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9 선언 32주년, '민주주의 만세' 타는 목마름으로 다시 부른다
6.29 선언 32주년, '민주주의 만세' 타는 목마름으로 다시 부른다
  • 박태순 선임기자 (parktaesoun@naver.com)
  • 승인 2019.06.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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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86세대, 반독재 투쟁과 민주주의에서의 혼란한 정체성
- 좌・우의 이념 대립과 적대적 공생관계를 넘는 공화주의적 비전
- 공동체 가치 회복을 위한 더 많은 민주주의를 향한 노력 필요

[스트레이트뉴스=박태순 선임기자] 6.29선언 32주년을 맞이했다. 87년 6.10 민중항쟁으로 쟁취한 6.29선언은 대통령 직선제 개헌, 평화적 정부 이양, 언론 자유 보장, 지방 자치제와 교육 자율화 실시, 정당 활동 보장 등 오늘날 우리사회의 민주정체의 기본 골간을 마련하는 계기였다. 6.29선언이 있기까지 많은 대학생과 시민들이 전두환 군사독재와 맞서 투쟁하고 희생을 했다. 박종철 열사와 이한열 열사의 죽음은 전두환 독재의 숨통을 옥죄이고, 결국에는 민주세력에 백기 투항시키고 6.29선언을 끌어내었다.

 

박종철 영정사진을 들고 거리로 나와 시위하는 학생들
박종철 영정사진을 들고 거리로 나와 시위하는 학생들

오늘날 586세대로 대표되는 50대들이 젊음을 불태우면서 민주화를 외치고 그 길을 열어간 주역들이었다. 이후 30년의 민주화시대, 586세대는 3만 달러 시대를 향한 경제 발전과 함께 민주주의를 정착시키는데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다. 노무현 정부를 탄생시켰고, 이명박, 박근혜 정부에 저항했으며, 또 문재인 정부를 만드는데 앞장섰다.

32년 전 광화문과 종로 등 크고 작은 광장과 교정에서 한목소리로 외치던 '독재타도와 민주쟁취'의 학생들은 현재 어떤 모습인가?  32년의 시간 속에서 그들에 대한 평가는 엇갈린다. 당시 독재에 맞서 민주화 투쟁의 전위대에서 대다수의 학생들은 정치와 사회, 경제, 문화에 오늘의 대한민국을 이끄는 중추로 자리, 묵묵하게 성숙한 민주사회를 향해 맡은 바 소임을 다하고 있다. 무혈 촛불혁명은 그 연장선으로 군부독재를 물리치고 민주주의를 쟁취하는 데 앞장선 민주화 학생운동은 지금 대한민국 민주주의 발전에 자양분이고 기둥이었다. 

반면 전대협 등 민주화 운동의 일부 주도 세력들의 일그러진 모습이 도마위에 오른다. 그들의 상당수는 정치계에 핵심적인 기득권 세력으로 자리를 잡았고, 어느새 자신들이 체험한 세계에 갇혀서 사회의 민주적 발전과 변화를 가로막는 꼰대들이 됐다는 지적도 만만치 않다. 이들이 굳건하게 뒷받침 하고 있는 체제는 진보와 보수, 민주세력과 독재세력, 패권세력과 적폐세력으로 분열된 정치체제다. 모두가 인정하듯이 두 정치집단은 양자 간에 적대적 공생관계 속에서 때로는 협력하고, 때로는 대립하면서 정치 기득권을 형성해왔다. 청년 민주주의자들이 중장년 반민주주의 선봉자들이 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다.

그 결과 오늘날 우리사회의 모습은 30년 전에 나타났던 모순 구조를 그대로 가슴에 안고 있다. 무엇보다 20세기 마지막 냉전 체제를 그대로 간직하고, 진보와 보수 간의 극단적 대립과 적대가 남북 뿐 만 아니라 동서로도 갈라놓고 있다. 정치집단들은 이 냉전적 대립을 극복하기 보다는 정치 세력화를 위한 기제로 활용해 왔으며, 586세력들도 이에 편승해 권력의 열차를 타고 달려왔다. 이러한 이념적 대립은 그대로 시민사회로 전이되었다.  그 결과, 정치를 벗어나 다양한 시민들의 일상 속에서 그리고 공동체적 활동 공간에서 시민사회가 발전하기 보다는 이념과 정치적 진영에 편승하여 정치세력의 대리자로서의 역할을 하는 가운데 조직되고,  상호간에 대립과 분열의 모습을 보여주기도 한다. 

2019년의 우리사회는 87년 이후 지속되어 온 이러한 이분법적 이념 체계 속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함으로써 미래의 방향을 제대로 잡지 못하고 있다. 87년 박종철, 이한열 열사를 비롯해 많은 민주투사들의 희생으로 쟁취한 민주주의 체제를 이제 시대적 변화에 맞게 한 단계 더 성숙한 차원으로 올려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더 많은 민주주의를 위한 전진이 필요하다.

한 시대에 발생한 혁명은 다음 시대가 가야할 방향과 가치에 대해 많은 의미들과 상징들을 남긴다. 그 대표적인 사례가 프랑스 혁명이다. 혁명 이후 자유의 여신이나 자유·평등·박애를 품고 있는 공화주의를 상징하는 이미지들이 쏟아져 나오면서 프랑스의 미래사회에 대한 방향을 제시하였다.

 

 

오노레 도미에, 아이들을 먹이고 교육시키는 공화국, 1848, 오르세이 미술관
오노레 도미에, 아이들을 먹이고 교육시키는 공화국, 1848, 오르세이 미술관

 

그 가운데 필자가 주목하는 이미지는 빠리의 오르세이 미술관의 에뀌보끄 관에 전시된 오노레 도미에(Honoré Daumier, 1848)가 그린 <공화국> 혹은 <아이들을 먹이고 교육시키는 공화국>이다. 이 그림은 혁명을 표현하는 투구를 쓴 마리안느나 민중을 이끄는 여신처럼 도전적이고 열정적인 공화국의 상징과는 달리 아이들에게 젖을 먹이는 어머니의 모습으로 공화국의 이미지를 그리고 있다. 공화국의 아이들을 먹이는 어머니의 모습, 이 그림은 공화국과 분리될 수 없는 삼색 깃발을 움켜지고, 어린아이를 먹이는 강한 어머니로서 공화국을 표현하고 있다. 국민을 먹여 살리고, 교육시키고자 하는 강한 어머니의 모습, 그 머리에는 영광의 면류관이 씌어 있고, 자유·평등·박애의 공화국적 가치를 상징하는 삼색기를 움켜진 공화국은 혁명이후 프랑스 사회가 국민국가로 나가야 할 방향을 보여주었다. 공동체주의, 복지국가, 자유·평등·박애라는 사회적 가치 등이 프랑스가 추구해야하는 비전인 것이다. 

 

그럼 오늘날 876월 항쟁의 승리로 얻은 민주주의를 되돌아보게 하는 이미지는 어떤 것이 있을까? 네이버 검색을 찾아 봤다. 제일 먼저 뜨는 것이 바로 이한열 열사가 피 흘리며 쓰러지는 사진이었다. 우리는 여전히 이 사진을 움켜쥐고 더 이상 나가지 못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경찰의 최루탄에 맞아 사망한 이한열 열사
경찰의 최루탄에 맞아 사망한 이한열 열사

우리사회 공동체가 좌와 우를 떠나 공통으로 인정하고 공감하는 공화주의적 가치는 무엇인가? 그리고 그 가치를 상징하는 이미지가 무엇일까? 생각 할 수 록 여전히 87년의 시간에 머물러 있는 우리의 자화상을 보게 된다. 876월이 쟁취한 자유의 가치, 민주주의의 소중함 그리고 인권, 그 어느 하나도 우리의 개개인의 삶 속에 그리고 공동체 속에 깊이 내재화 돼있지 못한 것 같은 아쉬움이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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