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 훈풍 속 美 기업 보조금 지원 방안 발표 앞둬
삼성 8조원대 수혜 예상.. 추가 투자·R&D 계획 '촉각'
SK, 패키징 공장 건립 속도.. 실적 개선 기대감 '고조'

삼성전자. 연합뉴스
삼성전자. 연합뉴스

 

미국 상무부가 이달 말 삼성전자를 비롯한 기업별 반도체 보조금 규모를 발표할 예정인 가운데 그 규모와 파장에 업계의 관심이 커지고 있다. 삼성전자가 반도체 업황 회복 속에서 TSMC보다 더 많은 보조금을 받아 더욱 호재가 될 것이라는 전망까지 나오면서 기대감이 고조되는 모습이다.

18일 업계에 따르면 미국 상무부는 이르면 이달 말 자국 내 공장을 건립하는 주요 반도체 기업에 보조금을 지급하는 내용의 반도체 지원방안을 발표할 예정이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지나 러몬도 상무장관과 함께 이번주 안으로 애리조나주 인텔 공장을 방문한 이후 보조금 계획을 발표할 것으로 예상된다. 블룸버그 등 주요 외신은 삼성전자가 60억 달러(7조9600억원) 규모의 보조금을 받을 것이라고 보도했다.

이같은 보도가 현실화한다면 삼성전자는 당초 예상됐던 보조금(3조3000억원)보다 2배 이상 많은 금액을 받게 된다. 삼성보다 미국에 더 많은 금액을 투자하는 대만 TSMC보다도 많은 보조금이다. 가장 많은 보조금을 받을 것으로 알려진 인텔(100억달러)에 이어 두 번째 규모다. 파운드리(위탁 생산) 전문인 TSMC와 다르게 메모리·설계·패키징(후공정)까지 가능한 삼성의 턴키(일괄 공급) 능력을 인정받았을 것이라는 관측이다.

삼성전자는 현재 170억 달러(22조4230억원) 이상을 투자해 미국 텍사스주 테일러시에 파운드리(반도체 수탁생산) 공장을 건설 중이다. 업계에서는 추가 투자 계획을 미국 정부와 협의하면서 사업 확장 가능성에 따라 보조금 액수가 높게 정해졌을 것으로 보고 있다. 테일러 공장 용지에 추가로 공장을 짓는 계획을 제시했거나 인공지능(AI)이 업계 최대 이슈로 떠오른 만큼 이와 관련해 추가 투자 계획이 있었을 것이라는 분석이다. 김양팽 산업연구원 전문연구원은 "미국 정부가 요구한 여러 내용 중 그쪽이 원했던 답을 삼성전자가 제출했을 가능성도 있다"고 말했다.

미국 투자 계획을 세우고 있는 SK하이닉스가 받을 보조금에 대한 관심도 높아지고 있다. SK하이닉스는 현재 미국 내 150억 달러(19조9800억원) 규모의 첨단 패키징 공장 건립을 추진하고 있다. 이곳에선 HBM(고대역폭메모리)을 위한 D램 적층 작업을 할 것으로 알려졌다. 신규 투자 지역으로는 애리조나주가 유력하다. 곽노정 SK하이닉스 사장은 지난달 부지 선정 시기에 대해 "(올해 안에 되도록)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이같은 미국의 반도체 기업에 대한 보조금은 이른바 '반도체과학법'(칩스법)으로 불리는 미국 정부의 반도체 지원법에 따른 것이다. 이 법은 글로벌 반도체 기업의 미국 내 설비 투자를 장려하기 위해 2022년 발효됐다. 미국 내 반도체 생산 시설 확대와 연구개발을 위해 5년간 527억 달러(70조646억원)에 달하는 규모의 보조금을 지원하는 것이 핵심이다.

기업으로서는 보조금을 받으면 건축 비용이나 원자재 가격 등 비용 부담을 줄일 수 있다는 점이 장점이 된다. 실제로 삼성전자의 테일러 공장은 최근 인플레이션으로 공사비가 계속 높아지고 있어 본래 미국의 반도체 생산원가가 국내보다 최대 20~30% 더 드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번에 미국으로부터 보조금을 받는다면 비용 증가 부분을 메꾸고도 남을 것이라는 긍정적 전망이 나온다.

1월 8일(현지시간) 미국 라스베이거스 만달레이베이 컨벤션센터 'SK하이닉스 AI 미디어 컨퍼런스' 행사장에서 곽노정 대표이사 사장이 발표를 진행하고 있다. SK하이닉스 제공
1월 8일(현지시간) 미국 라스베이거스 만달레이베이 컨벤션센터 'SK하이닉스 AI 미디어 컨퍼런스' 행사장에서 곽노정 대표이사 사장이 발표를 진행하고 있다. SK하이닉스 제공

 

최근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를 둘러싸고 반도체 업황이 점차 개선되면서 실적 개선에도 속도가 붙고 있어 이번 미국 보조금 지원과 함께 더욱 호재가 될 것이라는 반응도 나온다.

증권업계에 따르면 삼성전자는 올해 1분기 2000억원의 영업이익을, SK하이닉스는 1조1800억원의 영업이익을 거둘 것으로 관측되고 있다. 삼성전자는 4개 분기 연속 이어온 조단위 적자가 끝나고, SK하이닉스는 전 분기 대비 250% 가까이 급증한 실적을 올리면서 국내 반도체 업황이 본격 상승국면에 접어들 것이라는 분석이다.

특히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생성형 인공지능(AI) '챗GPT' 개발사인 오픈AI와의 협업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다. 앞서 샘 올트먼 오픈AI 최고경영자(CEO)가 지난 1월 한국을 찾아 각 사 임원진과 만나 협력 방안을 타진하기도 했는데, 최근 샘 올트먼 CEO가 삼성과 SK에 대한 관심을 공개적으로 표명했기 때문이다.

샘 올트먼 CEO는 지난 14일(현지시간) 미국 캘리포니아주 샌프란시스코에 위치한 오픈AI 본사에서 '삼성전자·SK하이닉스와 함께 AI 칩을 제조할 가능성이 있냐'는 질문에 "그렇게 되기를 희망한다"고 답한 것으로 알려졌다. 오픈AI는 엔비디아에 대한 의존을 줄이기 위해 AI 반도체를 직접 개발·생산하겠다는 계획을 세우고 있는데, 이를 위해서는 AI칩 생산에 필수적인 HBM 확보가 필요하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HBM 시장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다만 미국 보조금과 관련해 우려의 목소리도 제기된다. 미국 반도체 지원법에는 중국 내 공장 증설을 제한하는 내용이 담겨있기 때문이다. 반도체 수출·생산 분야에서 우리나라는 중국 의존도가 높은 상황으로,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도 중국에서 여전히 생산공장을 운영 중이다. 또 현재 양사는 미국의 반도체 지원법 제정 후 구형 중고 장비를 중국 등에 팔지 못하고 창고에 쌓아놓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밖에도 반도체 지원법에는 1억5000만 달러(1994억원) 이상 보조금을 지원받는 기업이 초과 이익을 거두면 보조금의 최대 75%를 미국 정부와 공유해야 한다는 규정을 명시하고 있다. 세부 회계 자료와 영업 기밀인 수율 제출 등의 민감한 조항들도 담겨있는 상황인 만큼 리스크가 발생할 가능성이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미국의 TSMC 의존도를 해소하고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에 많은 보조금이 지급되는 상황은 긍정적이지만, 이를 빌미로 까다로운 조건이 늘어날 수 있기 때문에 지속적으로 미국과 소통하면서 삼성·SK가 한국 정부와 함께 적극적인 대응책을 세워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특히 오는 11월 예정된 미국 대통령 선거도 변수가 될 수 있다. 연임에 도전 중인 조 바이든 대통령이 반도체 투자 유치를 장려하며 보조금 지원을 꾀하는 반면, 자국 산업 보호에 목소리를 높이는 도날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재집권을 하게 된다면 반도체 보조금에 대해 변동이 발생할 수 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기 때문이다. 삼성과 SK가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는 이유다.

이에 따라 미국의 반도체 보조금에만 집중할 것이 아니라 정부가 국내 기업이 성장할 수 있는 환경을 먼저 마련해야 한다는 조언도 나온다. 김양행 산업연구원 전문연구원은 "국내 반도체 생태계 육성 방안 등 근본적인 대안을 찾는 데 집중해야 한다"고 말했다.

[스트레이트뉴스 함영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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