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희호 이름 앞에 민주주의라고 쓴다
이희호 이름 앞에 민주주의라고 쓴다
  • 김세헌 기자 (betterman89@gmail.com)
  • 승인 2019.06.1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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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 안아주는 이희호 여사
어린이 안아주는 이희호 여사

김대중 전 대통령의 평생 동반자였던 이희호 여사가 10일 오후 11시 37분 서울 서대문구 신촌세브란스 병원에서 숙환으로 별세했다. 향년 97세. 

이희호 여사의 삶은 김대중 전 대통령의 존재와 떼기 힘들어 ‘김대중의 부인’으로 조명 받아온 것도 사실이지만, 유력 여성운동가이며 평생 민주주의와 인권을 위해 헌신해왔다는 평가가 나온다.

1922년 서울에서 태어난 이희호 여사는 이화여고와 이화여자전문학교를 졸업하고, 서울대학교에서 교육학을 전공했다. 6·25전쟁 뒤 미국에서 유학을 한 뒤, 국내에서 여성운동가로서 여성인권운동을 이끌었다.

이희호 여사는 김대중 전 대통령이 민주화 투쟁 일선에 나설 때 정신적 지주로서 그를 지지했다. 본인 역시 민주화 투쟁 동지로서 역할을 다했다. 이들의 힘든 여정은 1971년 김 전 대통령이 박정희 대통령과 붙은 대선에서 46% 득표로 선전했지만 낙선하면서 시작됐다.

1972년 유신 독재가 시작되고 박정희 전 대통령의 '정치적 라이벌'로 불렸던 김대중 전 대통령은 일본에서 망명생활을 할 수밖에 없게 됐다. 이희호 여사는 당시 정보기관의 감시를 피해 김 전 대통령에게 "더 강한 투쟁을 하시라"며 그를 지지했다.

고 김대중 전 대통령의 부인 이희호 여사가 10일 숙환으로 별세했다.
고 김대중 전 대통령의 부인 이희호 여사가 10일 숙환으로 별세했다.

1973년에는 '김대중 도쿄납치사건'으로 김대중 전 대통령이 죽음의 문턱까지 가게 된 큰 시련이 왔지만, 이를 이겨내게 한 것도 역시 이희호 여사의 도움이 컸다. 하지만 이후 김 전 대통령이 정치 활동을 금지 당하고 가택연금, 옥고를 치르면서 이 여사도 함께 고난의 길을 걷는다. 

1979년 박정희 대통령이 세상을 떠난 뒤 잠시 정치 활동이 재개됐지만, 전두환 신군부에 의해 1980년 김 전 대통령이 내란음모 사건으로 수감되고 사형을 선고받으면서 다시 위기가 찾아왔다.

이희호 여사는 이 시기 유신 독재와 신군부의 탄압에 맞섰으면 민주화 투쟁에 앞장섰다. 이 시절 이 여사의 신념과 의지를 지키고 두려움을 이겨내게 해준 것은 신앙이었다. 기댈 것은 기도뿐이었다. 몸과 마음이 갈라지고 부서질 것 같았지만 기도로 버텼다. 이 여사에게 신앙은 자유, 정의, 인권 그리고 민주주의를 찾으려는 싸움의 보이지 않는 최후 무기였다. 그 신앙이 권력의 압력에 굴하지 않는 용기의 원천이었다.

이희호 여사는 목숨을 잃을 수 있는 상황에서도 정권과 타협하지 말라며, 김대중 전 대통령이 신념을 지키도록 했다. 특히 김 전 대통령이 옥고를 치르고 죽음 앞에 설 때마다 전 세계 유력 인사들에게 호소력 짙은 편지를 보내 구명운동을 적극적으로 나섰다.

이희호 여사는 1997년 12월 김대중 전 대통령이 대한민국 제15대 대통령으로 당선되면서 이듬해 2월부터 2003년 2월까지 영부인으로 청와대 생활을 했다. 이 기간 국민의 정부에서 행정부 최초로 여성부가 설치되는 데 기여를 하기도 했다.

2009년 8월 18일 김대중 전 대통령이 눈을 감았다. 같은 해 5월 29일 노무현 대통령의 영결식장에서 오열한 지 82일만이었다. 김 전 대통령이 떠나고 20여 일 뒤인 9월 10일 이희호는 김대중평화센터 이사장에 선임됐다.

이희호 여사는 이 시절 “남편의 유지를 받들어 김대중평화센터의 설립 목적인 한반도와 동아시아를 비롯한 세계 평화, 남북의 화해협력을 위해 노력하겠다”던 취임 인사말대로 2011년과 2015년 평양을 방문해 한반도 평화와 통일의 메시지를 전하는 등 노력을 멈추지 않았다.

김정일 국방위원장 사망 당시 상주였던 김정은 국무위원장을 조문한 이희호 여사.
김정일 국방위원장 사망 당시 상주였던 김정은 국무위원장을 조문한 이희호 여사.

이희호 여사는 그러나 지난 3월부터 병세가 악화돼 서울 신촌 세브란스병원에 입원해 치료를 받아왔다. 가족과 동교동계 등은 이 여사의 병세가 악화될 것을 염려해 지난 4월 장남인 김홍일 전 의원의 별세 소식도 전하지 않았던 것으로 전해진다.

이희호 여사의 장례는 가족들의 뜻에 따라 사회장으로 치러지질 것으로 보인다. 이 여사의 장례를 주관할 장례 집행위원장은 김대중평화센터 김성재 상임이사가 맡는다.

김성재 이사는 11일 오전 11시 고인의 빈소가 차려진 서울 신촌 세브란스병원 장례식장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이 여사의 유지(遺旨)와 장례 계획 등을 발표한다. 김 이사는 "이 여사가 아주 편안하게 가셨다. 가족들이 찬송 부르고 하는 속에서 찬송을 따라 부르며 아주 편안하게 가셨다"며 "가족들도 아주 감사하게 생각한다"고 전했다.

이희호 여사의 빈소는 세브란스병원 장례식장 특1호실이다. 발인은 14일 오전이며 같은 날 오전 7시 서울 창천교회에서 장례예배가 열린다. 장지는 서울 동작동 국립현충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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