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막걸리 교수님, 자본론 입문 수업이 오후 첫 수업이라, 함께 막걸리 한 잔 못 한 게 아쉬워, 노부부께서 우리를 초대해주셨지요.” - 한 제자의 추모사 중

 

‘현실의 경제학’에 대한 열망

김수행 교수는 한 강연에서 마르크스 경제학을 공부하게 된 동기를 털어놓았다. 그가 서울대 상과대학에 입학한 때는 1961년 박정희의 쿠데타가 일어난 해이다. 그는 대구 상업학교를 졸업하고 은행에 근무하다 4년 장학생으로 서울대에 입학했다. 가난한 집에 태어나 빈곤과 가난에 대한 문제의식을 가지고 있던 그에게 서울대의 경제학과는 배울게 없었다고 한다. 그러던 중 일본에서 나온 경제학 책을 통해 마르크스를 접하게 되었다. 그는 마르크스라는 친구 꽤 괜찮네 하면서 그를 통해 현실에 맞는 경제학을 공부 할 수 있겠다 생각했다고 한다. 1968년 박사과정에 재학하면서 조교로 근무하던 중 통혁당 사건이 일어나 신영복 선생과의 인연으로 연루되어 서울대를 그만두게 되었다. 그 후 외환은행에 취직하였으며, 1972년 런던 외환은행 지점으로 파견을 가게 되었다. 60년대 말, 70년대 초 유럽은 포스트 구조주의, 알뛰세 등의 포스트 마르크스주 등 마르크스에 대한 재해석이 부흥하던 시기였다. 김수행 교수는 런던의 서점에서 쏟아져 나온 책들을 보고 커다란 충격을 받았다고 한다. 또한 영국의 사회보장제도를 경험하면서 현실에 맞는 경제학 이론에 대한 확신이 더욱 커졌던 것 같다. 마침내 그는 10년간의 준비 끝에 1989년 서울대에 부임하는 동시에 자본론을 한글 번역본을 출간한다.

 

마르크스주의자 혹은 마르크스 경제학자

그는 48세에 우리나라 최초로 <자본론> 완역과 더불어 강단에서 마르크스 경제학을 가르쳤다. 그리고 민교협, 교수노조, 학단협, 맑스코뮤날레, 사회실천연구소, 사이버노동대학 등의 설립·운영 등을 통해 사회적 실천에도 적극적이었다. <자본론>, <금융자본(루돌프 힐퍼딩)>, <국부론(아담 스미스)> 등을 번역하였고, <자본주의경제의 위기와 공황>, <자본론의 현대적 해석>, <세계대공황>, <자본론 공부> 등의 저서를 남겼다. 오늘날 김수행 교수를 부를 때, 보통 마르크스 경제학자라고 한다. 왜 마르크스주의자가 아니고 마르크스 경제학자인가? 그의 대답에서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 그는 왜 마르크스를 공부하냐고 물으면 ‘좋아서한다’고 대답한다. 이념, 신념 혹은 의무론이 아니라 그냥 마르크스 경제학을 공부하는 것이 좋다는 것이다. 그는 어떤 ‘주의(-ism)’에 머물러 있지 않은 학자이다. 그럼 그는 왜 마르크스 경제학을 좋아할까? 그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노동자의 해방을 제1의 명제로 삼고 있다. 그는 남을 착취하는 구조가 없어지면 노동자 뿐 만 아니라 자본가들도 해방된 삶을 살게 된다고 확신한다. 그는 마르크스에게서 욕망과 욕구에 구속된 인간 본성이 아니라 환경을 변화 시키면서 자신을 변화 시키고, 또 자신을 변화 시키면서 환경을 변화 시키는 사회적 존재로서의 인간을 찾았다. 따라서 그는 자본주의의 욕망의 원리를 벗어나 전 세계적으로 동시에 진행되는 평등의 정치 혁명을 기대했다. 마르크스 경제학은 이 혁명을 가능하게 하는 정치경제학의 방향을 제시해준다.

 

21세기 정치경제학, 노동자·빈민 살리는 복지사회의 패러다임

김수행 교수가 영국에서 처음으로 새로운 세계에 대해 눈을 뜨기 시작한 동기는 바로 복지였다. 영국의 복지 시스템은 막연히 이론적 상상에 머물러 있었던 그의 세계관에 큰 충격을 주었던 것 같다. 그는 처음으로 모두에게 인간적 삶이 평등하게 주어질 수 있음을 목격하였다. 그는 우리사회에서 보이는 선별적 복지니 보편적 복지니 하는 소모적 정쟁을 비판한다. 우리 현실에서 복지는 노동자와 빈민을 살리는 것임을 강조한다. 마르크스 경제학자가 화려한 언어적 유희를 걷어차고 오직 가난한 자를 살리는 것이 복지라는 단순논리를 펴는 것이 역설적이기도 하다. 그러나 막걸리 내음 가득한 학자가 제시하는 ‘오컴의 면도날’식 정의는 언어적 화려함으로만 치장하고자 하는 오늘날 지성사회를 돌아보게 한다. 그에게 있어서 복지는 자본주의의 환경을 바꾸는 것이며, 이 환경변화는 또 자본주의적 욕망으로부터 자유로운 사람으로의 변화를 이끌어가는 정치 혁신이라 할 수 있다.

김수행 교수가 21세기 우리사회에서 강조하고 제시하는 방향은 어쩌면 정치경제학의 가장 기본적인 원리들이다. 1936년 프랑스에서 출간된 '정치경제학의 요소(Eléments d'économie politique)'의 마지막 장은 ‘국가와 노동자들의 보장(L'Etat et les assurances ouvrières)’으로 구성되어 있다. 김수행 교수가 추구하는 21세기 정치경제학은 ‘필요, 유용성, 부’라는 기본개념, ‘자연과 노동’이라는 생산의 원초적 요소와 자본, ‘교환 및 교환 가치’의 경제적 삶의 규제 원리, 노동 분화와 노동의 보호라는 20세기 초 제시된 정치경제학의 요소들을 현실에 실현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 도달점은 착취, 불평등, 배제가 작동하는 ‘자본’으로부터의 인간해방이었다. 이제 그는 인간 해방을 향해 세상은 변할 것이라는 긍정의 전망을 남겨두고 우리 곁을 떠났다.

“자본주의 사회가 영구불멸하리라고 말하는 사람이나, ‘현실 사회주의’의 몰락을 보면서 자본주의 사회에서 인류 역사는 끝이 난다고 말하는 사람은, 지금과 같은 세계적 대불황에서 대부분의 주민들이 비참하게 살고 있는 자본주의 사회가 계속되기를 바라는 ‘나쁜’ 사람일 뿐입니다. 세상은 계속 변한다는 것이 진리입니다.”(김수행, <자본론 공부> 중)

 

마르크스 경제학자 김수행이 남겨 놓은 담론들은 <21세기 자본> 토마스 피케티의 막걸리식 표현들이 아니었을까.

[사진제공=뉴시스]

박태순

파리1대학 정치학 박사
성균관대학 초빙교수
미디어로드 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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