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투'(#MeToo·나도 피해자다) 열풍에 페미니즘이 전국민적 이슈로 떠올랐다. 페미니즘을 둘러싼 논쟁이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중심으로 확산되고 있지만, 페미니즘의 정확한 의미를 아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을 듯 싶다. 사전을 찾아보면 페미니즘은 '여성의 특질을 갖추고 있는 것'이라는 뜻을 지닌 라틴어 '페미나(femina)'에서 파생한 말이다. 성 차별적이고 남성 중심적인 시각 때문에 여성이 억압받는 현실에 저항하는 여성해방 이데올로기를 의미한다. 알들 모를듯 세계적인 이슈로 부상한 페미니즘은 과연 무엇일까. 스트레이트뉴스는 페미니즘 이해를 돕는 책을 연이어 추천한다.

<나는 과학이 말하는 성차별이 불편합니다>는 진화심리학자들이 주장하는 남녀에 관한 유해한 이분법을 비판한다. 

저자인 마리 루티는 20년 넘게 젠더와 성에 대한 복잡한 인문학 이론들을 강의한 사람이자 페미니스트다. 저자의 강점이기도 한 이러한 시각은 기존의 자기계발서에서 성 고정관념을 주입하는 방식이 어떠한 문제점을 지니는지 정확히 짚어낸다.

자기계발서 전문가들은 남녀가 심리적, 감정적, 성적으로 엄청나게 다른 세계에 살고 있으며, 남녀 관계 문제들은 서로의 성 특이적인 욕구, 강점, 속성, 혼동을 이해하지 못하는 데서 생긴다는 신념을 고수해왔다.

남녀를 떠나 개개인이 겪은 경험치의 차이, 유년기부터 성인이 될 때까지 한 개인이 자라면서 내면에 축적된 성장의 역사 등은 진화심리학자들이 주장하는 이론에서 철저히 배제됐다. 그들은 오직 ‘남녀’라는 성만이 관계 문제의 원인이라고 지적한다.

거의 모든 남성과 여성을 두 개의 틀 안에 나누어 구분할 수 있으며, 그 틀에 벗어나는 이들이 일부 있다고 인정하기는 했지만 벗어나는 이유 역시 동물학적 생식 이론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가령 그들은 성 소수자들을 일컬어 이성에게 선택받지 못해 주류 사회로부터 탈락한 존재라고 비하했다. 

남녀 관계에 관한 진화심리학 분야의 가장 큰 문제점은 이러한 근거 없는 성 고정관념을 과학적 타당성이 있다 주장하며 대중에게 납득시키려 한다는 점이다. 그렇게 퍼진 이론은 사회문화의 곳곳에 퍼지며 우리도 미처 자각하지 못하는 사이 우리의 무의식을 지배한다.

우리는 그것이 진실인 양 아무런 비판 없이 수긍하고 태생적으로 여자는 이렇고 남자는 저렇다고 받아들인다. 우리는 진화심리학자들이 주장하는 이론의 큰 틀을 주목해야 한다. 결국 그들이 지지하는 것은 남성우월주의의 가부장제 사회이며, 이를 곤고히 하기 위해 지금도 수많은 이론을 퍼뜨린다.

여성이 반복해서 당하는 성차별은 그들의 이론이 과학이라는 미명을 등에 업은 채 큰 목소리를 내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 페미니즘 운동은 여성과 남성의 성차이라는 장벽에 가로막혀 여전히 제 구실을 못하고 있다.

여성들을 억압하는 장애물이 실제로는 허구에 불과하다는 것을, 연애 관계 문제를 비롯해 집안에서도 여성이 대등하게 제 목소리를 내지 못하는 이유가 이러한 허구에 의한 인식의 지배임을 발견할 수 있다.

뿌리 깊게 체화된 여성성과 남성성은 페미니즘 담론이 한껏 격양된 오늘날까지 우리의 행동양식을 지배하고 있음을 자각해야 한다. 자기계발서 저자들과 잡지 칼럼니스트들이 강조하는, 여자는 자고로 비싸게 굴어야 한다는 개념이 어디서 왔을까 궁금했던 적이 있다면 이 책을 통해 알 수 있다. 

「나는 과학이 말하는 성차별이 불편합니다」 마리 루티 지음·김명주 옮김(동녘사이언스·2017)
「나는 과학이 말하는 성차별이 불편합니다」 마리 루티 지음·김명주 옮김(동녘사이언스·2017)

진화심리학자들은 꽤 진보했다고 여겨지는 이 시대에 철저하게 남성과 여성을 이분법으로 나눌 수 있다고 믿는다. 더욱이 그 믿음을 일반 대중들에게 끊임없이 공유하고 설득하려고 애쓴다.

지금껏 우리는 남녀에 관한 유해한 이분법을 해체하는 데 수십 년을 바쳐왔음에도, 진화심리학자들은 터무니없고 유치할 정도로 단순한 근거와 논증으로 자신들의 주장을 고수한다

그러나 그들이 말하는 성차이에 대한 결정은 그 자체가 이미 이념적이다. 지식 생산이 어떻게 작동하는지 조금이라도 아는 사람이라면, 누군가가 세운 가설이 그 주제를 어떤 틀로 바라보고 자신의 연구 결과를 어떻게 해석하는가에 따라 조건화됨을 잘 알 수 있다.

여기에는 연구해볼 만하다고 여기는 ‘가치 판단’이 많은 것을 결정한다. 지식 생산의 다른 영역들과 마찬가지로 진화심리학도 그렇다. 진화심리학은 젠더와 성에 대한 지배적 사회 이념을 강화하기 위해 악용되고 있다. 

루티는 성 고정관념을 젠더 프로파일링으로 명명한다. 진화심리학에서 말하는 젠더 프로파일링이 실제로는 그럴싸한 과학의 권위를 획득한 문화적 신화에 불과하며, 이러한 신화가 사실로 교묘하게 둔갑하는 지점에 주목한다.

저자는 이러한 진화론적 추론 방식의 문제점을 분석하면서, 이 허구가 얼마나 무서운 젠더 패러다임을 생산하는지 비판한다. 그릇된 이론은 우리 사회의 곳곳에 침투해, 우리 삶의 양식에 엄청난 영향을 끼친다. 때문에 이 책에서는 일반 대중들을 위해 진화심리학에서 말하는 젠더 프로파일링의 허점을 비판하고 폭로한다.

마리 루티는 여전히 진행 중인 진화심리학의 시대착오적 관계 패러다임의 문제점과, 젠더 관계의 구질서를 하나하나 짚어내면서 진화심리학이 개선해야 할 방향, 우리가 맹신하는 과학이 때로는 터무니없음을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비전문가인 대중들이 이러한 젠더 프로파일링에 어떻게 현혹되는지, 진화심리학 서적을 통해 무엇을 얻고자 하는지, 게다가 그것이 얼마나 공허한지를 비판한다.

저자는 진화심리학자들의 연구 목표나 그들의 담론에 관심이 있는 것이 아니라, 그들이 비전문가인 일반 독자들에게 무슨 내용을 전달하는가에 방점을 둔다. 그 과정에서 우리 문화에 여전히 존재하는 악습과도 같은 성 고정관념이 과학적 타당성이라는 그럴듯한 권위를 등에 업고 일반 독자들을 설득하는 데 아주 큰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밝혀낸다. 

이 책에서는 인문학과 과학 사이의 대립만이 아니라, 두 진영의 과학자들-현재의 진화심리학의 문제점을 방어하려는 과학자들과, 실제 데이터에 맞게 고칠 필요가 있다고 믿는 과학자들, 대표적으로 제리 코인과 조안 러프가든의 이론을 인용하면서-사이의 입장 차이도 드러낸다.

진화심리학은 사회 곳곳에 침투해 있는 화성남-금성녀 논리, 즉 “남자는 이렇고, 여자는 저렇다”는 수사법이 유전적 근거를 지니고 있음을 우리들에게 납득시키려 한다.

그러나 젠더 프로파일링은 관계를 다루는 폭력적인 방식이다. 무엇이 남성과 여성을 다르게 만드는가에 시선을 고정할수록, 우리는 타인들의 특이성을 볼 수 없다.

본래 모호할 수밖에 없는 현실을 젠더화된 생식 전략에 관한 이론에 끼워 넣음으로써 명료하게 만들려는 시도는 어리석다. 화성남-금성녀 모델처럼 단순한 어떤 것을 통해 정서적 삶의 밀도를 설명하려는 시도는 사람들을 학대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마리 루티는 진화심리학자들의 과학적 동기와 결과가 그들이 주장하는 객관성과는 동떨어지는 이념적 행위임을 고발한다. 저자는 진보적이고 비판적인 시각으로 그간 우리가 진실이라 믿었던 젠더 패러다임을 허물고 있다. 우리 모두가 진화심리학자들의 성차별적 이념을 안이하게 받아들였던 불감증을 바로잡고, 진화심리학자들이 주창하는 전통적 담론이 실제로 얼마나 억압적이고 구속적인지 증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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