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전쟁 아픔 간직한 '신흥사 성보', 66년 만의 귀환
한국전쟁 아픔 간직한 '신흥사 성보', 66년 만의 귀환
  • 전성남 선임기자 (jsnsky21@naver.com)
  • 승인 2020.0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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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계종-LA 카운티 박물관, '영산회상도', '시왕도' 반환 양해각서 체결
신흥사 영산회상도, 335.2 × 406.4cm, 1755년/사진제공=조계종
신흥사 영산회상도, 335.2 × 406.4cm, 1755년/사진제공=조계종

[스트레이트뉴스=전성남 선임기자] 대한불교조계종(총무원장 원행 스님, 종단)과 LA카운티박물관(관장 Michael Govan, LACMA)는 신흥사(제3교구 본사, 주지 지혜스님) 성보 반환 및 양 기관의 우호협력 및 교류를 위해 지난 16일 양해 각서를 체결했다.

이는 한국전쟁 70주년을 기념하여 지난 1954년에 유출된 속초 신흥사 영산회상도 1점과 시왕도 3점을 원소장처인 사찰에 돌아갈 수 있도록 합의한 것이다.

종단과 LACMA는 지난 2015년부터 우호 협력적인 관계 속에서 불교문화재 반환을 위한 다양한 조사·연구와 양 기관의 교류·협력을 위한 논의를 진행해 왔었다.

이 과정에서 지난 2017년 동화사 염불암 지장시왕도 반환이 이루어졌으며, 한국전쟁 70주년이 되는 올해에는 LACMA에서 신흥사 ‘영산회상도’와 ‘시왕도’를 선의로 종단에 이양하기로 결정했다.

신흥사 영산회상도는 여섯 조각으로 나뉘어져 한국전쟁 직후에 미국으로 유출 돼, 지난 1998년에 LACMA가 구입하기 전까지 그 상태로 개인이 보관하고 있었다.

LACMA는 미국의 많은 사람들에게 한국 불교문화의 우수성을 알리기 위해 여섯 조각으로 나누어진 불화를 지난 2010년에서 2011년까지 2년에 걸쳐 국내 보존처리 전문가인 용인대학교 박지선 교수가 정재문화재보존연구소와 함께 보수를 진행, 현재의 모습으로 복원했다.

LACMA의 한국 문화재에 대한 애정과 보존 노력이 아니었으면 신흥사 ‘영산회상도’는 지금까지 온전하게 보존되기 어려웠을 것이다.

신흥사 영산회상도와 시왕도의 반환은 한국과 미국 간 상호 이해와 문화교류의 모범사례이자 양 기관의 우호증진 및 교류를 통한 유출문화재 환수의 우수사례가 됐다.

이러한 사례가 한국과 미국 국민들에게도 널리 알려질 수 있도록 오는 7월 중에 불화를 한국으로 반환하고, 8월에 환수 고불식을 봉행 할 예정이다.

이번에 합의된 신흥사 불화의 반환은 종단의 환수사례 중 가장 큰 규모이며, 성보문화재 환수를 위한 종단의 다양한 노력이 이룬 성과다.

종단은 앞으로도 한국 불교문화의 우수성을 홍보하고, 해외에 흩어진 성보문화재의 현황 조사·연구를 위하여 해외의 여러 기관들과 우호적인 관계를 구축할 수 있도록 노력할 예정이다.

또한 LACMA에 신흥사 영산회상도 및 시왕도의 보존처리 등을 지원하고, 반환을 위해 많은 자문을 아끼지 않은 문화재청과도 국외 환수를 위해 지속적으로 협력을 강화 한다는 방침이다.

신흥사 영산회상도 보존처리 전 모습, 문화재청 제공/사진제공=조계종
신흥사 영산회상도 보존처리 전 모습, 문화재청 제공/사진제공=조계종

신흥사 영산회상도는 석가모니 부처님이 영축산(靈鷲山)에서 묘법연화경(妙法蓮華經)을 설한 법회를 그린 불화를 뜻한다.

신흥사 영산회상도는 대웅전 목조아미타삼존불좌상(보물 제1721호)의 후불화로 모시기 위해 지난 1755년(영조 31)에 조성됐다.

신흥사 영산회상도는 강원도에서 현존하는 후불화 가운데 가장 시기가 올라갈 뿐만 아니라 불화의 규모와 화격(畫格)에 있어 조선 후기를 대표하는 수작이라 평가할 수 있을 정도로 귀중한 가치를 가진다.

또한 신흥사 시왕도는 명부에서 죽은 자의 죄업을 심판하는 10명의 대왕을 그려 명부전에 모셨던 불화로 지난 1798년(정조 22)에 제작됐다.

명부전에 모셔지는 시왕도는 지장보살도를 중심으로 좌측에 1, 3, 5, 7, 9대왕, 우측에 2, 4, 6, 8, 10대왕을 그린 불화가 걸린다.

이번에 돌아오는 불화는 신흥사 명부전 좌측에 걸렸던 3·5대왕도 1폭, 9대왕도 1폭과 우측에 걸렸던 2·4·6대왕도 1폭이다.

당초 신흥사의 극락전과 명부전에 모셔진 영산회상도와 시왕도는 지난 1954년 5월까지 신흥사에 봉안돼 있었으나, 한국전쟁 직후의 혼란기인 1954년 6월과 10월 사이에 미군에 의해 유출된 것으로 추정된다.

이는 미 통신장교 폴 뷰포드 팬쳐(Paul Buford Fancher)씨가 지난 1954년 5월경에 촬영한 불화가 각 전각에 봉안된 사진과 미 해병대 장교 리차드 브루스 락웰(Richard Bruce Rockwell씨가 1954년 10월경에 촬영한 법당 안에 불화가 사라진 사진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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