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를 대상으로 하는 일본의 추가 수출규제가 임박하면서 정부와 산업계가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일본은 지난 4일 반도체 소재 관련 부품인 고순도 불화수소(에칭가스), 플루오린 폴리이미드, 포토리지스트에 대한 수출규제를 발동했다. 다음 달에는 한국을 우방국인 백색 국가에서 제외할 수 있다고 밝혔다.

1차 수출 규제 당시만 해도 반도체 분야에 국한돼 다른 분야는 직접적인 피해를 보지 않았다. 하지만 일본이 전략물자 등으로 규제품목을 확대하면 기계, 자동차부품, 화학, 소재 등 부산 주력업종들의 피해가 발생할 우려가 크다는 분석이 나온다.

이와 관련해 삼성증권은 16일 일본이 반도체 다음으로 수출 규제에 나설 대상 업종으로 자동차와 기계 등을 꼽았다.

유승민 투자전략팀장은 "조만간 일본은 추가 제재를 통해 한국에 대한 압박 수위를 올릴 가능성이 크다"며 "대상은 대일 의존도가 높고 국내 수출에 영향이 큰 산업일 것"이라고 내다봤다.

아울러 "첫 공격의 타깃이 중고위~고위 기술산업군 중 한국의 핵심산업인 반도체였다면 다음은 자동차·기계 등이 우려된다"며 "자동차·기계 산업은 반도체보다 글로벌 공급 사슬에 미치는 영향이 적어 국제사회 비판도 피할 수 있다"고 진단했다.

삼성증권이 관세청의 지난해 통계를 분석한 결과 해당 산업의 대일 의존도(전체 수입 중 일본 수입 비중)는 자동차 11.8%, 특수목적기계 32.3%, 일반목적기계 18.7% 등이었다. 이와 비교했을 때 반도체는 8.3%이고 정밀기기는 19.9%였다.

유 팀장은 "한일 갈등이 양국 경제 및 산업에 파괴적인 영향을 미치는 양상까지 악화할 가능성은 적다고 본다"면서 "극단적 한일 대립은 글로벌 경제와 아시아 역내 지역 안보에도 부담이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다만 "이번 일을 계기로 양측 모두 과거와 다른 새로운 관계 정립을 목표로 하고 있다는 점은 사태 해결에 오랜 시간이 걸릴 개연성을 내포한다"며 "이러한 상황에서 한국은행의 금리 인하 등 선제적 정책 대응 필요성이 매우 커졌다"고 했다.

전체 경제에서 수출입이 차지하는 비중인 무역의존도가 일본의 두배를 넘어 70%에 육박하고 있는 우리 산업계로서는 현 상황이 심각할 수 밖에 없다. 무역의존도가 높으면 대외 환경이 불안해질 때 그만큼 국내 경제가 영향을 받는다. 

이에 무역 대상 국가를 다변화하고 주요 소재부품을 국산화함으로써 국가 경제 기반을 안정적으로 만들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2000∼2019년(1∼5월) 일본의 대(對) 한국 수출입 금액과 비중. 한국무역협회·일본관세협회 제공
2000∼2019년(1∼5월) 일본의 대(對) 한국 수출입 금액과 비중. 한국무역협회·일본관세협회 제공

통계청에 따르면 2017년 기준 한국에 대해 반도체 핵심 소재 3개 품목 수출규제 조치를 단행한 일본의 수출의존도는 14.3%로 한국의 3분의 1 수준이다. 전체 수입액을 GDP로 나눈 수입의존도 역시 한국이 일본보다 두배 이상 높았다.

수출의존도와 수입의존도를 합한 무역의존도는 한국이 68.8%로 일본 28.1%의 2.4배에 달했다. 지난해 한국의 수출의존도는 37.3%로 전년보다 0.2%포인트 내려갔지만, 수입의존도는 33.0%로 1.7%포인트 올라 전체 무역의존도는 68.8%에서 70.4%로 상승했다. 이는 2014년 77.8% 이후 4년 만에 최고치다.

한국의 높은 무역의존도는 꾸준히 지적을 받아왔다. 이번에 일본이 규제 대상으로 삼은 고순도 불화수소(에칭가스), 플루오린 폴리이미드, 리지스트는 대일 의존도가 40∼90% 정도로 높은 편이어서 일본의 조치 직후 한국 기업들은 긴급히 대체 수입국을 찾아 나서기도 했다.

그나마 수출입 의존도가 조금씩 하락하고 있는 것은 긍정적인 신호다. 한국의 수출의존도는 2008년 42.1%에서 2018년 37.3%로 4.8%포인트, 같은 기간 수입의존도는 39.5%에서 33.0%로 4.5%포인트 하락했다.

무역협회 문병기 수석 연구원은 "일본은 한국보다 무역 규모가 크지만, 내수시장이 튼튼해서 대외의존도는 낮은 편"이라며 "한국도 수출입국 다변화와 소재부품 국산화 등을 통해 의존도를 낮출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일본 역시 수출로 먹고사는 나라인 데다가 반도체용 제품 대다수는 한국으로 보내고 있는 만큼 한국 수출길이 막히면 일본도 타격을 입을 수밖에 없다는 분석도 나온다. 일본으로서도 세번째로 큰 흑자국이 사라지는 셈이기 때문이다.

무역협회 국제무역연구원 문병기 수석연구원은 "일본에서도 반도체 소재 주요 수출국인 한국을 제재하면 자국 기업의 피해를 감수해야 한다"며 "더구나 양국 산업이 글로벌 가치사슬로 얽혀 있는 상황에서 일본의 조치는 한일 모두에 부정적인 영향을 줄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그러나 현재는 자국 산업이 피해를 보더라도 한국의 주력 품목인 반도체를 공격함으로써 협상에서의 우위를 점하려는 정치적 의도가 더 크게 작용하고 있다"고 우려했다.

일본에서도 우려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아사히신문은 지난 3일 수출규제 철회를 촉구하는 사설을 통해 "한국과 거래하는 일본 기업에 피해가 돌아올 가능성이 크고 장래에는 한국 기업이 공급처를 바꿀 가능성도 있다"며 "정치의 대립에 경제 교류를 끄집어내는 것이 한일관계에 줄 상처는 계산하기 힘들 정도"라고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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