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수출통제 이전 中 반도체 장비도 적용.. "동맹국 설득"
삼성·SK, 美 보조금 받기 위해 투자.. 중고 장비는 창고행

앨런 에스테베스 미국 상무부 산업안보차관이 21일(현지시간) 워싱턴DC에서 열린 하원 외교위원회 청문회에서 증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앨런 에스테베스 미국 상무부 산업안보차관이 21일(현지시간) 워싱턴DC에서 열린 하원 외교위원회 청문회에서 증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미국과 중국의 패권 경쟁이 심화하는 가운데 미국이 대(對)중국 반도체 제조장비 수출 금지를 넘어 장비 서비스와 부품으로까지 통제 범위를 확대하기로 하면서 국내 반도체 업계가 술렁이고 있다.

22일 업계에 따르면 미국 정부는 중국에 대응하기 위해 미국 외 다른 나라의 대중국 반도체 장비 서비스와 부품 수출까지 막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현재 미 기업을 대상으로 시행 중인 반도체 장비와 서비스·부품 수출통제를 다른 국가 기업까지 확대하겠다는 방침이다.

미국 하원 외교위원회 청문회에서 의원들이 대중국 반도체 수출통제 조치가 제대로 작동하고 있는지 따져묻자 미국 상무부가 이 같이 밝힌 것으로 전해졌다. 첨단 반도체뿐 아니라 범용 반도체 생산장비에 대한 서비스와 부품까지 통제하겠다는 것으로 분석된다.

앨런 에스테베스 미국 상무부 산업안보차관은 "수출통제 이전에 중국에 공급된 반도체 장비에 대한 서비스를 차단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라며 "그럴 경우 이미 보유한 장비가 기능을 못하게 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이같은 대중국 반도체 수출통제를 도입하도록 설득해 미국 기업과 동맹국 기업 간에 '동등함'을 달성하려고 노력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그간 미국 내에서는 다른 국가 기업들은 여전히 중국에 반도체 장비 운영에 필요한 유지·보수 서비스와 부품 등을 판매할 수 있어 미국 기업만 불리하다는 불만이 제기돼 온 것으로 알려졌다.

실제로 지난달 미국반도체산업협회(SIA)는 "한국이나 일본, 대만, 이스라엘, 네덜란드 등 경쟁 기업들은 수출통제 대상에 없는 반도체 장비를 중국에 수출할 수 있고 관련 서비스도 제공할 수 있어 미국 기업들이 불리한 여건"이라는 의견서를 미 상무부 산업안보국(BIS)에 낸 바 있다.

미국 정부가 자국 기업들의 목소리를 적극적으로 반영하기로 하면서 동맹국들에 제시할 새로운 수출통제 방안을 빠르게 마련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런 가운데 국내 업계에서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미국 정부 측은 강제적으로 압력을 가하지 않고 '협력'을 요청하겠다는 의사를 밝히기는 했으나 다른 동맹국과 비교되면 불이익을 받을 가능성도 있는데다 향후 더 제약이 늘어날 수 있다는 관측에서다.

이미 국내 기업들은 그간 미중 패권 경쟁에 따라 양국 사이에서 눈치를 보며 대응해왔다. 국내 대표 반도체 기업인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중국 반도체 공장에서 생산하는 첨단 제품 비중을 줄여왔다. 미국의 반도체법에 따른 보조금 지급을 받기 위해 활발한 투자도 진행 중이다. 삼성전자는 미국 테일러시에 새 공장을 짓고 있으며 SK하이닉스도 부지를 선정하고 있다.

또 최근에는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중고 반도체 장비를 중국 등 다른 나라에 팔지 않고 창고에 보관해두고 있는 사실이 알려지기도 했다.

에스테베스 차관은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노후된 중고 반도체 장비를 중국에 팔지 않기로 한 결정을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그는 "미국은 중국의 군사력 강화 능력을 단속하기 위해 핵심 동맹 및 파트너와 협력을 강화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동맹 및 파트너가 중국의 위협을 인식하고 반도체 등 첨단기술 안보 우려를 해소하기 위해 적절한 행동을 하고 있어 고무된다"고 밝혔다.

일단 국내 업계는 상황을 지켜본다는 분위기다. 우려의 목소리도 크지만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지난해 미국 정부로부터 '검증된 최종사용자(VEU)'로 인정 받아 중국 사업장 내 공정에는 큰 문제가 없을 것이라는 판단이다. 이 제도에 따르면 미국 정부의 허가 없이도 중국 내 첨단 반도체 장비를 들일 수 있다.

현재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중국에서 중요한 공장을 운영 중이다. 삼성전자는 시안과 쑤저우 등 2곳에, SK하이닉스는 우시·다롄·충칭 등 3곳에 각각 중국 공장을 운영하고 있다. 양사 모두 전체 생산량의 절반 수준을 중국 공장에서 생산하고 있다.

또 국내 주요 소재·부품·장비 기업이 중국 반도체 기업에 직접 물품을 공급하고 있는 비중은 미미한 편이며 대부분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에 납품하고 있기도 하다.

대신 미국 정부가 단순 장비 반입이 아닌 전반적인 서비스와 모든 부품으로 영향력을 확대된다면 장비 수리나 부품 교체, 소모성 부품 공급 등의 차질이 발생할 수 있기 때문에 그 어느 때보다 예의주시하고 있다는 반응이 나온다.

업계 관계자는 "VEU로 인정받은 부분에 따라 당장에 큰 문제는 발생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며 "향후 미국 정부의 구체적인 요구를 확인하고 적기에 리스크 관리에 나서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스트레이트뉴스 함영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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