터리 업체들이 활로 찾기에 분주한 가운데, 대형 업체 중에서도 LG에너지솔루션과 SK온에 비해 상대적으로 미미한 존재감을 보였던 삼성SDI의 전략 변화에 이목이 쏠린다.

14일 업계에 따르면 최근 전기차 성장률 둔화에 따라 배터리 업계가 다소 타격을 입고 있다. 지난해 4분기부터 배터리 소재와 제품 관련 기업들의 성장세가 꺾이는 추세다.

이 같은 현상은 고물가와 충전 인프라 비활성화 등으로 전기차 시장이 '캐즘(chasm, 대중화 전 일시적 수요 둔화기)'을 겪으면서 배터리 시장도 함께 주춤해졌기 때문에 발생하고 있다. 순수 전기차 시대 도래까지 시간이 더 소요될 것으로 예상되면서 배터리 산업도 일시적 침체기에 접어든 것이다.

이런 가운데 국내 배터리 3사 중 삼성SDI의 지난해 시장 점유율 순위가 뚜렷하게 하락하기도 했다. 시장조사업체 SNE리서치에 따르면 삼성SDI의 지난해 전기차용 배터리 점유율은 4.6%로, 이전까지 5~6위를 지켜오다 중국 CALB에 밀리게 됐다.

중국 배터리 업체들은 'LFP(리튬인산철) 배터리'를 바탕으로 저렴한 가격과 빠른 기술 성장을 통해 국내 배터리 업체들을 위협하고 있다. 배터리 시장도 주춤하고 있는 상황에 중국의 공세까지 겹치면서 국내 업체의 근심이 날로 늘어나고 있는 실정이다.

이에 지난해 점유율이 하락한 삼성SDI로서는 위기 돌파와 수익성 확보, 점유율 확대를 위한 전략 전환이 필요한 시점이다.

본래 삼성SDI는 점유율 확대 보다는 '초격차 기술'을 강조해왔다. 그간 시장점유율을 얼마나 끌어올릴 지에 대한 구체적인 목표를 내세우기 보다는 2030년까지 기술과 수익성 면에서 경쟁사를 압도하겠다는 계획을 강조했다.

실제로 낮은 점유율에도 불구하고 삼성SDI의 수익성은 견고한 편이다. 지난해 매출 22조7083억원, 영업이익 1조6334억원을 기록했다. 영업이익이 전년 대비 9.7% 감소했지만 배터리 업계 캐즘 속에서도 비교적 선방했다는 평가다. 삼성SDI는 핵심 제품인 전기차용 P5 각형 배터리 등의 판매 호조 덕분이라는 설명이다. 회사는 BMW, 폭스바겐, 스텔란티스 등 글로벌 완성차 업체에 제품을 납품하고 있다.

다만 업계에서는 실질적인 수주 규모가 중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삼성SDI는 수주 잔고 현황을 직접 발표한 적이 없으며 업계 추정치는 260조원 정도다. 적지 않은 규모지만 경쟁사인 LG에너지솔루션(500조원), SK온(400조원) 등에 비하면 작은 수준이다. 배터리 사업 자체 규모가 다른 곳들보다 작다는 평가도 나온다.

수주량에 비해 수익성이 견고한 편이었던 것도 다른 경쟁사 대비 시설투자금을 적게 들이며 사업의 '안정'에 취중해온 점이 작용한 것으로 볼 수 있다. 그간 삼성SDI는 안정적 수익 구조를 유지하기 위해 무리한 투자를 지양해왔다.

그러나 최근 배터리 업계에 위기감이 드리우면서 삼성SDI는 '초격차 기술'을 강조하는 동시에 점유율 확대를 할 수 있는 방법을 적극적으로 모색하는 모습이다. 이를 위해 낙점한 것이 46파이 원통형 배터리, P6 각형배터리, 전고체 배터리 등 신기술 제품이다.

삼성SDI는 최근 열린 '인터배터리 2024'에서 '꿈의 배터리'로 불리는 전고체 배터리(ASB) 양산을 위한 비전을 제시했다. 2026년까지 고객과 협의를 거쳐 시제품을 제작하고 최고의 에너지 밀도를 갖춘 900Wh/ℓ ASB를 2027년부터 양산한다는 계획이다.

삼성SDI P6 각형 배터리. 삼성SDI 제공
삼성SDI P6 각형 배터리. 삼성SDI 제공

 

지난해 12월 첫 프로토 샘플을 생산한 데 이어 성능 개선과 검증 등을 거쳐 올해부터 2026년까지 A·B·C 샘플을 생산하고 2027년과 2029년에는 사용 기간이 각각 16년, 20년인 장수명 배터리를 선보일 예정이다.

이에 삼성SDI는 LG에너지솔루션, SK온보다 전고체 배터리 개발에서 한 발 앞서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양산 예정 시기가 가장 빠르기 때문인데, 삼성SDI는 2027년 양산 성공시 시장 주도권을 잡을 수 있을 전망이다.

강동진 현대차증권 연구원은 "전고체 배터리 양산 성공은 기술 주도권 확보와 산업표준 선점 측면에서 긍정적 요인으로 판단된다"며 "리튬메탈 음극을 사용하는 삼성SDI의 전고체 배터리가 성능면에서 토요타 배터리를 앞설 가능성이 높다"고 내다봤다.

다만 전고체 배터리 양산 시기가 2027년인 만큼 이것에만 의존하기는 어려운 상황이다. 이에 삼성SDI는 미래 먹거리로 꼽히는 46파이(지름이 46㎜인 원통형 배터리) 양산 준비 막판에 박차를 가하는 중이다. 이 역시 경쟁사 LG에너지솔루션, SK온보다 빠른 속도다.

기존 원통형 배터리는 공간 효율성이 떨어지고 수명이 짧아 파우치형, 각형 등 다른 폼팩터(형태) 대비 전기차용으로 채택되는 비중이 낮았으나 미국 전기차업체 테슬라가 에너지 용량과 출력을 높여 주행거리를 늘린 4680 원통형 배터리 양산에 성공하면서 주목받게 됐다.

삼성SDI는 이미 지난해 충남 천안공장에 46파이 원통형 배터리 양산 라인을 구축하고 시제품 생산을 시작했다. 최윤호 삼성SDI 대표도 지난 인터배터리에서 "46파이 배터리는 내년 초면 충분히 양산할 수 있다"며 자신감을 드러냈다.

이처럼 전고체 배터리와 46파이 배터리를 준비하는 가운데 현재는 각형 배터리 P5의 차기작인 P6를 상용화에 성공해 전기차 시장에 공급하면서 기반을 다지고 있다. P6는 현대자동차에 채택돼 2026년 공급하게 된다. P6는 P5와 비교해 니켈 비중을 91%까지 늘리면서 에너지밀도를 11% 가량 높인 것이 강점이다.

아울러 삼성SDI는 전기차 시장의 핵심인 북미 생산 거점 구축도 진행 중이다. 경쟁사보다 늦어지긴 했으나 배터리 수요가 높은 북미 시장을 공략하고 향후 미국 인플레이션감축법(IRA)에 따른 첨단제조생산세액공제(AMPC)도 받으려는 복안으로 분석된다. 삼성SDI는 올해 투자 규모도 전년보다 늘리겠다고 공언했다.

김철중 미래에셋증권 연구원은 "전기차 수요 예상치 하향 조정이 시작되며 공격적인 투자 기조가 지속되던 글로벌 경쟁사들의 투자 규모가 주춤하기 시작했다"며 "삼성SDI의 CAPEX(설비투자비용) 규모는 큰 폭으로 증가해 중장기적 시장점유율 확보의 서막이 시작됐다"고 설명했다.

[스트레이트뉴스 함영원 기자] 

저작권자 © 스트레이트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