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망자가 안전할 수 있는 유일한 곳, 성역」
「도망자를 강제를 끌어내는 행위는 신성모독」
「신성모독이 일어날 수 있는 이유는 신성이 없음을 믿기 때문」
「성역의 사회적 기능, 외압이나 빡빡한 스케줄에 우선해야」

 

김태현

사건의 재구성

“나간다고 해놓고 왜 안 나가느냐?”
“약속을 지켜라!”

한상균 민주노총 위원장이 피신해 있는 조계사 관음전 인근에서 터져 나온 일부 신도들의 외침이다. 1차 민중총궐기 집회에 참석했던 한상균 위원장이 조계사로 피신한 지 오늘로 꼭 25일째다.

새누리당의 하태경 의원은 아래처럼 책임론까지 들고 나섰다.

“조계종 화쟁위원회의 중재도 사실상 실패했다고 본다. 지난 20여 일 동안 범법자에게 투쟁 선동 공간을 마련해주고, 약속한 자진출두도 설득하지 못했다. 중재는커녕 한상균 민주노총 위원장의 투쟁지원위원회 역할만 한 셈이다. 화쟁위원회는 한상균 자진출두 실패에 대해 국민 앞에 사죄해야 한다. 아울러 위원장인 도법스님도 자리에서 물러나야 할 것이다.”

이번 조계종 한상균 위원장 사태를 재구성해보면 이렇다.

한상균: 헉헉... 절 좀 도와주세요.
도법스님: 안심하세요. 여긴 절간이니.
한상균: 스님, 정부와 저 사이에 중재를 좀 서주실 수 있으신지요?
도법스님: 뭘 어떻게 하면 되겠소?
한상균: 평화로운 집회를 보장하고, 정부와 노동자 대표가 대화할 수 있게 하고, 노동법 개악을 중단할 수 있도록 좀 도와주십시오.
도법스님: 알았소. 이리저리 얘기를 해보리다.

(얼마 후)

신도회: 한상균 위원장님, 그만 나가주세요.
한상균: 도법스님이 노력을 하고 계시니 조금만 더...,
신도회: 야! 강제로 끌어내!
한상균: 자, 잠깐만요... 안 돼요.
도법스님: 여러분, 기다리세요. 내가 얘기해 볼 테니까.
백기완: 상균아, 절집은 배고픈 놈 밥 얻어먹으러 오는 곳이고, 갈 데 없는 놈 잠자러 오는 곳이야. 밥 얻어먹고 잠 잘 자고 있어.

박준 조계사 신도회 부회장이 한상균 위원장에게 30일 오후까지 나가라고 전달했다며 회견하는 모습 ⓒnewsis

(다시 얼마 후)

도법스님: 여러분, 12월 5일에 열리는 2차 총궐기대회가 평화롭게 끝나면 다음날 나가겠다고 약속을 했어요. 그러니 그때까지 기다려주기 바랍니다.

(또다시 얼마 후)

신도회: 집회도 잘 끝났는데, 왜 안 나가는 거야?
한상균: 아직 나가서는 안 됩니다.
신도회: 이거, 아무래도 안 되겠군. 야, 당장 끌어내!
한상균: 잠깐만요. 지금 당장 나갈 수는 없습니다. 노동개악 처리를 둘러싼 국회 상황이 종료될 때까지 신변을 더 의탁할 수밖에 없단 말입니다!
신도회: 안 돼! 나가! 경찰은 뭐하는가! 한상균을 체포하라!
경찰청장: 흐음... 5단계 중에 이제 고작 1단계일 뿐이니 일단은 기다려봐야겠군. 여차하면...

비호와 성역

비호庇護, asylum란 편을 들어 보호하는 행위를 말한다. 누군가가 정치적 망명 등의 이유로 타국에 보호를 요청할 때, 국제법적으로 비호 요청자에게는 비호를 요구할 법적 ‘권리’가 없고, 비호 국가에는 비호해줄 법적 ‘의무’가 없다. 따라서 비호해줄 생각이 없을 경우, 요청자를 쫓아내면 그만이다.

그러나 시선을 국제법에서 관습법으로 옮겨 보면 상황은 달라진다. 인류사의 오랜 기간 동안 도망자들의 피신처가 되어준 곳이 있다. 신성이 임재한다고 여겨지는 숲이나 동산에서 출발해 삼한의 소도나 고대 히브리 성막, 그리고 예루살렘 성전, 사찰, 교회 등으로까지 이어진 곳, 바로 성역聖域, sanctuary이다.

▲ 인간이 제공한 다람쥐 성역 ⓒwmfe.org

도망자는 성역에서 안전할 수 있었다. 왜냐하면 성역은 신성지이자 보호지라서 성역으로 들어선 도망자를 강제로 끌고 가는 행위는 신성모독으로 간주되었기 때문이다.

종교가 없는 나라는 없기에 성역이 없는 나라도 없다. 특히 16세기 영국은 성역에 대한 관습법으로 유명한데, 중죄를 저지른 도망자가 성역에 들어서면 재판 복종과 영구이국선언 중 택일을 강요받았다. 그리고 선택에 주어지는 시간은 40일이었다.

성역의 사회적 기능

한상균 위원장은 국가원수를 살해한 것도, 테러 행위를 한 것도, 전시 적국에 대한 원조를 한 것도, 전쟁범죄를 저지른 것도, 인류에 대한 범죄로 기소된 것도 아니다. 그는 중범죄인이 아니다. 그럼에도 성역으로 피신했다. 왜 그랬을까?

투쟁판에서 산전수전 다 겪은 그에게 감옥은 두려운 게 아니다. 그가 받고 있는 혐의가 사형이나 무기징역을 다툴 일도 아니라서 생명에도 하등 지장이 없다. 그렇다면 그가 피신처로 조계사를 택한 이유는 ‘공감대 확산’ 또는 ‘이슈화’가 분명하다.

역사상 존재했던 수많은 성역들이 피의 복수와 재판 없는 처형, 사형 남용 등을 막아내는 기능을 수행했다면, 지금의 성역은 국민의 권익과 후퇴하는 민주주의를 막아내는 기능을 수행해야 한다. 이것이 신성으로부터 부여받은, 그리고 성역이 지고가야 할 사회적 기능이다. 그러므로 사회적 기능과 관련된 도망자라면, 최소한 성역에서만이라도 안전할 수 있어야 한다.

▲ 조계사와 한상균 위원장

외압과 일정에 눌린 성역

2015년의 대한민국, 한상균 위원장이 피신처로 정한 조계사 관음전은 분명 성역이다. 조계사가 신성으로부터 성역의 권리를 부여받았는지, 한상균 위원장이 부처님과 진지한 ‘토킹 어바웃talking about’을 했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조계사가 성역인 이유는, 최소한 그가 조계사를 이 땅에 존재하는 최고의 성역으로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것 하나면 충분하지 않은가? 조계사의 사부대중 대부분은 그것으로 충분하다 여기고 있다.

그런데 경찰청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가? 5단계 중 1단계일 뿐이라 지켜보고 있지만, 3단계가 넘어서면 지난 2002년에 발전노조원을 끌어냈던 것처럼 언제든 조계사로 진입해 도망자를 연행할 태세다. 그들이 성역 침범이라는 신성모독을 자행할 수 있는 이유는 신성이 없음을 믿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조계종 신도회의 일부 신도들은 또 무슨 일을 저지르고 있는가? 자신들이 따르는 가르침의 피안으로 도망쳐온 중생을 내치지 못해 안달이 난 나머지, 112에 전화를 걸어 한상균 위원장을 잡아가 달라고 촉구까지 하고 있다. 그것도 16세기 영국보다 한참을 못 미치는 25일조차 견디지 못해서 말이다.

그 일을 주도하고 있는 인물은 박준 조계종 신도회 부회장이다. 2011년에 조계사와 인연을 맺은 그는 대한민국상이군경회 본부이사를 지냈고, 현재 통신장비를 국방부에 납품하는 개인기업의 대표다. 조계사 주지와 면담하고 나온 신도회원 16명이 기자들에게 전달한 문서가 있다. 어떤 내용이 담겨 있을까? 한번 보자.

「...... 박근혜 대통령은 ...... 조계사가 한상균을 즉각 내놓지 않으면 당장 경찰 병력 6,000명과 물대포, 포크레인, 불도저 등을 투입하여, ...... 조계종 총무원을 무자비하게 진압하고, 한상균과 좌익스님들과 국가전복 세력들을 즉각 체포함으로써 박근혜 대통령을 향해 독재라고 떠드는 자들이 다시는 그런 허튼 소리를 하지 못하게 해야 할 것이다. ......」

이 부분에서 나는 냄새가 종교의 냄새인지 정치의 냄새인지, 아니면 종교정치적 아부의 냄새인지는 독자 제위의 판단에 맡긴다.

심지어 어느 조계사 스님은 부처님의 가르침을 정면에서 맞받아치는 언행을 일삼기도 했다.

“한 위원장의 처사는 황당무계하기 그지없다. 앞으로 일정이 많아서 나가주길 희망했는데... 조계사가 가진 소도의 위상을 재고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올까 우려된다. 앞으로 신도를 어떻게 만나야 할지 걱정이다.”

상구보리하화중생上求菩提下化衆生, 즉 위로는 깨달음을 얻기 위해 노력하고 아래로는 중생을 가르쳐 깨달음으로 이끌어야 할 스님이, 성역의 사회적 기능 대신 도망자의 처지와 빡빡한 일정을 비교하다니. 그리고 소도의 위상 재고까지 우려하는 것도 모자라 신도들 만날 일에 앞이 캄캄해지기까지 하다니...

연말이라 모두들 새끼줄schedule이 빡빡할 것이다. 하물며 종단이고 보면 얼마나 정신이 없겠는가. 소도고 뭐고 사찰을 지탱해주는 신도들의 입김도 마냥 무시할 수만은 없는 게 작금의 현실이다. 그러나 그게 다여야 하는가?

자신들이 자처하는 자신들만의 성역은 있되 성자는 찾기 어려우니, 신성 역시 이미 떠나가고 없는 게 아닌가.

▲ 정부의 박해에 저항하며 분신하는 틱 쾅둑 스님/베트남 ⓒfiverupees.com

성역의 사회적 기능을 망각한 채 신성과 했던 첫 약속(초발심)보다 신도들과의 약속을 더 중히 여기며 ‘있는 자’들의 외압에 굴복해 승가의 스케줄이나 따지는 꼴이라니, 상구머니하화신도上求money下化信徒, 곧 ‘위로는 돈을 구하고 아래로는 신도끼리만 화목할 따름’이라는 질책을 듣는다 한들 무슨 할 말이 있겠는가. 2016년에는 마실 나갔던 신성이 정말이지 돌아오시기를 바란다. 합장.

 

김태현 두마음행복연구소 소장, 인문작가, 강연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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