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는 제사 지내면 안 된다고 법에 써 있어요?”

즐거운 귀경 ⓒ뉴시스

지난주가 민족의 큰 명절 설이었다. 명절(名節)을 국어사전에서 찾아보면 ‘해마다 일정하게 지키어 즐기거나 기념하는 때’라고 되어 있다. 그런데 즐기는 주체는 누구이며, 무엇을 기념할까?

설이나 추석과 같은 큰 명절이면 흔히 뉴스를 장식하는 ‘명절증후군’을 백과사전에서 찾아보니 ‘명절 때 받는 스트레스로 정신적 또는 육체적 증상을 겪는 것을 말한다. 장기의 귀향 과정, 가사노동 등의 신체적 피로와 성 차별적 대우, 시댁과 친정의 차별 등으로 인한 정신적 피로가 스트레스를 유발한다’ 라고 되어 있다. 명절증후군의 설명에서 알 수 있듯이 여성과 명절은 그리 우호적인 관계는 아닌 듯 하다.

어제 오늘 만난 여성들의 주요 이야깃거리도 지난 설에 있었던 다종다양한 사건 사고들과 명절증후군 이야기였다. 명절증후군이 세간에 회자되기 시작한 것은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여성단체들과 정부에서 ‘명절 함께 보내기 운동’을 하면서 부터, 명절이 가족 모두의 즐거운 시간이 아님을 알게 되었다. 필자에게 가장 기억에 남는 명절 관련 뉴스는 몇 해 전 추석에, 폭풍처럼 쏟아지는 가사노동을 피하고자 며느리들 사이에 가짜 기브스가 유행이라는 보도였다. 한편 우습기도 하고, 한편 씁쓸하기도 했다.

여성, 특히 며느리들에게 명절은 즐길 수 있는 때가 아닌 ‘노동절’이다. 오랜만에 만난 가족들과 만나 서로의 안부를 묻고 이야기를 나누는 그 평범한 일상을 즐길 수 있게 해주는 사람들이 따로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최근 명절 풍속도에 많은 변화가 있는 것 같다. TV에 남성들이 전을 부치거나, 설거지를 하는 모습이 심심치 않게 나오고, 사회 전반적으로 함께 즐기는 명절이 대세가 되어가는 듯 싶다.

우리집도 예외는 아니어서, 벌써 20년째 설거지는 남자들이 다하고, 전 부치기도 점차 남자들 몫이 되어가고 있다. 이제 아이들과 조카들도 다 커서 설거지 담당이 바뀌고 있다. 함께 즐기는 명절이 될 때 모두가 지속하고 있는 시절이 되리라. 함께 즐기는 명절 못지 않은 것이 함께 기념하는 명절이 되어야 한다. 명절은 제사를 통해 조상을 기린다. 여성운동가인 고은광순님은 ‘내 제사 없애기 운동’을 펼치고 있고, 제사 자체가 가부장제를 기념하는 것이라는 비판도 있으나, 나는 유달리 제사에 관심이 많다.

필자에게 제사는 내가 오직 여자라서 차별받는다는 것을 인식하게 된 역사적(?)인 시점이었다. 초등학교 2학년 되던 설 명절 때였다. 지금은 기억이 안나지만 무슨 이유에선지, 나는 그해 설날 꼭 제사를 지내리라 마음먹었다. 아침 일찍 일어나 세수하고, 옷 매무세를 단정히 하고 제사상 차려 놓은 안방에 들어가 앉았다. 당시 큰댁에는 나보다 6개월 빨리 태어난 오빠가 있었는데, 할머니께서는 이미 동네 친구들과 놀러나간 오빠를 찾아오라고 하셨다. 놀기 좋아하는 오빠가 투덜거리며 돌아오자 모두들 제사 지낼 차비를 하였다. 그런데! 제사를 지내기 직전 할머니께서는 나보고 방에서 나가라고 하셨다.

나는 천진하게 “나도 제사 지낼꺼에요”라고 했더니, 할머니께서는 단호하고 명료하게 ‘넌 안돼’라고 하셨다. 나는 물러서지 않고 따지기 시작했다. “왜 전 안 되는데요?, 오빠는 제사 지내라면서 저는 왜 안되요, 저는 착하고 말도 잘 듣고 공부도 잘하는데 왜 제사 못지내게 하세요..” 계속되는 나의 따지기에 할머니께서는 드디어 “넌 여자라서 안돼”라는 결정적인 말씀을 하셨다. 나는 그대로 물러서지 않고, 급기야 울며불며 “여자는 제사 지내면 안 된다고 법에 써 있어요?”라며 따지고 들었다. 그 모든 얘기에도 할머니의 마지막 말씀은 “암튼 넌 안돼” 였다. 나는 그길로 울고불고 하면서 두명의 여동생의 손을 잡고 집으로 돌아 왔다. 그 후로 나는 제사 때나 명절 때 큰집에 가지 않았다. 가더라도 제사가 다 끝난 후에 갔다. 내가 여자라서 차별 받는 현실을 인정하고 싶지 않아서였다.

그렇게 제사는 내가 여자라서 차별받는다는 것을 뼈져리게 느끼게 해주었다. 결혼 후 시댁에서 마주친 제사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시아버님께서는 손수 족보를 쓰실 정도였고, 제사 때면 도포를 차려 입으셨다. 결혼 후 첫 명절을 지낸 후 나는 남편에게 ‘10년내에 제사를 바꿀 것’을 요구했다. 그러나 제사를 바꾸는 것이 어찌 쉽단 말인가? 결혼 8년차 되던 어느 명절 제사에서, 2학년이던 조카가 동서에게 ‘엄마는 왜 제사 안지내’라고 물었고 그게 발단이 되어 나는 돌아오는 차 안에서 남편에게 한바탕 쏘아 붙였다.

며칠 후 시어머님과 전화 통화하면서 명절과 제사에 대한 내 의견을 말씀드렸다. 명절때나 제사 때 제일 고생하는 사람이 누구냐, 나는 평등한 가정을 말하고 실천하자고 하는 사람인데 명절이나 제사를 지내고 나면 나 자신에 대해 자괴감을 느낀다, 너무 스트레스 받아서 가기가 싫다... 등등. 우리 엄마 말씀에 따르면 참 피곤한 며느리란다. 내 말씀을 다 들은 시어머니께서는 시아버님께 말씀드렸고, 우여곡절 끝에 바로 다음 명절부터 모두다 처음부터 끝까지 함께 기념하는 명절이 되었다. 그리고 그날 집으로 돌아오는 차안에서 나의 명절증후군이 가사노동의 집중으로 인한 것이 아님을 알게 되었고, 너무나 기쁜 마음으로 명절을 지냈다. 나는 이제 명절이 별로 부담스럽지 않다. 아마도 함께 즐기고 기념하기 때문이리라. 이젠 명절이 모든 사람들이 함께 즐기고 기념해, 모두가 오래도록 지키고 싶은 시절이었으면 한다.

 

 

정춘숙 한국여성의전화 이사, 사회복지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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