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마 한 마리가 벌어들인 상금만 42억원
제주 이시돌목장 ‘엑톤파크’ 1회 교배료 1200만원
캐나다에서 출생한 명마 '노던댄서'는 12억원 받기도
종마산업은 다이아몬드에 비유되는 부가가치 분야

1회 교배료로 1000만원을 줘야 할정도로 종마산업은 부가가치가 인정받고 있다. 사진은 렛츠런팜 제주 씨수말마사와 종마/제공=한국마사회.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로 세상이 어지럽지만 자연의 흐름은 거스를 수 없는 것. 생명의 시작을 알리는 봄이 다시 오면서 말 생산농가와 목장도 교배와 생산으로 분주해지기 시작했다.

2018년 리딩사이어로 주가를 올린 제주 이시돌목장의 ‘엑톤파크’는 1회 교배료가 1200만원이다. 리딩사이어(Leading Sire)는 한 해 동안 자마(子馬)들이 거둔 상금 합계가 가장 많은 부마(父馬)로 씨수말의 가치를 평가하는 척도가 된다.

그래도 그의 자마이자 대통령배 4연패를 달성한 ‘트리플나인’ 같은 명마 탄생을 바라는 생산자들은 '번호표'를 받아들고 암말들을 줄 세워 대기 중이다. 2014년에 데뷔한‘트리플나인’의 누적 수득상금이 역대 최다인 42억원을 돌파한 것을 보면 그 이유를 쉽게 알 수 있다.

새로운 망아지의 출생을 앞둔 목장주들도 어미말의 산기가 보이기 시작하면 밤잠을 설치기 일쑤다. 주로 조용한 밤에 시작되는 경주마의 출산은 혼자서도 잘하는 야생마들과 달리 사람의 도움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다이아몬드에 비유되는 종마 산업의 부가가치

경주마 생산에서 부가가치의 핵심이 되는 것이 종마산업이다. 경주마는 국제적으로 혈통서를 가진 말들끼리의 자연교배만으로 생산된다. 따라서 경주마 생산은 해외 고가 브랜드의 로열티처럼 생산에 앞서 ‘교배료’라는 수익이 창출된다.

자마들이 우승을 거듭할수록 그 종마의 교배료가 천정부지로 높아지기에 유명 씨수말의 정액 한 방울은 다이아몬드 1캐럿에 비유되기도 한다.

미국과 영국 등 경마선진국에서는 이미 종마산업이 황금알을 낳는 거위로 자리 잡았다.

암말 1두당 교배료가 5억원인 씨수말을 보유하고 있다면 매년 100두의 암말과 교배를 한다고 가정할 때, 그 씨수말 소유주는 연간 500억원의 교배료 수익을 얻게 된다. 20세가 넘어서도 왕성하게 활동하는 씨수말이 많음을 생각할 때, 우수한 말 한 마리가 창출하는 부가가치는 가히 천문학적이다.   

◇ 노던댄서 교배료 100만달러…정액 한 방울이 다이아몬드 1캐럿 값

캐나다에서 태어난 불세출의 명마 ‘노던댄서(Northern Dancer, 1961~1990)’는 처음에 아무도 사겠다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외면받은 말이다.

그런데 미국의 삼관마(트리플 크라운) 경주인 켄터키더비와 프리크니스스테이크스를 잇달아 우승하자 상황이 반전됐다.

현역에서 은퇴 후 씨수말로 1971부터 1983까지 미국과 영국에서 총 다섯 번이나 리딩사이어의 왕좌를 차지하며 경마계의 명문가를 구축한 것이다.

노던댄서의 교배료는 1만달러로 시작해 전성기 때는 100만달러(12억원)까지 치솟았다. 종마의 정액 한 방울이 다이아몬드 1캐럿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였다.

노던댄서의 영향력은 국내에서도 마찬가지다. 현재 활동 중인 2000여 두의 국내산 경주마를 검색하면 두 마리 중 하나는 족보, 즉 혈통표에서 그의 이름을 찾을 수 있다.

과거 수년간 한국 경주마의 리딩사이어 1위를 차지했고, 세상을 떠난 2019년에도 리딩사이어를 수성한 한국마사회의 씨수말 ‘메니피’ 역시 노던댄서의 자손이다.
 
반면, ‘더 그린 몽키(The green monkey, 2004~2018)’는 3대조가 ‘노던댄서’인 명문가의 후예답게 태어날 당시부터 많은 주목을 받았다.
2세 때 경매로 거래된 가격이 무려 1600백만달러로(약 190억원)로, 21년만에 세계 경매시장 최고가를 갱신하면서 경주마로 화려하게 데뷔했다.

하지만 주위의 기대와는 달리 출전하는 경주마다 졸전을 거듭했다. 형편없는 성적에도 불구하고 명문 혈통에 대한 기대로 씨수말로 활동할 기회도 주어졌지만 결국 교배료 5000달러의 평범한 씨수말로 생애를 마쳤다.

현재까지 경주마 한 마리가 벌어들인 역대 최고 상금액이 1500만달러(약 170억원)에 못미치는 것을 고려할 때, 비록 실패로 끝났지만 ‘더 그린 몽키’의 사례는 경마산업에 있어서 종마시장의 가치를 역설적으로 보여준다.  

◇한국의 ‘노던댄서’ 탄생 멀지 않았다

한국마사회가 외국의 우수한 종마들을 꾸준히 수입해 생산에 투입하는 이유도 이와 맥락을 같이한다. 그리고 국산 경주마 개량을 위해 기울인 노력은 가시적인 성과로 이어지고 있다.

꾸준히 국산 경주마가 국제대회의 문을 두드려 온 결과, 2016년 '석세스스토리(마주 이종훈, 조교사 민장기)'가 두바이월드컵 카니발에서 가능성을 보여준데 이어, 2017년 두바이 월드컵 1600m 결승에 ‘트리플나인(마주 최병부, 조교사 김영관)’이 출전하는 쾌거를 이루었다.

2012년 코리안더비에서 우승한 ‘지금이순간(마주 최성룡, 조교사 지용철)’은 작년도에 국산 씨수말 최초로 대상경주 우승마 ‘심장의고동(마주 오종환, 조교사 지용철)’을 배출해내며 한국경마 역사의 새로운 한 획을 그었다.

2014년 대통령배와 그랑프리를 석권한 '경부대로(마주 정광화, 조교사 오문식)’는 2016년부터 씨수말로 데뷔해 매년 50여두의 씨암말과 교배할 정도로 생산계의 기대를 받고 있다.

이처럼 나날이 향상되고 있는 국산마의 경쟁력은 우리나라의 말 산업을 더욱 튼튼히 하고, 종마시장이라는 새로운 부가가치를 창출해내는 열쇠가 되고 있다.

◇ 한국도 조선시대 말 4만 두를 보유했던 저력 있어

말 생산과 육성은 말을 생산하는 거의 모든 국가의 축산정책의 주요 관심 분야다.

우리나라도 마치 최근에야 힘을 쏟는 듯 보이지만 그 역사는 실로 오래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기록을 보면 조선 성종조에 약 4만 두의 마필을 보유했다는 사실이 확인된다. 이는 지난해 우리나라의 전체 보유두수가 약 2만2000 두임을 고려할 때 대단한 숫자이다.

일제강점기 일본의 수탈로 사라지다시피 했던 한국의 말산업은 한국전쟁 이후 원점에서 다시 출발했고, 경주마의 75% 이상을 국산마로 자급하는 수준까지 올라왔다.

하지만 말산업 강국으로 도약하기 위해서는 경주마 생산의 양적 성장에 못지않게 이제는 질적인 발전에 주력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새로운 봄이 왔지만 코로나 사태로 경마팬들이 운집할 수 없는 상황에서, 온라인 발매수단이 막혀 있는 한국경마는 여전히 멈춰 서 있다. 한국경주마생산자협회도 3월 초 예정됐던 경주마 경매를 무기한 연기했다.

이로 인해 말 생산농가도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다. 하지만 더 우수한 국산마를 생산하기 위해 뜨거운 교배시즌을 보내면서 어미 뱃속에서 330일을 기다린 망아지들도 세상을 향해 속속 고개를 내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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