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약은 ‘대통령’이 하고, 부담은 ‘교육청’이 하라고?

▲ 지난 3월 국회 교육토론회에서 발제를 하고 있는 김승환 교육감
김승환 교육감은 재선에 성공한 전북교육감으로, JTBC-리얼미터가 주관하는 ‘전국시도교육감 직무수행평가 여론조사’, 다시 말해 ‘월간 정례조사’에서 지난해 10월부터 올해 3월까지 연속 6개월 1위를 한 교육감이다. 그리고 무상보육(누리과정)의 중심에 서있는 교육감이다.

만약 학교장이 큰소리로 약속해놓고 은근슬쩍 학부모에게 부담하라고 한다면?

우리나라는 엄연히 교육과 보육이 분리되어 있는 나라이다. 교육은 ‘교육부 -> 교육청 -> 유치원’으로, 그리고 보육은 ‘보건복지부 -> 시(청)도(청) -> 어린이집’으로... 다시 말해, 유아교육은 ‘유아교육법’에 의해 유치원이, 보육은 ‘영유아보육법’에 의해 어린이집이 맡는 방식으로 교육과 보육이 이원화돼 있다. 따라서 유아교육법 적용을 받는 유치원은 교육기관으로 규정되어, 처음부터 소관부처를 교육부로 정했고, 교육감의 지도감독을 받고 있는 반면, 영유아보육법상 보육은 보건복지부 소관이고, 그 권한이 시도지사에게 위임되어 있기에 어린이집은 현재 시도지사의 지도 감독을 받고 있다.

오랜 세월동안 아무런 문제가 없었던 이것이 그런데 박근혜정부 들어서면서 갑자기 혼란스러워진다. 박근혜정부가 영유아보육법시행령을 개정하면서 ‘어린이집 3~5세 아동 보육·교육 통합과정(이른바 누리과정)을 제공하는데 필요한 예산 전액을 교육청예산으로 부담해야 한다’는 조항을 신설했기 때문이다. 교육감들 입장에서는 본인들의 공약도 아닌 대통령의 공약인데, 더구나 교육감에게 감독권조차 없는 어린이집을 위해 교육청예산의 상당액을 쏟아 부으라 하니 마른하늘에 날벼락이 아닐 수 없었다. 환경부가 부담해야 할 예산을 시도지사에게, 학교장이 큰소리로 약속해놓고 은근슬쩍 학부모에게 전가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아래는 김승환 교육감과 대담한 내용을 일문일답으로 정리한 것이다.

 

‘누리과정’이라는 용어부터 쓰지 말자. ‘무상보육’이라고 하자!

- ‘누리과정’이라는 용어부터 설명해 달라.

=> 누리과정은 박근혜 대통령이 후보시절 공약한 내용, 만3~5세 어린이집 무상보육해주겠다는 것, '누리'라는 프레임에서 탈출할 필요가 있을 것 같다. 새누리의 누리인데, 정권 차원에서 우려먹을 대로 우려먹고, 시행령 통해 지방교육예산으로 떠넘겼다. 정권의 부도덕성을 그래도 드러낸 사례다.

- 한동안 무상보육(누리과정) 예산편성을 못하겠다고 중앙정부와 각을 세웠다. 즉 “무상보육에 대한 국가책임을 명확히 하지 않은 상태에서 교육청이 빚을 내 예산을 편성하는 것은 아니다"라는 입장이었는데, 왜 이런 입장을 취했는지?

=> 영유아보육법 시행령 등은 정확히 표현하면 법률에 위반되는 시행령이다. 지방교육재정교부금법 제1조에 따르면. 교육청 재원은 교육행정기관에만 쓸 수 있도록 되어있다. 따라서 교육기관이 아닌 다른 곳에 지출하면 업무상 배임이다. 시행령이 상위법을 유린하고 있다. 헌법과 법률을 준수해야 할 교육감이 법률위반을 할 수 없지 않느냐?

- 전북뿐만 아니라 전국적으로 지지하는 여론과, 성토하는 여론이 형성되었다. 특히 지난 5월 15일 전북지역의 한 국회의원은 “어린이집 문제는 박근혜대통령의 책임이 아니다. 다른 지역은 다 하는데 전북만 안 하는 것은 말이 안 된다. 김 교육감이 누리과정 예산 편성 요구를 수용하지 않는다면 내가 직접 나서 김 교육감의 퇴진을 요구할 것이다.”라는 발언도 했다고 하고, 도의회 누리예산지원특위 정위원장은 “김 교육감은 자신이 아니면 박근혜 정부를 견제할 수 없다는 순교자적인 생각을 하는 듯하다. 그러나 이제 김승환 교육감은 더 이상 고행길을 가는 순교자의 모습이 아니다. 그보다는 오히려 ‘누구의 말도 나를 꺾을 수 없다’는 자신감을 가진 소영웅의 모습을 보이는 듯하다.”라고 했다는데, 이때 심정이나 소회는?

=> 전방위적으로 융단포격을 하다 보니 상처도 받고 스트레스도 받지만, 그러나 가는 길 옳다 여겨 크게 흔들리지 않는다. 공격하는 사람들이 ‘아이들을 차별한다’고 하는데, 차별의 개념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듯하다. 차별이란 ‘동일한 관할권 안에 들어있는 여러 대상을 상대할 때, 정당한 이유 없이 다른 취급하는 것’ 아니냐? 그러나 어린이집 관할과 유치원 관할이 다르다.

관할이 다른데 어떻게 차별이라 하느냐 전혀 동의할 수 없다. 기본적인 개념부터 오해하고 있다. 특히 전북 어린이집 아이들이 차별받고 있다는 것은 억지이고 허위사실이다. 월 22만원 보육비는 계속 결제되고 있다. 교육청이 예산편성하지 않음으로 문제가 생긴 부분은, 보육교사 수당 월 5만원, 어린이집운영자 운영비 월 2만원 등 어린이집 종사자들이다. 제발 사실에 근거해 공격했으면 좋겠다.

- 지난 6월 23일, 문재인 대표와 면담을 가진 뒤 무상보육(누리과정) 예산에 대한 공동선언’을 전격 발표했고, 25일에는 기자회견을 통해 "전북교육청은 도의회와 조율해 빠른 시일 안에 어린이집에 지원할 누리과정 예산 편성안을 제출하겠다"고 밝혔는데, 왜 입장이 바뀐 건가?

=> 이틀 전에 갑작스럽게 추진됐다. 곽노현 전 교육감이 중간에서 다리역할을 했다. 곽 전 교육감은 지방채 발행을 말했지만, 문대표와의 공동선언에는 “협력 등 여러 가능성을 열어놓겠다” 라고만 했고, 국민운동본부 등과의 사전 조율 및 최소한의 절차가 필요했고, 25일 기자회견 통해 긴축재정을 원칙으로 하고, 지방채발행은 최후의 수단이라고 했다.

- 전북 도의회가 겉으로는 환영하면서도 속으로는 불편한 모양이다. 김광수 전북도의회 의장은 김 교육감과 문재인 새정치민주연합 대표와의 회동에 대해서는 "적절치 않았다"고 비판했다. 문재인 대표에 대해서도 "당은 계통이 있다. 예산 심의권은 도의회에 있고, 전북위원장과의 공동 기자회견도 잘 알고 있을 텐데 마치 깜짝쇼처럼 와서 교육청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휙' 올라가는 것은 지방정치를 하는 입장에서 불만스럽다"고 꼬집었다.

=> 문재인 대표를 만나 한 순간에 입장이 바뀐 것은 아니다. 문재인 대표가 당 차원에서 내년부터 원칙대로 중앙정부가 예산을 부담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약속을 하지 않았다면 공동선언은 나오지 않았을 것이다. 영유아보육법 시행령을 폐기하겠다는 것, 누리과정 예산 의무지출 경비로 강제하는 것을 막아내는 것, 두 가지 약속을 했기 때문이다. 문재인 제1야당대표가 지방까지 와서 한 약속이기에 신뢰한다.

 

- 양용모 전북도의회 교육위원장도 “김승환 교육감이 우리 뒤통수를 때린 격”이라고 했고, 새누리당 전북도당은 "김 교육감이 보인 '소신인 듯 소신 아닌 소신 같은' 행보에 실망하지 않을 수 없다"고 했는데, 경색국면인 의회와의 관계는 어떻게 풀어나가실 것인지?

=> 불만의 소리가 이유 있다고 본다. 지방정치권과의 협의절차를 생략한 채, 중앙정치권과의 접촉 통해 결론을 맺었다고 보는 것 같다. 오해를 풀도록 노력하겠다. 문재인 대표는 제1야당 대표로 다른 영역에서 약속할 수 없는 것을 약속했다. 시행령 폐기와 의무지출 경비로 강제하는 것을 막아내는 것은 중앙정치영역의 약속이다. 그동안 나를 공격하고 압박했던 분들과는 전혀 다른 안이다.

 

우리나라 헌법상 대통령 거부권은 필요하지 않아, 국회는 권한쟁의심판을 청구해야

- "새정치민주연합이 무상보육(누리과정) 논란의 근원인 시행령 폐기를 위해 국회 차원의 법률적 해결책을 강구하는 일에 최선을 다할 것이라는 약속이 있었다"고 했는데, 박대통령의 거부권 행사로, 국회법 개정이 사실상 무산된 마당에 과연 이 약속이 지켜지겠는가?

=> 우리 헌법상 대통령 거부권은 필요하지 않다고 본다. 미국의 경우, 연방정부가 법률안을 낼 수 없기에 거부권을 부여한 것인데, 우리나라의 경우 법률안 낼 수 있는데 거부권까지 주는 것은 이중적이다. 시행령은 국회가 제정한 법률 안에 복속되며, 시행령이 그걸 넘어서려고 하는 것은 민주주의 국가에서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정부가 국회법 개정안에 대해 거부권을 행사한다고 해도 국회는 시행령에 대한 통제권을 가지고 있고, 그 통제권을 유효적절하게 행사하면 된다. 현재 상태의 국회법으로도 얼마든지 시행령에 대한 통제를 할 수 있다. 국정감사권, 대정부질문권, 상임위 출석답변요구권뿐만 아니라, 입법권 침해이기 때문에 헌법재판소에 권한쟁의심판을 청구할 수도 있다.

정세분석을 해보면, 내년 4월 총선, 각 정당은 선거 이슈 내놓게 될 것이고, 무상보육 문제가 부각될 듯하다. 야당도 더는 프레임 전쟁에서 밀릴 수 없기에 “약속파기 정권”이라는 프레임을 짤 것이고, 야당도 다른 각오로 대처하리라 믿는다.

- “다른 시도교육감들과 현재 협의를 계속 진행하고 있다”며 “내년에는 올해와는 매우 다른 양상이 나올 것이며 아주 강한 전선이 형성될 것”이라고 했는데, 과연 다른 교육감들이 공동전선을 형성해 주리라 보는가? 왜냐하면 사실 교육감들은 작년 10월만 해도 일치단결하여 시행령의 신설조항이 영유아보육법상 아무런 근거가 없으며 그렇기 때문에 어린이집 보육예산을 편성할 수 없다고 결의한 것으로 알고 있다. 그러나 정부의 밀어붙이기와 어린이집 종사자들의 반발에 직면하자, 교육감들은 그 후에 각자 지역사정을 내세우며 지방채발행 등을 통해 관련 예산을 편성하며, 울며 겨자 먹기로 타협의 길을 걸었다.

=> 이대로 가면 지방교육재정은 파탄난다. 그것을 정부도 잘 안다. 현 정권은 그것을 기도하는 것으로 보인다. 그렇게 읽혀진다. 진보성향의 교육감 13명 중 10명 정도는 함께 해 주리라 믿는다. 이 사안으로 정부의 지시를 따르지 않는다 하여, 교육감들을 압박할 수 있는 법적수단은 없다. 직무유기죄로 고발도 못한다. 다른 교육감들을 이해시키고 설득시키고 있다.

- 지난 3일 국회에서 전국시도교육감협의회와 문재인 대표와 만나 몇 가지 합의를 한 것으로 안다. 어떤 내용인가?

=> 첫째, 보육과 유아교육 국가완전책임제는 박근혜 대통령의 대선공약이기 때문에 누리과정 예산을 전액 국고로 편성할 수 있도록 함께 노력해 나가기로 했고, 둘째 누리과정 예산 파행은 관계 법률을 위반한 시행령 개정에서 비롯됐다는 데 인식을 같이 하고 관계 법률 정비를 통해 누리과정 예산 문제를 해결하기로, 셋째 누리과정에 필요한 예산 확보 방안과 지방교육재정 확대를 위해 사회적 논의기구를 구성 운영하는 방안에 대해서도 협력하기로, 그리고 마지막으로 높은 교육이 안정적으로 이뤄질 수 있도록 지방교육재정교부금의 재원을 내국세 총액의 20.27%에서 25% 이상으로 상향 조정하는데 공동 노력하기로 했다.

 

어디서 이런 당당함과 용기가 솟구치는 것일까? 법률(상위법)을 유린한 시행령(대통령령)이라 따를 수 없었고, 대통령의 공약인 무상보육 재정 부담을 교육청에 떠넘기는 것도 부당하고, 더 나아가 지방교육재정 파탄을 통해 직선교육감 죽이기를 하려는 정치적 의도가 숨어있기에, 도저히 정부의 뜻을 따를 수 없다는 김승환 교육감, 그와 대화를 주고받는 동안 “작은 거인”, “부드러운 직선”, “따뜻한 카리스마”라는 말들이 떠올랐다.

교육문제는 교육적 안목과 교육논리로 풀어야 함에도, 정치논리, 경쟁논리, 힘의 논리가 여전히 작동하고 있다는데 너무 가슴 아프다. 박근혜 대통령은 진정 성공하는 대통령이 되고 국민들로부터 박수를 받고 싶다면, 지금이라도 상위법을 위반하고 있는 시행령을 철회하고, 본인이 후보시절 공약한 것이니만큼 무상보육 예산을 중앙정부가 부담하고, 더 나아가 이미 보편적 복지로 뿌리내린 무상급식도 50% 정도는 통 크게 중앙정부가 부담해야 할 것이다. 그게 국민통합이고 국민행복 아니겠는가?

 

 

교육을바꾸는새힘 대표
 제8대 교육의원
김형태 riulkht@hanmail.net

http://cafe.daum.net/riulkht 
<행복한 변화, 새로운 교육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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