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서비스 노조와해 공작에 관여한 혐의를 받는 정금용 삼성물산 대표이사가 17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1심 선고 공판에서 징역 1년 6개월, 집행유예 3년을 선고받은 뒤 전국금속노조 삼성전자서비스지회 관계자 등의 항의를 받으며 법원을 나서고 있다.
삼성전자서비스 노조와해 공작에 관여한 혐의를 받는 정금용 삼성물산 대표이사가 17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1심 선고 공판에서 징역 1년 6개월, 집행유예 3년을 선고받은 뒤 전국금속노조 삼성전자서비스지회 관계자 등의 항의를 받으며 법원을 나서고 있다.

 

이른바 'S그룹 노사전략' 문건이 처음 공개된 지 6년 만에 삼성그룹에서 '노조 와해 공작'이 실제 있었다는 사법부 판단이 나왔다. 그룹 차원의 조직적 노조탄압 범죄라는 사실이 인정돼 관련 임원들이 대거 유죄 판결을 받은 것이다. 

자회사의 '노조와해 공작'에 개입한 혐의로 기소된 '삼성 2인자' 이상훈 삼성전자 이사회 의장이 1심에서 실형을 선고받고 법정에서 구속됐다. 이 의장 외에도 조직적으로 노조와해 공작에 개입한 혐의를 받은 삼성그룹과 계열사 전·현직 임직원들에게 줄줄이 유죄가 선고됐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3부(유영근 부장판사)는 17일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 위반 등 혐의로 기소된 이 의장에게 징역 1년 6개월의 실형을 선고했다.

강경훈 삼성전자 부사장에게도 징역 1년 6개월을 선고했다. 강 부사장은 앞서 에버랜드 노조와해 의혹 사건으로도 징역 1년 4개월을 선고받은 상태다.

이 의장과 강 부사장은 나란히 법정 구속됐다. 원기찬 삼성카드 대표, 박용기 삼성전자 부회장, 정금용 삼성물산 대표 등에게는 징역형의 집행유예가 선고됐다.

검찰은 이 사건으로 삼성전자와 삼성전자서비스 법인을 포함해 총 32명을 재판에 넘겼다. 법원은 이 가운데 26명에 대해 유죄를 선고했다.

최평석 삼성전자서비스 전무(징역 1년 2개월), 목장균 삼성전자 전무(징역 1년), 박상범 전 삼성전자서비스 대표(징역 1년 6개월) 등 전·현직 임직원들도 이날 실형을 선고받고 법정 구속됐다.

삼성전자의 노사 전략을 수립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 노무사와 노사협상 등에 개입한 전직 정보경찰 등 두 명도 실형을 선고받아, 이날 하루에만 7명이 무더기로 구치소에 수감됐다.

이 의장 등 삼성전자 임직원들은 2013년 자회사인 삼성전자서비스에 노조가 설립되자 일명 '그린화 작업'으로 불리는 노조와해 전략을 그룹 차원에서 수립해 시행한 혐의로 기소됐다.

삼성전자와 삼성전자서비스 등 자회사에는 대응 태스크포스(TF)와 상황실 등이 설치돼 전략을 구체화하고 실행한 것으로 조사됐다.

구체적으로는 강성 노조가 설립된 하청업체를 폐업시켜 노조원들을 경제적 어려움에 봉착하게 하고, 노조원에 대한 민감한 정보를 빼돌리고 표적 감사를 벌이기도 한 것으로 검찰은 파악했다.

회삿돈을 빼돌려 사망한 노조원 유족에 무마용 금품을 건네거나, 노사 협상을 의도적으로 지연한 혐의 등도 있다. 이 과정에 경총 임직원이나 정보 경찰이 개입한 사실도 검찰 수사에서 드러났다.

재판부는 이런 혐의 중 일부를 제외한 상당 부분을 유죄로 인정했다.

특히 삼성그룹 미래전략실(미전실)에서 만든 '노사전략 문건'이 삼성전자→삼성전자서비스→협력업체 순으로 이어진 공모관계에 따라 실행됐다는 검찰의 공소사실 구도를 재판부는 그대로 인정했다.

재판부는 "미전실에서 하달돼 각 계열사와 자회사로 배포된 연도별 그룹 노사전략 문건과 각종 보고자료 등 노조 와해·고사 전략을 표방하고 구체적 방법을 기재한 문건의 수를 헤아리기 어려울 정도"라며 "이 문건들을 굳이 해석할 필요 없이 그 자체로 범행의 모의와 실행, 공모까지 인정할 수 있는 것이 많다"고 지적했다.

이어 "피고인들은 이를 실무자들이 아이디어 차원에서 작성한 것일 뿐 고위층에 보고되거나 실제 시행되지 않았다고 하지만, 미래전략실 강경훈부터 최고재무책임자(CFO) 이상훈에 이르기까지 노조 와해·고사 전략을 지시하고 보고받은 증거가 충분하다"고 밝혔다.

아울러 재판부는 "삼성전자서비스는 협력업체를 사실상 자신의 하부조직처럼 운영했고, 수리기사들을 실질적이고 구체적으로 지배해 노동조합법상 사용자에 해당한다"며 "삼성전자와 삼성전자서비스가 노조 세력의 약화를 위해 지배개입을 했다는 점이 인정된다"고 설명했다.

재판부는 이런 판단에 따라 삼성전자서비스가 협력업체 근로자들을 직접 관리하면서 명목상 도급계약을 위장했다는 혐의(파견근로자보호법 위반)도 유죄로 판결했다. 이는 고용노동부와 관련 민사사건의 하급심 결론과 다르다는 점에서 향후 상급심 판단이 주목된다.

다만 재판부는 양벌규정으로 기소된 삼성전자서비스 법인에는 벌금 7천400만원을 부과했지만, 삼성전자에는 무죄를 선고했다.

재판부는 "검찰은 이상훈 의장이 대표자라며 삼성전자도 기소했지만, 이상훈 의장은 CFO이지 법적인 대표자라고 할 수 없다"며 "법률상 대표자가 있는 상황에서 이상훈이 사실상 대표권을 행사한다고 할 수 없다"고 밝혔다.

'삼성전자서비스 노조와해' 사건 관련 1심 선고가 내려진 17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법 앞에서 전국금속노조 삼성전자서비스지회 관계자 등이 입장발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삼성전자서비스 노조와해' 사건 관련 1심 선고가 내려진 17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법 앞에서 전국금속노조 삼성전자서비스지회 관계자 등이 입장발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이날 전국금속노동조합 삼성전자서비스지회는 노조 와해 공작에 관여한 혐의로 기소된 삼성 임직원들에게 1심에서 줄줄이 유죄가 선고되자 "삼성의 전방위적이고 조직적인 노조파괴가 법원을 통해 공식 확인됐다"고 밝혔다.

지회는 서울중앙지법 앞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삼성전자의 불법파견이 유죄로 인정됐다는 것은 특히 의미가 크다"며 "형식적인 도급계약을 하고 실제로는 협력업체 소속 노동자들을 직접 사용하면서 심지어 협력업체 폐업까지도 마음대로 정하던 관행에 제동이 걸렸다"고 평가했다.

이어 "미래전략실과 삼성전자 경영지원실 등 삼성그룹 경영진의 범죄사실을 확인한 것 역시 의의가 크다"며 "자본으로 공권력을 매수해 국가기강을 유린하고 사회질서를 농단할 수 있다는 삼성의 오만불손함이 더는 유지될 수 없다는 사실이 확인됐다"고 덧붙였다.

지회는 또 "사건의 의미가 중요하고 영향력이 광범위한 만큼 검찰 기소와 법원 판단에 아쉬움도 크다"며 "검찰은 노조 파괴공작이 집중됐던 2013년 하반기에 삼성그룹을 최종적으로 책임지던 미래전략실 최지성 실장과 이건희 회장 등 총수 일가를 기소하지 못했다"고 주장했다.

지회는 "상급심에서 더 정의로운 판단이 가능하도록 준비하고 투쟁할 것"이라며 "모든 국민이 삼성 노조 파괴의 진실을 똑똑히 확인할 수 있도록, 다시는 어느 노동자도 헌법이 보장하는 기본권을 실현하기 위해 삶을 거는 일이 없도록 삼성에서 노동조합을 확산 시켜 나가겠다"고 덧붙였다.

한편 삼성전와 삼성물산은 다음날인 18일 노조 와해 의혹으로 임원들이 구속된 것과 관련해 대국민 사과문을 내고 재발 방지를 약속했다.

삼성전자와 삼성물산은 입장문에서 "노사 문제로 인해 많은 분께 걱정과 실망을 끼쳐 드려 대단히 죄송하다"며 "다시는 이런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과거 회사 내에서 노조를 바라보는 시각과 인식이 국민의 눈높이와 사회의 기대에 미치지 못했음을 겸허히 받아들인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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