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실 예산안 처리 후 임시국회 올스톱
민생법안 외면 정치셈법만 난무

‘밀실 야합’ 논란을 일으켰던 예산안이 통과되자마자 국회는 개점휴업에 들어갔다. 지난 11일 소집된 임시국회 일정은 23일까지다. 개혁·민생법안은 산더미처럼 쌓여있다. 그런데 이를 처리해야 할 국회의원들이 없다. 말 많고 탈 많았던 예산정국에서 소리치던 그 많던 의원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여소야대든 다당체제든 되풀이 되는 구태는 달라진 게 하나도 없다. 예산심의 과정은 투명하기는커녕 정실·밀실·부실이라는 ‘3실 심사’의 종합세트라는 비판이다. 2018년 예산안은 밀실에서 주고받는 정치권의 뒷거래로 ‘가치’ 논쟁은 사라졌다.
 
국회선진화법 시행 이후 처음으로 시한을 넘기는 나쁜 선례도 남겼다. 다수당 횡포를 막기 위해 여야 합의로 만든 법을 스스로 저버렸다. 400조가 넘는 나라살림이 중대선거구제 개편, 지방선거와 개헌 국민투표 등 정치적 이슈에 함몰됐다. 제 1야당인 자유한국당은 본회의조차 불참했다.
 
부실투성이 예산안에 대한 반성은커녕 통과되자마자 너도나도 자랑질에 나서고 있다. 국회의원들의 지역구 사무실 앞에는 커다란 현수막이 내걸렸다. 지역구 현안 사업에 예산을 유치했다고 떠들썩하게 붙여놓았다. 내년 6월13일 치러지는 지방선거 홍보전이다.
 
국회는 자신들이 받을 세비를 올리고 보좌진을 늘렸으며 특수활동비는 꼬리표만 바꿔 다는 꼼수를 부렸다. 예산국회 막판에는 선심성 지역구 사업을 챙기는 주고받기가 기승을 부렸다.
 
실례를 보자. 전북 남원-임실-순창이 지역구인 이용호 국민의당 정책위의장은 예산안 처리 협조를 무기 삼아 순창 밤재터널과 임실 옥정호 수변도로 예산을 확보했다고 자랑했다. 더불어민주당 대표비서실장인 김정우 의원은 수도권 경부선 급행전철 사업을 당초 정부안보다 100억 원을, 자유한국당 예결위원인 민경욱 의원도 인천발 KTX 사업 예산을 100억 원 더 따냈다는 후문이다.
 
이런 탓에 결국 SOC 예산이 당초보다 1조3000억 원가량이나 늘어났게 됐다. 다시 말해 정부가 올해 예산 대비 20% 줄여 잡았던 SOC 예산은 국회 심사 과정에서 막판까지 쇄도한 의원들의 이런 지역구 예산 민원 요청들로 결국 19조 원으로 늘어나게 됐다. 의원들이 쪽지를 전달하는 것도 모자라 ‘카톡 청탁 문자’가 회의 중에 예결소위 간사와 실세 의원들 휴대전화로 수시로 들어갔다는 얘기도 나돈다.
 
20대 국회에서 상임위원회에 계류된 법안은 현재 7285건에 이른다. 20대 국회 들어 발의된 법안 1만394건 중 70%가 국회 처리를 기다리고 있다. 이대로 가면 12월 임시국회는 '빈손 국회'로 종료하거나, 내년을 넘기기 어려운 현안 처리를 위해 '원포인트' 본회의를 열 가능성이 높다.
 
임시국회는 그야말로 ‘임시’로 전락될 상황이다. 여야 중진들은 너나 할 거 없이 해외일정에 전념하고 있다. 지역구로 내려가 선심성 예산 따내기 홍보에 열을 올리고 있다.
 
재적 의원의 20% 이상이 자리를 비운 상황이다. 예산국회가 끝난 직후 치뤄지는 임시국회는 매번 의원들의 지역 예산 편성 홍보에 개점휴업을 반복해 왔다는 점에서 올해도 다를 것이 없다는 평가다.
 
문제는 여야가 합의로 일정에도 없던 임시국회 일정을 잡아놓는 등 '일하는 국회' 티는 내지만, 그동안 떠들썩하게 준비했던 고위공직자비리수사처(공수처) 신설법과 국정원법, 방송법 등 주요 쟁점법안에 대한 논의는 시작조차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한일의원연맹 소속 여야 의원 58명도 임시국회 기간인 지난 12일까지 2박3일 일정으로 일본을 방문하고 돌아왔다. 앞으로도 국회에선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 소속 여야 의원 7명이 3박4일 일정으로 중국의 상하이와 선전, 홍콩을 방문한다.
 
정무위 역시 주말부터 3박4일간 일본 도쿄와 베트남 호찌민, 홍콩과 싱가포르 등을 둘러볼 예정이다. 교육문화체육관광위와 기획재정위, 여성가족위 역시 별도의 출장 계획을 갖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국회 수장인 정세균 의장도 중남미에 위치한 페루를 방문하기 위해 출국했다. 오는 20일까지 무려 6박8일간의 일정이다. 여당인 민주당의 추미애 대표도 임시국회 중 방러 일정을 이어갔다. 제1야당인 한국당의 홍준표 대표는 일본을 방문하면서 김광림ㆍ김석기ㆍ박성중ㆍ강효상 의원 등과 동행했다.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와 유승민 바른정당 대표도 지역 행보를 이어 가면서 국회를 비웠다. 여야를 막론하고 민생입법이나 시급한 현안에서 한 발짝씩 물러나 있다.
 
국민의 세금으로 돈 잔치를 벌이고 후안무치하게 그걸 떠벌리고 있다. 정작 국회에서 처리해야 할 산적한 문제들은 외면한 채. 제 잇속을 챙기고는 난 후엔 국가 미래에 대해서 모두 회피하고 있다. 직무유기다. 그리고 오래된 적폐다.
 
국회와 국회의원들은 누구를 위해 무엇 때문에 존재하는지 다시 한 번 돌아봐야 한다. 국민의 대의기관이 국정농단을 하고 있는 것이나 다름없다. 그들의 대국민 사기극이나 다름없는 이 코미디를 어떻게 봐야 할까?
 
촛불민심이 향하는 곳은 박근혜 정권만이 아니었다. 정권 심판에 이어 그 화살은 국회로 향할 것이란 자명한 진실 앞에 그들은 너무나 초연하다. 그들이 보여주는 지금의 행태는 자괴감을 넘어 국회 무용론까지 나온다.
 
국민의 혈세로 살아가는 그들이 국민 앞에, 역사 앞에 민주주의를 농락하고 있다. 알량한 선심성 정치로 국민을 현혹하고 있다. 정치 셈법에만 눈멀어 대한민국의 미래를 훔치고 있다. 어쩌면 대의 민주주의의 가장 큰 도적은 국회의원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 정녕 기우이길 바라지만 말이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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