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리버스터' 내세워 완전무장하고 주판알 굴리는 한국당
'필리버스터' 내세워 완전무장하고 주판알 굴리는 한국당
  • 고우현 기자 (betterman89@gmail.com)
  • 승인 2019.1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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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한국당 나경원 원내대표가 29일 밤 국회를 나서며 취재진과 인터뷰하고 있다. 한국당은 올해 정기국회가 끝날 때까지 '필리버스터'를 통해 패스트트랙(신속처리안건)에 오른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 법안과 공직선거법 개정안을 저지하기로 했다.
자유한국당 나경원 원내대표가 29일 밤 국회를 나서며 취재진과 인터뷰하고 있다. 한국당은 올해 정기국회가 끝날 때까지 '필리버스터'를 통해 패스트트랙(신속처리안건)에 오른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 법안과 공직선거법 개정안을 저지하기로 했다.

자유한국당이 29일 국회 본회의에 상정된 안건 200여건에 대해 무제한 토론인 '필리버스터'(합법적 의사진행 방해)를 신청했다. '유치원 3법', '포항지진 특별법'을 비롯한 각종 민생법안 제정이 무산될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필리버스터를 통해 다음달 10일 폐회까지 정기국회를 멈춰 세우겠다는 것이지만, 이를 바라보는 국민 여론은 차가울 뿐이다

이날 본회의에서는 사립유치원 회계투명성 강화를 위한 유치원 3법은 물론, 어린이 교통안전 강화를 위한 '민식이법'(도로교통법 개정안), 데이터 경제 활성화를 위한 '데이터 3법' 중 일부 법안, 대체복무제 관련 법안 등 주요 민생·경제 법안이 처리될 예정이었다. 그러나 한국당의 필리버스터 신청으로 줄줄이 무산됐다. 

이날 나경원 원내대표는 기자회견을 통해 "국회의장에게 제안한다. 선거법을 상정하지 않는 조건이라면 필리버스터를 신청한 법안에 앞서 민식이법 등에 대해 먼저 통과시켜 줄 것을 제안한다"고 밝혀 비판의 도마에 올랐다. 사실상 선거법을 조건으로 민생법안을 볼모로 삼았다는 것이다.

지난 9월 충남 아산의 한 어린이 보호구역에서 아들 김민식(9)군을 잃은 엄마인 박초희 씨 등 피해 아동 부모들은 국회 정론관에서 즉시 기자회견을 열어 한국당을 강력하게 비판했다.

박씨는 "횡단보도가 있지만 신호등이 없는 곳에 신호등을 만들어 달라고 하고, 큰 대로변에 과속 카메라를 달아 달라는 것인데 왜 민식이가 협상카드가 돼야 하는지 모르겠다"며 눈물을 흘렸다.

스쿨존에서 과속차량 사고로 숨진 민식 어린이의 부모가 29일 국회에서 자유한국당 나경원 원내대표의 필리버스터 관련 기자회견을 직접 지켜본 뒤 눈물을 흘리고 있다. 스쿨존에 과속카메라 설치를 의무화하는 내용의 도로교통법 개정안, 일명 '민식이법'은 이날 본회의에서 처리될 예정이었으나 개회가 지연되면서 오늘 통과가 불투명해졌다.
스쿨존에서 과속차량 사고로 숨진 민식 어린이의 부모가 29일 국회에서 자유한국당 나경원 원내대표의 필리버스터 관련 기자회견을 직접 지켜본 뒤 눈물을 흘리고 있다. 스쿨존에 과속카메라 설치를 의무화하는 내용의 도로교통법 개정안, 일명 '민식이법'은 이날 본회의에서 처리될 예정이었으나 개회가 지연되면서 오늘 통과가 불투명해졌다.

나 원내대표가 국회의장실로 이동하는 가운데 더불어민주당 이재정 의원과 한국당 정양석 원내수석부대표 간 고성이 오가기도 했다. 이 의원이 나 원내대표를 향해 "당신 때문에 사람이 죽어가고 있다"고 하자, 정 원내수석부대표는 "민주당이 민주주의를 죽이고 있다"며 맞섰다.

형제복지원 피해자들도 국회를 찾아 비판의 수위를 올렸다. 부산 형제복지원 사건의 진상을 규명할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 기본법 일부개정법률안'(과거사법)은 법제사법위원회에서 계류하고 있다. 

다만 한국당 내에서도 비판 여론을 의식해 민생법안으로 분류되는 유치원 3법을 시작으로 필리버스터에 나서는 데 대한 반대의 목소리가 흘러나오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나 원내대표는 입장문을 내고 "한국당이 필리버스터를 신청한 안건 중에 민식이 법은 해당되지 않는다. 민식이법은 필리버스터 신청 후 법사위에서 통과됐다"며 "본회의를 열지 않고 있는 국회의장과 민주당이 민식이법 처리를 막고 있다"고 반박했다.

한국당이 정기국회가 끝날 때까지 필리버스터 방침을 고수한다면 내년도 예산안의 법정시한(12월 2일) 내 처리도 불투명해진다. 민생뿐 아니라 예산까지 발목을 잡는 것이다.

당초 한국당이 선거법 개정안과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 설치법안이 상정되는 날부터 필리버스터를 시작할 것이란 전망이 우세했었다. 이들 법안은 다음달 3일 이후 상정이 예고된 상태다.

한국당의 필리버스터 결정은 여야 4당의 공조로 패스트트랙 법안을 처리한다면 수적 열세인 한국당으로서는 이를 막아낼 방법이 없는 상황에서 패스트트랙 법안 상정을 원천봉쇄하기 위한 차원이라는 시각이 일반적이다.

이날 본회의부터 다음달 10일 정기국회 종료일까지 필리버스터를 계속 이어간다면 선거법 개정안과 공수처 설치법안을 최소한 정기국회 회기 중에는 상정할 수 없다는 계산이 당내에서 힘을 받았다는 분석이 나온다.

실제로 한국당이 밝힌 대로 전체 의원 108명 가운데 100명이 법안 한 건을 기준으로 1인당 4시간 이상씩 필리버스터에 들어간다고 계산하면 총 400여 시간이라는 계산이다.

자유한국당이 '유치원 3법'을 비롯해 국회 본회의에 상정되는 안건 약 200건에 대해 '무제한 토론'(필리버스터)을 신청한 29일, 국회 본회의장에 나경원 원내대표, 정용기 정책위의장, 정양석 원내수석부대표, 김무성 의원 등이 모여 있다.
자유한국당이 '유치원 3법'을 비롯해 국회 본회의에 상정되는 안건 약 200건에 대해 '무제한 토론'(필리버스터)을 신청한 29일, 국회 본회의장에 나경원 원내대표, 정용기 정책위의장, 정양석 원내수석부대표, 김무성 의원 등이 모여 있다.

이날 본회의 시작 시점부터 정기국회 폐회(12월 10일)까지 270여시간 남은 점을 고려하면 필리버스터만으로 이번 정기국회에서 선거법 개정안과 공수처 설치법안 상정을 막을 수 있다는 것이다.

여기에 지난 26일 바른미래당 비당권파인 '변화와 행동을 위한 비상행동'(변혁) 측이 선거법 개정안이 본회의에 상정되면 필리버스터 등으로 막겠다고 밝힌 것도 영향을 미쳤으리란 분석이다.

정치권 일각에서는 한국당과 변혁 등 보수 야권이 필리버스터 공조에 들어가는 것 아니냐는 전망도 낭

당 일각에선 유재수 전 부산시 부시장 등에 대한 검찰 수사 결과를 지켜보기 위해 '시간 끌기'에 나선 것 아니냐는 해석도 있다.

검찰의 유 전 부시장 수사가 가시적인 결과물을 내놓을수록 공수처 설치를 반대해온 한국당의 대국민 여론전이 힘을 받을 것이라는 기대 심리가 작용했을 것이른 관측도 있다.

한국당은 그동안 공수처 반대 논리로 '친문(친문재인)무죄·반문(반문재인)유죄'를 내세우면서 공수처가 생기면 친여권 인사의 비위·범죄를 덮는 용도로 쓰일 것이라는 입장이었다.

한국당은 이날 오후 국회 본회의장에서 긴급 의원총회를 열어 "민식이법 발목 잡는 민주당은 각성하라", "민생법안 시급하다 민주당은 들어와라"라는 구호를 외치며 민생법안 처리 지연의 책임을 여당에 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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