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셀프디스” 캠페인 정치

[사진제공=뉴시스]

“셀프디스” 캠페인 정치 

새정치연합이 야심차게 영입한 브랜드 전문가 손혜원 홍보위원장의 첫 작품이 발표됐다. 이른바 ‘셀프디스 캠페인’이다. 셀프디스는 Self(자신)와 Disrespect(무례)를 결합한 합성어로 자신의 치부나 약점을 드러내 상대방의 웃음을 유발하거나 공감을 얻는 신조어다. 새누리당은 이미 지난 2013년 10월 당과 국민 간 소통을 강화하기 위해 ‘새누리를 발전시키는 젊은이들의 리얼디스’ 공모전을 개최하기도 했다. 2명씩을 묶어서 내보내는 이번 캠페인의 첫 주자는 2.8 전당대회에서 당권을 두고 한판 승부를 벌였던 문재인 대표와 박지원 전 원내대표다. 문 대표는 자신의 카리스마 부족을, 박 전 원내대표는 과도한 호남 언급을 문제점으로 밝히며 이를 당 홈페이지와 SNS에 게시했다. 문 대표는 “강한 카리스마를 보여드리지 못해 죄송합니다.”라는 글에서 30년 간 인권 변호사로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듣는 태도에 익숙해지다 보니 당대표가 된 후 많은 사람들이 자신을 답답해한다고 반성했다. 또한 “평생 쌓인 신중한 성격이 하루아침에 고쳐지기는 쉽지 않으나 당이 개혁하듯 저도 분발할 것이다. 더욱 강해지는 카리스마를 보여주겠다.”고 다짐했다. 자타가 호남맹주로 인정하는 박 전 원내대표는 “호남, 호남 해서 죄송합니다.”라는 제목의 반성문을 남겼다. 그는 “호남이라 눈치보고, 호남이라 소외당했습니다. 같은 대한민국이건만 호남은 늘 뒷전이었습니다. 지금껏 차별받고 소외받은 호남을 저라도 챙겨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짧지 않은 세월, 호남 타령만 해서 죄송합니다. 이제 나라, 나라 하겠습니다. 국민, 국민 하겠습니다.”라며 그동안의 호남 타령에 대한 심경을 토로하고 앞으로는 지역 차별이 없는 대한민국을 위해 정치를 하겠다고 약속했다.

전당대회 컨벤션 효과로 한 때 새누리당에 9% 차이까지 바짝 다가갔던 새정치연합의 지지율(한국갤럽 기준)이 다시 절반 수준(7월 4주)으로 주저앉았다. 만연된 당내 계파 갈등을 극복하지 못하고 혁신위원회 활동도 지지부진하면서 국민의 기대에 부응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특히 유승민 전 원내대표를 찍어내고 수직적 당청관계를 복귀시킨 박근혜 대통령의 국정운영지지도가 30%(한국갤럽 기준) 전후를 넘나들고 있는데도 그 반사이익을 누리기는커녕 점점 뒷걸음질을 치고 있는 한심한 꼴이라니. 새정치연합 정당지지도는 텃밭인 호남에서도 고작 28% 수준이다. 주요 지지기반인 20~40대 연령층도 20%대에 머물고 있다. (이상 한국 갤럽 기준) 얼마 전에는 새정치연합 전북도당과 전남도당이 비공개로 실시한 여론조사 결과가 새어나오기도 했는데, 창당도 하지 않은 유령 호남신당에게 각각 12%(전북)와 15%(전남) 가량 뒤쳐졌다고 한다.

 

진보의 땅 호남

역사적으로 호남은 어떤 곳인가? 호남은 대한민국에서 가장 진보적이다. 근현대사를 통틀어 호남만큼이나 굴곡을 남긴 지역도 드물다. 120년 전 갑오농민군이 반봉건 반외세의 기치를 들고 처음 죽창을 들었던 곳이 바로 전라도 고부 땅이다. 이들은 그 후 항일 의병항쟁의 중심세력이 되었고, 3.1 독립운동으로 계승 발전시킨다. 1905년 을사늑약 체결에 반대하여 일어난 전라도 태인의 최익현 부대는 이 당시를 대표하는 의병이었다. 이후에도 임병찬 의병장과 호남창의회맹소를 이끈 기삼연 대장, 김동신·고광순 의병장, 의병창의동맹의 이석용, 대동창의단을 이끈 전해산 등의 의병장을 배출한 호남지역은 최후의 1인까지 일제에 저항하였다. 대한민국 정부 수립 이후에도 호남의 진보성은 한 치의 흐트러짐이 없었다. 4.19 혁명의 도화선이 된 3.15 부정선거 규탄시위에 앞장선 김주열 열사의 출신지는 전북 남원이었다. 한국 현대사 최대의 사건인 5.18 광주민주화운동은 바로 호남의 한복판에서 전두환을 중심으로 한 신군부세력의 무력 권력 장악에 대한 저항으로부터 시작됐다. 이 운동은 이전까지 소외받아온 노동자, 도시서민 등 민중세력이 역사의 주체로 확고하게 자리 잡는 계기가 되었다. 1997년 김대중을 앞장세워 최초의 평화적 정권교체를 이룬 이들은 바로 호남인이 주축이었다. 5년 뒤 노풍을 발화시켜 93.2%의 높은 지지를 보이며 참여정부를 탄생시킨 주역도 역시 호남지역이었다.

최근에도 호남의 진보성은 더욱 발전하고 있다. 지난 19대 총선 당시 통합진보당 정당투표 득표율은 평균 10.3%였다. 삼성정밀화학, LG화학, 현대자동차, 현대중공업, SK케미칼, S-OIL 등 주요 대기업 사업장과 민주노총 조합원이 밀집해있는 울산시가 16.3%였다. 그러나 울산시와 유권자수는 비슷하지만 대형 사업장은 아시아자동차 정도에 불과한 광주시가 울산보다 더 높은 18.6%를 기록했다. 이는 매우 놀라운 사실이 아닌가? 지난해 연말 헌법재판소의 통합진보당 해산결정 이후, 금년 1월 한국갤럽이 여론조사를 실시했는데 우리 국민 평균 58%가 이 판결이 잘된 결정이라고 응답했다. 특히 대구경북 77%, 충청권 69% 등은 압도적이었고 모든 권역에서 과반수를 넘겼다. 그러나 유독 호남권만큼은 잘된 판결이라고 응답한 비율이 39%에 그쳤다. 호남지역이 진보의 본산임을 입증하는 유력한 증거이다. 호남은 이제 더 이상 대구경북처럼 특정정당이 완벽하게 지배하는 지역도 아니며 사실상 다당체제에 들어서있다. 14~15대 총선 당시 전북에서 황인성(민자당), 양창식(민자당), 강현욱(신한국당) 등 보수계열 의원들이 당선됐고 지난해 재선거에서는 새누리당 이정현 의원 당선으로 전남까지 확대됐다. 통합진보당 의원도 19대 총선 때 강동원(전북), 김선동(전남) 의원이 민주통합당 후보와 치열한 경쟁을 뚫고 당선됐다. 작년 지방선거에서 새정치연합의 1당 독주를 저지한 기초단체장의 41.7%(36석 중 15석)가 무소속이다. 지난 4.29 광주 보궐선거에서 압도적으로 당선되어 신당 창당을 준비 중인 천정배 의원도 무소속이다.

정치사회적 이슈에 대한 호남인의 사고는 더 더욱 진보적이다. 매시스 컨설팅(대표 김헌태) 창립 기념 여론조사(5월 17일~18일)를 보면, 최근 문재인 대표가 자랑스럽게 출시한 ‘유능한 경제정당’에 대하여 ‘분배를 잘하는 정당’이 ‘성장을 잘하는 정당’보다 우세하다는 답변이었다. 지역별로는 호남권에서 56.5%가 ‘분배를 잘하는 정당’은 바로 ‘유능한 경제정당’이다. 2010년부터 무상급식 등 보편적 복지가 확대되면서 ‘분배를 잘하는 정당’이 곧 복지를 확대하는 정당으로 인식되고 있는 것이다. 한국 갤럽이 7월 7~9일 사이 실시한 사형제 폐지에 관한 여론조사에서 국민 27%가 폐지 찬성이었는데, 호남은 이보다 훨씬 높은 37%가 찬성이었다. 7월 10~11일 사이 돌직구뉴스가 조원씨앤아이에 의뢰하여 실시한 조사에서도 사형제 폐지 찬성은 전국 평균이 25.6%였는데, 호남권이 가장 높은 34.6%였다. 같은 여론조사에서 대체복무제 찬성이 전국 평균은 40%였지만, 역시 호남은 47.4%로 가장 높았다.

이상을 살펴보컨대 호남은 항상 이 나라와 사회를 변화 발전시키는데 앞장서온 견인차였다. 정치사회적 이슈를 선점하지만 행동까지 마다하지 않은 돌격부대이다. 그런데 이런 자랑스러운 호남을 두고, 야당의 근거지인 호남을 모욕하며 호남 호남해서 죄송하다고? 번지수를 잘못 잡아도 한참 잘못 잡았다. 단지 박지원 전 원내대표의 말만이 아니다. 당내에 만연된 전국정당화론이 아주 고질적인 문제이다. 문재인 대표가 매번 강조하는 전국정당화는 곧 탈호남의 동음이의어일 뿐이다. 새정치민주연합은 이런 깜짝 이벤트로 호남정신을 모독하지 말라. 광주 영령들이 지하에서 통곡한다. 민주, 인권, 평화의 광주 5월정신은 이미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됨으로써 대한민국을 넘어서서 세계화된 지 오래다. 새정치민주연합은 호남 호남해서 죄송해할 것이 아니라 호남정신, 5월 광주정신을 더 더욱 드높이고 실천할 방도를 찾아야 한다. 그렇지 않는다면 당장 내년 총선에서 지금의 제 1야당의 지위도 위태로울 것이다.

최 광 웅

참여정부 인사제도비서관
민주당 조직사무부총장
현 데이터정치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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